비행기로 2시간이면 닿는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다. 영화 ‘러브레터’나 ‘철도원’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겨울이면 매력적인 설국으로 변해 연인들을 잡아끈다. 요즘에는 가격이 상당하지만 료칸에서 온천과 코스요리인 가이세키를 즐기는 여행도 인기다. 프랑스 문화를 일찍 받아들인 일본은 도쿄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파리보다 많을 정도다. 특히 프랑스 제과분야에 뛰어난 셰프와 파티셰를 많이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와인 마니아들에게는 천국이다. 한국에서는 턱없이 값비싼 프랑스 부르고뉴 마을단위 피노누아 와인과 샴페인들이 일본에서 종량세 덕분에 반값에 불과해 저비용항공을 이용하면 실컷 마시고 먹고도 비행기요금을 건질 정도다.
일본을 찾은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지는 통계가 말해준다. 일본 정부 관광국(JNTO)에 따르면 2018년 일본을 찾은 전 세계 관광객은 3119만2000명인데 이중 한국인 관광객은 753만9000명으로 24.1%를 차지했다. 일본 여행객 4명 중 1명은 한국인이라는 얘기다. 1위인 중국(838만명·26.8%)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들은 일본 관광을 선호한다.

하지만, 일본은 늘 가깝고도 먼 나라다. 강제노역 배상 판결에 반발해 일본이 반도체 등 핵심 부품·소재 수출을 제한하는 무역보복 조치를 단행한 요즘, 이보다 더 일본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하면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전방위로 확산하는 모습이 이를 대변한다. 집집마다 한벌씩은 있다는 ‘국민 깔깔이’ 등 가성비 좋은 의류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유니클로가 대표적이다. 불매운동이 번지자 유니클로 임원은 “한국의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어 두 차례나 사과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유니클로의 매출은 30% 이상 곤두박질치는 상황이다. 편의점에서는 일본 맥주 소비가 많게는 지난달보다 절반 이상 급감하고 화장품 등 일본 뷰티용품 역시 매출이 뚝 떨어지고 있다. 또 주말 골퍼들이 많이 찾는 ‘동양인 스펙’의 일본 골프채나 필기구 등도 비슷하다.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여행업계다. 하나투어의 일본여행 신규예약은 지난해보다 절반 이하로 급감했고 모두투어의 신규예약도 70%나 줄었다고 하니 반일 감정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저비용항공사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에어부산은 매일 1회 운항하던 대구~나리타 노선을 오는 9월부터 폐지하기로 하는 등 일본 노선 운항 축소가 잇따르고 있다. 골프존카운티는 지난 6월 ‘시원한 홋카이도로 떠나는 골프여행’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이처럼 불똥이 튄 여행업계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매출 감소로 울상이다. 하지만 ‘친일파’로 찍힐까 아무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여행업계의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가 장기화한다면 일본 여행을 주로 취급하는 국내 여행사들의 타격이 엄청날 것”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일본을 찾은 관광객 중 한국인의 비중이 대단하니 일본여행을 취소하거나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은 일본 정부에 큰 압박이 될 수 있어 나름 애국이다. 하지만 이를 자신의 밥벌이에 이용하는 업체도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 동남아전문 여행사는 일본 여행 구매 내역과 취소 인증 내역을 제시하면 베트남 여행을 반값에 제공한다며 대대적으로 홍보 중이다. 이번 사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모두에게 큰 손해다. 양국 정부가 하루빨리 해법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최현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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