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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악보읽기와 음악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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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05 21:25:13 수정 : 2019-07-05 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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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대표적인 작곡가 팬쇼어 / 악보 못 읽어도 즉흥곡 만들어 / 美도 음표 그리는 훈련 지양 / 지식 앞세운 한국 교육 씁쓸

1969년 영국 작곡가 데이비드 팬쇼어는 아프리카 북동부로 음악 채록여행을 떠났다. 수년간 여행하며 원주민의 음악으로부터 얻은 600여개의 녹음자료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지역 무속신앙이나 중동지방에서 전해진 이슬람의 기도문을 암송하는 노래가 담겨졌다. 팬쇼어는 아프리카의 이 노래들과 유럽의 음악이 공존하는 작품을 꿈꿨다. 열세 개 악장의 전곡이 완성돼 1978년에 초연된 그의 ‘아프리칸 상투스’에는 아프리카인의 기원의 노래가 팬쇼어에 의해 붙여진 가톨릭 미사합창곡과 함께 피아노를 비롯한 여덟 개의 악기연주와 훌륭하게 융화됐다.

서로 다른 문화적 음향을 하나의 음악작품으로 담아낸 새로운 그의 시도에 1970년대의 서구음악계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열광했다. 신을 향한 인간의 마음을 서로의 경계를 넘어 하나로 가다듬어 표현하고자 했던 ‘아프리칸 상투스’는 이후 많은 서구 음악가에게 창작의 영감을 선사했고, 팬쇼어를 당대 영국의 대표적 작곡가로 칭송받게 했다.

주성혜 한예종 교수·음악학

그런데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넘치는 이 대단한 작곡가는 어린 시절, 난독증으로 악보를 읽지 못하는 아이였다. 합창과 피아노 즉흥연주로 음악적 흥미와 재능을 키우던 그는 피아노를 가르쳐 준 친구 어머니로부터 멋진 자신의 즉흥곡을 기록해 보라는 격려를 받으면서 기보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두려움은 실로 그가 왕립음악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난 후에도 좀처럼 극복되지 않은 것이었다. 악보를 잘 다루지 못하는 작곡가라니, 음악공부라면 응당 기보법을 배우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일상적으로 배워 왔던 우리로서는 팬쇼어의 이러한 사연이 의외롭다 못해 신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미국의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제공하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꼬마작곡가’는 팬쇼어의 경우가 매우 정상적이고 자연스럽다고 판단할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은 오선보에 음표 그리는 훈련을 전혀 시키지 않은 채 어린이들에게 작곡을 유도한다. 악기연주자들이 다양한 음색과 표현세계를 들려주며 아이들과 교감하면 아이들은 그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 상상하고 조합한 음향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해 오선보 대신 제시하고, 연주자들은 그것으로 꼬마 작곡가들과 내용을 확인해 악곡을 연주한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로 발표되는 아이들의 음악은 때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음향적 완성도를 띠고 있고, 두세 학기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시작하는 상급반에서 비로소 기보법을 익히는 아이들은 놀라운 속도로 관현악 앙상블의 작품을 악보로 써내려 간다. 기보체계를 활용하는 난해한 기술을 요구하기보다 음악의 즐거움을 가르치는 것이 작곡교육의 첫걸음이라 생각하는 그들의 교육관은 지식·정보의 암기와 적용을 앞세운 우리 음악교육보다 훨씬 많은 행복한 음악애호가를 양성할 것임이 분명하다.

대다수의 우리는 악보 없이도 노래 부르기를 즐기고 음악을 느끼며 춤을 춘다. 오히려 악보가 주어진다면 방해받을 음악활동이 우리 주변에는 더 많을 것도 같다. 악보를 읽지 못하면서도 노래하고 피아노로 즉흥곡을 만들었던 팬쇼어처럼, 다큐 영화 ‘기적의 피아노’의 주인공 예은이는 선천적인 무안구증으로 악보를 볼 수 없고 배울 기회도 없었지만 바흐나 쇼팽의 곡을 귀로 익혀서 연주하는 어린 피아니스트다.

기보하는 능력과 음악을 즐기는 능력이 다른 것임을 일상에서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데도 학교나 피아노학원에서 우리는 ‘음악공부는 악보읽기부터’라는 그릇된 믿음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본다. 하기야 암기된 믿음을 진리인 양 여기며 살아가는 일이 비단 이 경우만일까.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고 좇아가는 수많은 믿음에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팬쇼어의 ‘특별한’ 성장과정을 뒤따라가니 떠오르고 있다.

 

주성혜 한예종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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