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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에서 심리전까지’…총성없는 전쟁 시작되나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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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28 14:00:00 수정 : 2019-06-28 14: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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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장병이 태블릿PC를 통해 명령어를 입력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수많은 병력과 전차, 장갑차들이 넓은 들판에서 서로를 향해 사격을 가하는 재래식 전면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대신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어려운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한창이다. 상대방의 네트워크에 침투해 데이터를 훔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를 동원해 상대방을 압박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대규모 인명피해로 공멸할 수 있는 위기를 겪는 것을 원치 않는 강대국들에게 하이브리드 전쟁은 새로운 무기로 주목받고 있다.

미군 장병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공역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전면전만큼 치명적인 하이브리드 전쟁

 

하이브리드 전쟁은 사이버전, 민병대를 동원한 국지전, 사이버전, 가짜뉴스 등을 이용한 심리전을 통해 특정 국가를 합병하거나 정부를 전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전에 투입된 병력과 장비 등이 국가적 통제를 받고 있다는 점을 최대한 숨긴 채 군사작전에 준하는 수준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네트워크로 지구 전역이 연결된 사이버 시대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강대국들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지키는 수단으로 전쟁을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전략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가 발달하면서 대규모 전면전이 벌어지면 서로가 공멸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강대국들은 인명 피해 없이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전쟁 기술에 주목하게 됐다. 

 

하이브리드 전쟁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국가는 러시아와 이란이다. 이들 국가는 하이브리드 전쟁을 통해 지역 패권을 유지하며 미국에 맞서고 있다. 정규군의 침공은 전선이 명확해 대응하기 쉽다. 반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온라인 여론 전쟁, 대리군(proxy forces) 세력을 이용한 국지전, 진위 여부를 가리기 힘든 정보전쟁과 사이버 해킹 등이 동시에 진행되면 억제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군 작전 범위를 벗어나는 적대행위가 광범위하게 발생해도 속수무책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에 맞서는 방법으로는 가장 효과적인 셈이다.

러시아군으로 추정되는 무장세력 대원이 2014년 4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심페로폴 시가지를 지키고 있다. 게티이미지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지역과 크림반도에서 하이브리드 전쟁 기법을 사용해 혼란을 부추겼다. 이들 지역에서는 현지 주민들의 반정부 시위 및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이후 러시아군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는 증거가 없는 군복을 입은 지상군이 나타났다. 이 군대는 분리주의 반군보다 역량이 훨씬 뛰어나 우크라이나군을 동부지역에서 패퇴시켰다. 이와 관련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2015년 3월 1000명의 러시아 군 및 정보 요원이 우크라이나 동부에 투입된 것으로 추정했다. 앞서 2008년 러시아는 체첸 무장세력 등을 동원해 조지아 내 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아에 친(親)러시아 정권을 수립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더불어 중동 지역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란은 자국 군대를 대신해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대리군(proxy forces)을 앞세우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등은 이란과 긴밀한 연계 속에 활동하는 군사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이란의 ‘그림자 전쟁’ 한창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중동 지역은 하이브리드 전쟁이 가장 치열하기 벌어지는 곳이다. 대리군과 국지전, 사이버 공격, 전면전 위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는 상황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오만해를 지나던 유조선이 공격을 받아 선체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13일 이란 인근 오만해에서 유조선 2척이 무장세력에 의해 공격을 받은 직후 미국은 이란을 배후로 지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미군 무인정찰기 RQ-4를 격추하자 이란군 레이더 기지 등에 대한 보복 공격을 지시했으나 “150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공격 실행을 중지했다.

 

대규모 인명피해를 우려해 보복 공격을 전격 중단한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사이버 공격이었다. 22일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미군 사이버사령부는 20일 이란의 정보 관련 네트워크, 이란군 미사일 발사대 통제용 프로그램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감행했다. 특히 오만해 유조선 공격에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란 정보 네트워크가 집중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이란 최고지도자와 이란 최고지도자실에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 이란 수뇌부를 압박했다.

 

이란도 사이버 공간에서 공세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미 사이버 보안 업계는 이달 중순 이란 정부가 후원한 것으로 의심되는 해킹 시도를 포착했다. 이메일로 위장해 랜섬웨어 등을 유포하는 스피어피싱(spear-phishing) 기법이 사용된 이번 해킹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대원들이 테헤란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가해 행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란은 러시아·중국·북한과 함께 다른 국가에 사이버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이란 해커들이 구글 검색 기술을 활용해 미국 뉴욕주의 댐을 제어하는 전산망에 침투한 사실이 밝혀진 적이 있다. 

 

대리군을 이용한 국지전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동맹군은 “매일 수천 명의 민간인이 이용하는 아브하 국제공항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았다”며 “시리아인 1명이 숨졌고 민간인 21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예멘 국경에서 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아브하 공항의 주차장을 드론으로 공격했다. 지난달에는 사우디의 석유 펌프장 2곳이 후티 반군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후티 반군은 지난달부터 드론과 미사일을 동원, 사우디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왔다. 아랍동맹군은 예멘 북부 지역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는 등 군사적 대응에 나서고 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란은 혁명수비대를 앞세워 중동 내 무장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혁명수비대 고위급 사령관인 골람 알리 라시드는 지난달 의회에서 “이 지역 전체에 (혁명수비대의) 동맹들이 있다. 적들은 비싼 값을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혁명수비대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을 통해 시리아와이라크의 재건 사업을 수주해 얻은 이익과 밀수 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은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예멘 후티 반군에 제공된다. 혁명수비대 중에서도 최정예로 꼽히는 쿠드스군은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를 훈련시키고 있으며,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군대를 지원하고 있다. 이란은 이를 통해 미국과 사우디 등의 움직임에 맞서고 있다.

 

지난해 미국이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고 대이란 경제 제재를 복원하면서 이란과 갈등을 빚고 있지만, 양측 모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은 원치 않는 만큼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사이버 해킹과 심리전 등을 비롯한 하이브리드 전쟁에 힘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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