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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어부 독도 강치잡이 근거로 삼아 강제 침탈” [2018 독도국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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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11 18:41:34 수정 : 2022-12-16 17: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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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 - 이케우치 사토시 / 나카이 요자부로와 죽도어렵회사 / “나카이, 자신의 공로 주장하려 독도 강점 과정 자세히 기록해…도리어 독도연구 자료로 활용”

이케우치 사토시(池內敏·사진) 일본 나고야(名古屋)대 교수는 11일 세계일보가 주최하는 ‘2018 독도국제포럼’에 참석해 ‘나카이 요자부로(中井養三郞)와 죽도어렵회사’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주장하게 된 계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나카이는 일본이 독도를 강점한 빌미를 제공하고, 독도에서 무분별한 강치(물갯과 동물)잡이를 벌여 독도 강치를 멸종케 한 장본인이다. 그는 1904년 9월29일 ‘리양코도 영토편입 및 대하(貸下·국가로부터 빌림)원’을 제출했으며, 일본은 이를 승인해 독도를 강점했다. 이후 일본 관료들이 자신을 이용해 강제로 독도를 침탈한 사실을 알고 있던 나카이는 향후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본의 독도 강점 과정을 자세히 기록했고, 이는 독도 연구의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18 독도국제포럼에서 이케우치 사토시 일본 나고야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재문기자

이케우치 교수는 나카이의 자료를 통한 독도 연구에서 ‘독도가 어떻게 일본령에 편입됐는지’에 중점을 맞추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연구에서는 일본이 독도를 영토로 편입한 뒤 나카이가 이를 대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케우치 교수에 따르면 나카이는 1906년 7월부터 독도에 대한 차용을 인정받았다. 1904년 9월 일본이 독도를 침탈한 이후 약 1년9개월이 걸린 것이다. 이는 독도에 서식하던 강치를 잡기 위해 독도에 어업허가권을 신청한 일본인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독도 침탈 후 어업허가권을 쥐고 있던 시마네(島根)현은 ‘공로의 다소’ 등을 조사해 허가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나카이를 비롯한 일본인 4명이 추려졌고, 이들에게 시마네현이 공동출원신청서를 작성하도록 했다는 것이 이케우치 교수의 설명이다.

 

이케우치 교수는 이 과정에서 회사 설립을 위한 자금의 40%를 출자한 나카이가 이를 넘어선 권한을 거머쥐게 됐다고 설명하며 그 원인을 “나카이가 독도의 일본령 편입에 공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또 이런 과정에서 “(일본의 독도 침탈에) 지역산업 논리가 아니라 국가의 논리가 우선시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1905년 일본의 각의 결정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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