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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겠지" 허술한 재활용 배출… '국제적 망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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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14 06:25:00 수정 : 2019-01-14 14: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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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재활용쓰레기 대란] 필리핀 쓰레기 귀환 후폭풍 지난 13일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방치된 불법 수출 폐기물 6300t 중 1200t이 한국행 선박에 실렸다.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속여 필리핀에 수출한 폐플라스틱이 기저귀와 전구, 건전지, 의료폐기물 등이 섞여 있는 ‘순수 쓰레기’였던 게 필리핀 세관에서 들통났기 때문이다. 현지 시민단체들이 필리핀 주한대사관 앞에 모여 “쓰레기를 도로 갖고 가라”며 시위까지 벌이며 국제 문제로 비화하자 정부가 쓰레기 일부를 먼저 국내에 들여오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15일(현지시간) 필리핀 환경단체 회원들이 불법으로 수입된 한국 폐기물에 대해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마닐라=EPA연합뉴스
필리핀에 불법 수출된 한국산 플라스틱 쓰레기가 ‘국제적 망신’을 초래한 가운데 재활용쓰레기 배출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크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지 24년이 흘렀지만 쓰레기 배출 문화는 여전히 미성숙하다는 비판이다.

◆음식물-오물 묻어 있어도 ‘재활용쓰레기’로... 업체 ‘적자’ 호소

서울 성북구 소재 한 아파트 60대 경비원 김모씨는 분리수거가 있는 일요일마다 골머리를 앓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더러운 비닐, 통조림 캔, 음료수는 기본이고 깨진 유리까지 재활용이라고 갖고 온다”며 “일일이 싫은 소리를 하기도 그래서 아침부터 나와 또 분류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그나마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좀 덜한데. 자리라도 비우면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를 버리고 가기도 한다”며 “그거 다 찾아서 일반쓰레기로 버리는 것도 일”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비닐, 플라스틱, 깡통, 우유팩 등은 내용물을 모두 비운 후 깨끗이 씻고 말려 배출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음식물 쓰레기, 오물 등이 묻은 채로 봉투에 넣어 배출하는 ‘얌체족’이 많다. 재활용쓰레기가 오염되어 있거나 일반쓰레기가 섞여 있으면 분류 및 세척 등 추가 공정이 필요해 수익률이 떨어진다. 실제 재활용업체 대다수가 재활용 쓰레기를 선별하고 처리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4월 중국이 재활용품 수입을 중단하자 국내 처리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많은 국내 재활용업체가 쓰레기 수거를 거부한 바 있다.
지난 13일 서울 성북구 소재 한 아파트단지 경비원 김모씨가 재활용쓰레기를 분리하고 있다. 나진희 기자
◆재활용율 낮아 폐플라스틱 오히려 수입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는 폐플라스틱 수입량이 수출량을 능가하는 실정이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까지 폐플라스틱 수입은 13만5006t(5838만달러)으로 전년 동기 5만5553t(2011만달러)과 비교해 약 2.4배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수출은 지난해 6만5980t(1508만달러)으로 전년 18만6074t(4483만달러) 대비 약 3분의 1로 줄었다.

선진국은 폐플라스틱의 상품성이 높아 주로 수입보다 수출이 많다. 일본은 수출량이 수입량보다 6배가량 많으며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이와 비슷하다.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인 환경규제로 폐플라스틱 수출이 어려워지는 것이 확실해진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폐기물 분리배출 시스템의 정교화 및 고도화를 통해 고품질 플라스틱의 선별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재생원료 수출 확대를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깨끗이 씻어 말려 배출... 알루미늄 포일, 코팅 종이 등은 재활용 대상 아냐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올바른 재활용쓰레기 분리배출 방법을 숙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본적으로 재활용품은 내용물을 모두 비우고 깨끗이 세척해 같은 재질끼리 분류해 배출한다. 상표, 뚜껑, 테이프 등 다른 소재의 부착물도 모두 제거해야 한다. 배출 전 재활용마크가 있는지도 확인한다.

서울시가 제작한 ‘재활용품 올바른 분리배출 요령’에 따르면 종이팩(우유팩, 두유팩)은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헹구는 등 이물질을 제거하고 말린 후 배출해야 한다. 이때 빨대, 비닐 등 종이팩과 다른 재질은 제거한 후 일반 종이류와 혼합되지 않게 분리해 배출한다.

소주, 맥주 등 빈용기보증금 대상 유리병은 소매점 등에 반납해 보증금을 환급받는다. 깨진 유리제품은 신문지 등에 싸서 종량제 봉투에 배출해야 하며 코팅 및 다양한 색상이 들어간 유리제품, 내열 유리제품, 크리스털 유리, 판유리, 사기, 도자기류, 조명용 유리 등은 재활용 대상이 아니다.

금속 캔은 플라스틱 뚜껑을 제거 후 배출해야 하며 알루미늄 포일 등은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 우산, 프라이팬 등 금속 이외의 재질이 부착된 제품은 분리해 배출하고, 이것이 곤란하면 종량제 봉투나 대형폐기물 처리 조례에 따라 버려야 한다.
플라스틱 배출 봉투에 음식물 쓰레기가 묻어 있는 배달용기, 테이프, 컵라면 용기 등이 뒤섞여있다. 나진희 기자
PET, PVC PE, PP 재질의 플라스틱 용기도 이물질 제거 후 깨끗하게 씻어 배출한다. 이때 플라스틱 이외의 재질이 부착된 완구, 문구류, 옷걸이, 칫솔, 파일철, 전화기 등은 재활용 대상이 아니다.

종이류는 광고지, 벽지, 자석 전단지 등 비닐코팅 종이는 재활용할 수 없다. 택배 상자 배출 시 운송장, 테이프 등은 모두 제거해야 하며 노트도 철제 스프링을 빼고 배출해야 한다.

◆제품 생산 단계부터 재활용 쉽도록 설계해야

직장인 이모(31)씨는 “재활용 취지에 공감하지만 실질적으로 분리배출하기 쉽지 않다”며 “페트병에 붙은 비닐 라벨도 뜯기가 쉽지 않고, 유리 주스 병은 물에 불려놔야 그나마 붙어있던 종이가 뜯어진다”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선 제품에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라벨을 부착하는 것이 일반화돼있다. 플라스틱이나 유리에 수용성 라벨을 인쇄하는 방식도 이용되며 용기와 뚜껑을 같은 재질로 만들기도 한다. 분리배출이 쉽도록 해 재활용률을 높이려는 의도다. 이에 우리도 소비자가 손쉽게 처리가 가능하도록 생산자가 용기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재활용 마크. 나진희 기자
지난해 12월 입법 발의된 ‘재활용촉진법 개정안’ 관련 입법간담회에서 EPR(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를 통해 플라스틱, 알루미늄 용기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자가 분리배출이 쉽도록 용기를 제작하게끔 강력한 규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EPR 제도는 산업체가 제품 생산 시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으로 생산하는 것은 물론 사용 후 발생하는 폐기물의 재활용까지 책임지도록 한다.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은 “필리핀에 우리나라 업체가 수출한 폐비닐과 플라스틱이 쓰레기와 섞여 방치되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보면서 국가망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생산에서 분리수거까지 일관된 철학과 기술, 그리고 교육이 관통하는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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