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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안 나잖아”… 전자담배 ‘흡연 갑질’ 놓고 갈등 [이슈 속으로]

입력 : 2019-06-30 06:00:00 수정 : 2019-06-30 11: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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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서 ‘간접 흡연’ 둘러싼 갈등 고조 / 흡연자들 “일반담배보다 무해” 인식 / 1분기 전자담배 판매 비중 역대 최고 / 액상형까지 상륙… 흡연 부채질 우려 / 정류장 등 금연구역서도 버젓이 피워 / 비흡연자들은 “냄새 난다” 부글부글 / 정부 “똑같이 단속… 에티켓 지켜야”

#1. 지난 주말 경기 고양시의 한 음식점 앞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발단은 ‘담배’였다. 임신 6개월 아내와 식당을 찾은 문모(34)씨는 입구에서 흡연 중인 다른 남성에게 “임신부가 있으니 다른 곳에서 피워 달라”고 했으나 상대방은 되레 ‘전자담배라서 냄새도 안 나는데 왜 그러느냐’며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문씨는 “냄새가 나니까 정중히 부탁한 건데 상대가 막무가내여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2.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이모(32·여)씨는 요즘 현관을 나서기가 꺼려진다고 털어놨다. 아파트 복도에서 시도 때도 없이 비릿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냄새의 근원은 이웃 남성이 피워대는 궐련형 전자담배였다. 직접 말하기가 껄끄러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알린 뒤로 ‘복도나 계단에서 흡연을 삼가 달라’는 방송이 수시로 나왔으나, 이씨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자담배 흡연을 둘러싼 갈등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일반담배(궐련)처럼 연초를 태우지 않아 냄새가 덜 나고, 담뱃재가 날리지 않아 간접흡연 피해가 작을 것이란 예상이 빗나간 셈이다. 전자담배의 이런 장점을 근거로 일부 애연가가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흡연해대는 통에 이웃 또는 행인과 갈등을 빚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인다.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액상형 전자담배 ‘쥴(Juul)’이 최근 국내에 출시되면서 이 같은 갈등이 더욱 빈번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놓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거나 전자담배를 피울 때도 ‘흡연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자담배 시장 비중 확대에 액상형까지 가세

 

국내 전자담배 시장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8일 기획재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궐련형 전자담배는 2017년 5월 본격적으로 출시된 이래 판매량과 전체 담배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 모두 꾸준히 증가 추세다. 기재부가 발표한 ‘2019년도 1분기 담배 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1∼3월)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9200만갑으로 전년도 같은 분기의 6880만갑보다 33.6% 증가했다. 올 1분기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량 비중은 전체 담배의 11.8%로, 지난해 4분기 11.5%를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담배 판매량이 쥴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를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한국 시장에 상륙한 쥴을 비롯한 각국의 액상형 전자담배도 잇따라 국내에 들어오면서 전자담배 시장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쥴은 출시되자마자 전국 대부분 판매점에서 매진될 만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쥴이 미국 고등학생 흡연율 급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되면서 보건당국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당국이 지금보다 강도 높은 금연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전용 연초 필터를 ‘홀더’라고 불리는 스틱형 기기에 끼운 뒤 약 350도로 가열해 그 증기를 흡입하는 방식으로 피우는 담배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액체 상태의 니코틴 등을 끓여 수증기를 흡입하는 담배다. 쥴과 같은 ‘폐쇄형 시스템(CSV·Closed System Vaporizer)’ 전자담배는 ‘팟’이라는 폐쇄된 카트리지에 액상을 담아 새는 걸 막는다는 점이 기존 액상형과의 차이점이다.

 

◆실내외 불문 ‘뻐끔뻐끔’… 금연구역도 ‘무시’

 

흡연자들이 전자담배로 ‘갈아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보통 연초를 태운 연기를 흡입하는 일반담배보다 냄새가 현저히 덜 나고, 재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2017년 12월 흡연 경험이 있는 남녀 283명을 대상으로 궐련형 전자담배의 사용 양상과 이유 등을 심층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궐련형 전자담배를 사용해본 29명 중 절반이 넘는 55.2%가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아서’를 선택했다. ‘일반담배보다 덜 해로울 것 같아서’(17.2%), ‘금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10.3%)가 그 뒤를 이었다. ‘실내에서도 피울 수 있어서’(6.9%)란 답도 있었다.

 

전자담배의 이런 장점들이 오히려 흡연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혹여 냄새가 밸까봐 담배를 피우지 않던 집 안이나 화장실, 복도 등 실내에서까지 전자담배를 흡연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지난해부터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김모(28)씨는 “방에서 창문을 열고 피우면 30분만 지나도 아무 냄새가 안 난다”며 “굳이 밖에 안 나가도 되는 게 최고의 장점”이라고 했다.

 

건물 입구, 버스정류장 등 실외나 다중이용시설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인 채모(26·여)씨는 “얼마 전부터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풍선껌 냄새 같은 게 나던데, 그게 전자담배라는 걸 최근에 알았다”면서 “냄새가 나쁘지 않아도 몸에는 분명 안 좋을 텐데 단속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사연을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도로의 금연구역은 물론, 항공기 안처럼 흡연이 아예 금지된 곳에서 몰래 피우는 사례도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항공기 내에서 전자담배를 피운 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입건된 적도 있다.

 

◆유해성 논란도 계속… “흡연 에티켓 지켜야”

 

전자담배 흡연자들 사이에서 ‘일반담배보다는 덜 유해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도 논란거리다. 일반담배가 다양한 임상 사례 연구와 성분 분석을 통해 암이나 성인병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전자담배의 유해성과 그 정도는 아직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전자담배 회사들은 연초를 태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1급 발암물질 타르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일종의 금연보조제 기능을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반면 보건당국과 학계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중독을 일으키는 니코틴은 물론, 포름알데히드나 아세트알데히드 등 독성 물질들이 전자담배에도 들어있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전자담배를 금지한 곳도 등장했다. 미국 CNN 등 외신들은 지난 25일 ‘쥴의 고향’으로 불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감리위원회가 전자담배의 제조와 판매, 유통을 금지하는 조례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조례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전자담배의 판매와 유통을 못 하도록 했는데, 현재 미국에서 시판 중인 전자담배 중 FDA 승인을 받은 제품은 전무하므로 사실상 모든 전자담배를 금지한 셈이다. 쥴 제조사인 쥴랩스(Juul Labs)는 이와 관련해 “전자담배로 바꿨던 성인 흡연자들이 다시 치명적인 담배를 피우게 만들고, 암시장을 번성하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리 보건당국은 전자담배의 유해성 판단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에 출시된 제품들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등 성분 분석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담배 흡연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금연구역 흡연 단속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내 한 보건소 관계자는 “현행법상 전자담배도 일반담배와 동일하게 정부의 규제 대상”이라며 “각 지방자치단체와 산하 보건소들이 공공장소나 시설 등에서의 전자담배 흡연을 단속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전자담배 흡연자들도 ‘흡연 갑질’을 하지 않도록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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