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는 평양공동선언이 이미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밟고 있는 판문점선언의 이행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남북군사합의서는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사항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국회에 비준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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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대학생겨레하나, 서울청년네트워크, 서울청년민중당, 빈보대학생넷, 한국청년연대 관계자들이 ‘판문점선언 국회비준 막는 자유한국당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쓰레기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에 대한 법제처와 청와대 입장은 판문점선언 때와는 사뭇 다릅니다. 법제처는 지난 8월 판문점선언이 “국가나 국민에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로,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하다”는 해석을 내렸습니다. 임종석 실장은 같은달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판문점 선언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역사적 선언”이라며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켜)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 비준에 반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언제는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하다며 조속한 처리를 닦달하더니 이번에는 정부가 처리해도 될 일이라며 자신들을 ‘패싱’하니 말입니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아이를 낳기도 전에 출생신고부터 먼저 해버리는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급기야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논란으로까지 비화했습니다. 한국당이 ‘국회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등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헌법 제60조를 들어 권한쟁의심판 소송까지 추진할 뜻을 내비치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다음날 “조약 체결의 주체는 국가인데, 북한은 헌법과 법률 체계에서 국가가 아니다”고 반박하면서입니다.
김 대변인은 한국당이 ‘남북 정상 간 합의는 법적으로 따지면 국가 간 조약의 성격’이라는 문 대통령 자서전(운명) 내용까지 거론하며 파상공세를 퍼붓자 “(북한과의 관계는) 다양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2005년 남북관계발전법을 만들어서 특수관계로 규정했던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가 화해와 평화 번영의 길로 나아가도록 국회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라며 그 출발점은 판문점선언의 비준 동의안에 대한 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두 남북합의서에 대한 대통령의 비준 논란 이후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이 진지하고 생산적인 논의를 벌이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27일 논평에서 “한국당이 자꾸 시비를 거는 것은 남북관계에 어깃장을 놓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비판했습니다. 홍영표 원내대표가 25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대해선 무조건 반대하는 청개구리 심보”라며 한국당을 ‘반평화세력’이라고 규정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한국당도 이번 논란을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국회의 역할에 관한 진지한 논의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한국당 지방의원 워크숍에서 “북한의 제재완화 해달라고 프랑스 대통령 만나서 개망신 당했다”, “자기 참모들, 장관들 앉혀놓고 국무회의랍시고 열어놓고 하는 짓”, “문 대통령은 최순실의 가장 큰 특혜 수혜자” “역량도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 등의 원색적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최근 국가 논쟁에 관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홍 전 대표는 남북이 1991년 유엔 동시 가입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국가라고 전제 한 뒤 “대통령이 서명했다고 해도 좌파 정권의 대북정책 선언에 불과하지 국민을 기속하는 법적 효력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홍 전 대표 페이스북 글에서 “최근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는 청와대의 발표는 본질을 피해 가기 위한 어처구니 없는 꼼수”라는 구절입니다.
이번 북한 국가 논란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번영이라는 대의에 남북 정상의 일련의 합의가 과연 부합하는 것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 합의서에 명시된 원칙과 내용에 동의를 하더라도 절차의 합법성과는 별개라는 점을 잊어선 안됩니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확인하기 전에는 어떠한 남북 간 대화, 교류협력, 지원 사업은 불가하다’는 태도도 문제이지만 남북 정상 간 합의서의 비준 동의에 반대한다고 해서 무조건 반평화세력으로 몰아가는 태도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27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는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와 대학생겨레하나, 한국청년연대 등이 주최하는 퍼포먼스가 열렸습니다. 이들이 ‘한반도 평화를 방해하는 적폐 정치인’이라고 규정한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와 나경원 의원, 홍준표 전 대표 얼굴사진을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행사였습니다. 관련 행사 보도자료를 읽으며 전날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라디오에 출연해 했던 말 중 한 대목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청와대가 비준 동의안에 대해서 국회가 찬성하지 않으면 반평화세력인 것인양 몰아가는 그런 자체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대화가 통하지 않는 극한적인 대립구도로 갔던 북한을 설득해낸 문 대통령의 지도력이 왜 우리 대한민국 안에 야당을, 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국민들을 설득해내지 못하는지, 그런 것이 아쉽습니다.”
다음달 5일 청와대에서 여야정 협의체 첫 회의가 열린다고 합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평양공동선언 비준 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 온 부분이 있는 만큼 야당에 충분하게 그 의미와 배경 등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관계자 말처럼 이번 여야정 협의체에서 청와대는 국정운영에 관한 허심탄회한 설명과 진솔한 협조 당부를, 야당은 건전한 비판과 합리적 대안 제시를 해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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