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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문가서 복지전문가로… “두 분야 접목이 내가 할 일” [나의삶, 나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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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 / 친형 서상철 전 장관이 롤 모델 / 하버드대 박사후 세계은행 근무 / 1983년 아웅산 폭탄 테러로 사망 / 형 따라 세계은행서 5년간 활약 / 귀국후 KDI 틀어박혀 연구 전념 / 정치 한 것 후회 안하지만… / 36세때 KDI 부원장… 4년간 재임 / 청와대서 13대국회 비례대표 제안 / KDI 원장이었으면 안했을수도 / "경제·복지 아우르는 정책전문가 꿈" / 복지분야와 인연 많아 / 사회복지 협의화장 선거 치러 당선 / 정부·민간간 가교 역할 첫 번째 일 / 정권과 민감하지 않고 자율적 운영 / "이제 기업·민간·시민사회 나서야" 3선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서상목(71)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은 “내 사전에 국회의원과 정치는 없었다. 경제전문가로서 나라를 위해 일을 하겠다는 생각만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서 회장의 롤 모델은 자신보다 열두 살 많은 친형 서상철 전 동력자원부 장관이다. 그의 형은 동력자원부 장관 때인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 버마(현 미얀마) 방문 수행 중 아웅산 묘소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형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세계은행(IBRD) 경제개발연수원 교수, 고려대 교수, 금융산업발전 심의위원, 건설부 차관 등을 역임했다.

서 회장은 형이 밟은 길을 따라갔다. 그는 만 26세에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곧바로 형이 근무했던 세계은행에 입행해 5년간 이코노미스트로 활약했다. 귀국 후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틀어박혀 연구에만 전념했다. 정치에 무관심이었던 그는 KDI 부원장 때 뜻하지 않게 국회로 진출했다. 그 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기복지재단 이사장,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을 하며 ‘복지전문가’로 변신했다. 서 회장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경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복지 쪽으로 갖다 놓은 것 같다”고 회고했다. 경제와 복지 전문가답게 그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서구식 복지국가 모델을 복지와 경제를 융합하는 방향으로 수정해 이를 한국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웰페어노믹스(welfarenomics)’를 책으로 펴냈다.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은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집무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한가한 이념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며 “성장과 형평이 다 필요하며 하우(HOW)를 갖고 논의해야 한다. 성장도 하고 분배도 나빠지지 않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상윤 기자

서 회장은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권 입문과정, 복지전문가가 된 계기 등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놨다.

―어릴 적 꿈은.

“경제전문가였다. 어머니는 경제전문가가 돼 나라를 위해 일을 하라고 늘 말씀하셨다.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으로 돌아가신 형님이 내 삶의 표상이었다.”

―3선 국회의원을 했다.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36세 때 KDI 부원장을 맡았다. 부원장을 4년 하는 동안 원장이 3명이나 바뀌었다. 나이가 어리다며 원장을 안 시키는 거야. 원장 모시기도 쉽지 않았다. 특히 모 원장 성격이 별나 사표를 세번이나 냈는데도 수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하라고 했다. KDI 원장이었으면 국회의원을 안 했을 수도 있었다. 정치는 덤으로 했다. 정치 한 것을 후회는 안 하지만 다시 태어나면 복지와 경제를 아우르는 정책전문가가 되고 싶다.”

―복지와 인연이 많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바라지도 않았고, 경기복지재단 이사장을 원한 적도 없고,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복지 쪽에 와서 이제 완전히 전문가가 돼 버렸다. 내 의도보다는 하늘의 뜻인 것 같다. 경제와 복지를 접목시키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돌이켜보면 경제하는 사람치곤 분배에 관심이 많았다. 박사학위 제목이 ‘경제성장과 소득분배와의 관계’였다. 세계은행에서는 소득 분배과에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를 담당했다. KDI에서도 분배를 연구하는 사회개발부에서 활동했고, 1981년엔 ‘빈곤의 실태와 영세민 종합대책’을 세워 정부에 제출했다. 당시 선배 한 분은 ‘KDI에서 빈곤을 연구한다’는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선배는 ‘금융이나 재정을 연구해야 경제부총리나 재무부장관을 할 것이 아니냐. 빈곤 같은 것을 연구해 뭣 하겠느냐’며 야단을 쳤다.

복지는 정부가 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제는 기업과 민간,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복지를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하는데 맞지 않다.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도 문제지만 시장에만 맡기는 일도 능사가 아니다. 복지도 일자리와 연계해야 하며, 기업의 경영개념과 사회적 금융제도를 활용해야 한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을 맡게 된 동기는.

“사회복지협의회와 특별한 인연은 없다. 2016년 말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새 회장 선출을 앞두고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사회복지협의회 원로들이 마땅한 후임자가 없다며 ‘회장을 했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추대되는 줄 알았는데 공약발표를 하는 등 선거를 치열하게 치렀다. 사회복지협의회는 150~160여개 회원으로 구성돼 있고, 단체 100여 곳, 나머지는 개인이다. 협의회 회장은 선거를 하기 때문에 낙하산이 통하지 않는다. 정부가 특정인을 회장으로 세우고 싶어도 그 사람이 선거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정권과 민감하지 않고 완전히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사회복지협의회가 하는 일은.

“6·25전쟁으로 고아와 미망인 등 사회복지수요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그 일을 다 할 수 없었다. 한국전쟁 중 민간 NGO들이 부산에서 외국 NGO 도움을 받아 사회복지활동을 시작했다. 사회복지협의회는 1952년 대한민국 민간사회복지 역사와 함께 출범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사회복지사업법에 역할이 명시돼 있는 법정단체다. 협의회 전체 예산 가운데 정부 지원이 98%를 넘어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있다.

사회복지협의회 첫 번째 일은 정부와 민간 간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민간의 의견을 모아 정부에 건의하고 정부 정책을 민간에 알려주고 있다. 또 사회복지 기관·단체 간의 연계·협력·조정 등 정부를 대신해 공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나눔 사업을 대행한다. 푸드 뱅크가 대표적이다. 1700여개 민간식품회사로부터 식품을 기증받아 어려운 사람과 사회복지시설에 나눠주고 있다. 전국 800만명이 자원봉사자로 등록돼 있다. 자원봉사단체 기관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자원봉사실적을 자원봉사관리시스템(VMS)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취약계층 아동의 사회 진출 때 대학 학자금, 취업, 창업, 주거 등에 드는 초기 비용을 마련하는 디딤씨앗지원 사업도 한다. 사회공헌센터도 운영하고 있는데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참여 활성화를 위해 정보 제공, 맞춤형 컨설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기업지정기탁사업, 새 생명지원, 사랑나눔실천운동, 멘토링사업 등을 한다.”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일은.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롤 모델은 일본이다. 일본의 사회복지협의회는 상당한 역할을 한다. 일본의 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겸직하며 시·군·구 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은 시·군·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맡는다. 사회복지협의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형식은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조직으로 협조가 잘 이뤄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완전히 따로 돼 있다. 우리는 시·군·구에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구성돼 있고, 시·군·구 자치단체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자연히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중심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광역단체장의 경우 서울, 부산, 경기도는 별도의 복지재단을 만들어 많은 자금을 투입해 운영한다.

자원봉사센터의 경우 일본은 사회복지협의회가 관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행정안전부와 기초자치단체가 한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복지협의회의 정체성, 신뢰, 소통의 위기라고 진단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선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협치를 해야 한다. 지역복지공동체를 만들어 나눔 공동체 실현, 지역혁신프로젝트 및 플랫폼을 구축해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기업, 민간 간의 협력을 통해 지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선도하겠다.

사회복지협의회가 정부 중심의 일본형에 NGO 역할을 하는 영국, 홍콩 식을 절충해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면 소통, 신뢰문제도 자연히 해결된다. 정부가 아버지라면 사회복지협의회는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KDI에 있을 때다. 1984년 1월 청와대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국민연금을 실시해야 한다고 보고했더니 ‘서 박사는 미국에 오래 살아 한국을 잘 몰라. 그런 것 하면 한국경제는 망해’라는 반응을 보였다. KDI 원장 출신 김만제씨가 86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임명된 후 국민연금을 다시 밀어붙였다. 김 부총리는 연금에 확신을 가진 분이다. 그는 1970년대 국민복지연금을 추진했으나 석유파동 때문에 무기 연기됐다. 전 대통령 유럽순방을 수행한 김 부총리가 귀국 때 기내에서 국민연금 추진계획을 보고해 재가를 받았다. 1986년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국민연금법은 2년 후 시행됐다. 국민연금은 나 혼자 작품은 아니지만 상당한 역할을 했다.”

―웰페어노믹스(welfarenomics) 제목의 책을 폈다.

“3차 산업혁명부터 분배가 나빠지기 시작했고, 4차 혁명 후 그것이 가속화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 진보·보수 정권 할 것 없이 경제성장률이 확 떨어졌고, 분배는 더 나빠졌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임금격차가 벌어지는 등 양극화 현상은 심화됐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4차 산업혁명과정에서 나타나는 전 세계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우리가 접근해야 한다. 자본주의 4·0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너무 오른쪽에 가 있고, 서구식 복지국가는 너무 왼쪽에 가 있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신자유주의를 얘기하며 ‘복지망국론’부터 꺼내는데 그러면 복지가 설 땅이 없다. 반면 진보 세력은 몇 십 년 전의 유럽식 복지국가를 꿈꾸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서구식 복지국가의 중간지대에서 지속가능한 자본주의와 복지국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성장도 잘 되고, 분배도 개선하고, 효율과 형평을 같이 달성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웰페어노믹스다.”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 사업회 회장을 맡았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다. 지역구 국회의원 할 때다. 지역구에 도산공원이 있는데 도산 안창호 기념 사업회에서 이사직을 제의해 수락했다. 이후 도산 기념관 추진위원장직도 수행했다. 도산 선생은 당대 최고의 리더십전문가다. 도산의 리더십은 무실역행(務實力行)은 기본이고 애기애타(愛己愛他) 이른바 ‘사랑 리더십’이다.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인 것이다.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리더십이다. 웰페어노믹스와 애기애타 리더십은 세트로 봐야 한다. 웰페어노믹스가 되려면 지도자들이 애기애타 마인드를 가져야 하며 그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서 회장은…

●충남 홍성(1947년) ●경기고, 미국 앰허스트대 경제·수학 복수전공, 경제학박사(미국 스탠퍼드대) ●세계은행(IBRD) 이코노미스트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 ●보건복지부 장관 ●제13,14,15대 국회의원 ●민자당 정책조정실장,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 ●스탠퍼드대 교환교수, 명지대 교수·정보통신경영대학원장, 인제대 석좌교수 ●(사)21세기교육문화포럼 이사장 ●경기복지재단 이사장 ●도산 안창호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한국사회복지협의회(SSN) 회장(현) 동아대 석좌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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