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어 주일은 뉴스를 보는 일이 정말 두려웠다. 전 남편을 살해한 후 시신을 심하게 훼손한 것도 모자라 바다에, 쓰레기장에 버렸다는 엽기적 사건 앞에선 그저 할 말을 잃었고, 7개월 된 딸이 일주일이나 방치된 상태에서 죽고 말았는데 21세 아빠와 18세 엄마는 PC방에서 게임하고 친구들과 술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황당한 사건 앞에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최근엔 30년도 넘게 소식조차 없었던 ‘엄마라는 사람’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딸의 보험금을 타기 위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하자니, 가족의 적나라한 민낯 앞에서 마음을 추스르기조차 쉽지가 않다.
그러고 보니 미국의 가족 사회학자 스콜닉(알렌 스콜닉과 제롬 스콜닉) 부부가 가족을 일컬어 ‘문화적 위선’(cultural conspiracy)이라 이름 붙였던 대목이 떠오른다. 가족이 문화적 위선인 이유로 스콜닉 부부는 다음 두 가지를 지목하고 있다. 하나는 가족의 경우 추구하는 이상과 직면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그 어떤 제도보다 크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모름지기 가족에 관한 한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보다는 무엇을 말해서는 안 되는가를 둘러싸고 매우 정교한 사회적 규범 및 각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가족의 이상이라면 우리 모두는 ‘홈 스위트 홈’을 실현하고자 하는 로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가족 속엔 사랑과 배려, 애정과 신뢰 못지않게 갈등과 분노, 증오와 무관심이 자리하고 있다. 함께 모였을 때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면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라며 뿌듯해하지만, 정작 우리네 가족관계를 돌아보면 ‘소 닭 보듯’ 서로가 무덤덤한 경우가 다반사 아니던가.
심지어 아동 학대, 아내 구타, 노인 유기(遺棄) 모두 낯모르는 이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가족과 친지에 의해 자행되는 극단적 형태의 폭력임을 기억할 일이다. 뉴스를 보면서 가슴 쓸어내릴 것도 없이 실제로 아동을 학대하는 가해자의 70% 이상이 부모라는 사실, 미국에서는 약 10분에 1명꼴로 아내들이 크고 작은 남편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 나아가 부양책임을 거부하는 아들딸에 의해 노인(부모) 유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등은 이제 더 이상 충격적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가족과 관련해서는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곤란한 주제가 겹겹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형제자매 사이에 상속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다 지금은 남남처럼 됐다는 집, 대(代)를 잇기 위해 혼외자식을 들였다는 집, 부모의 지나친 편애로 인해 형제자매 사이가 남만도 못한 집, 치매에 걸린 부모를 서로 모시지 않으려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집, 결혼식 당일 신랑 혹은 신부가 파혼당한 집 등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비밀 하나쯤 간직하고 있지 않은 가족이 어디 있으랴 싶다.
문제는 가족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금기의 규범을 공고화할수록 ‘요새가족’(fortress family)이 늘어간다는 딜레마일 것이다. 여기서 요새가족이라 함은 마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을 높이 쌓아올리듯, 외부세계를 향해 담을 높이 쌓고 문을 꼭꼭 걸어잠근 채, 그 안에서는 가족 고유의 기능 수행은 물론 구성원 간 소통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가족을 의미한다. 이들 요새가족은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나누고 비정상가족을 향해 근거 없는 편견과 부정적 고정관념을 공고히 유지하는 곳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은 물론이다.
가족의 문화적 위선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대안 가족양식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음도 관심을 끈다. 정상가족에 포함돼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높을수록, 나아가 가족을 향해 양육 및 부양의 의무와 책임을 과도하게 요구할수록, 가족을 꾸리고자 하는 욕구는 눈에 띄게 감소할 것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일본의 가족 사회학자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정상가족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과한 일본에서는 그 여파로 결혼율 감소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이는 다시 회복불능의 저출산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본다.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길 주저해온 가족이 다시 이슈의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음은 그만큼 존재양식을 둘러싸고 깊은 성찰과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음에 대한 방증이요, 가족의 민낯이 공공 대중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음은 이제 우리네 가족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획기적 변화가 요구됨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이웃이나 지역사회를 향해 활짝 열린 가족일수록 건강한 가족으로서 가족 간 열린 소통을 기반으로 갈등 해소가 보다 용이해지고, 위기 대처 능력도 고양된다는 사실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가족이 좁은 의미의 혈연관계를 넘어 이웃 및 지역사회와 풍부한 사회적 연결망을 갖고 있을수록, 가족과 비가족의 경계가 뚜렷하게 나누어지기보다 서로 의지하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확대될수록, 국가의 지원 범위가 가족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꼭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유연하게 이루어질수록, 가족의 건강성이 성공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주장을 새삼 음미하게 되는 요즘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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