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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 장병들이 제1연평해전 기념탑 앞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해군 제공 |
병역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병역제도가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병사로서 군복무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최전방 부대가 아닌, 소위 말하는 ‘편한 부대’에 배치된 병사를 보면 “‘빽’이 있다” “장군의 아들 아니냐”며 의혹어린 눈길을 보낸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지난 6월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도입 판결과 지난달 18일 시작해 2일 폐막하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치열한 논란으로 번졌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놓고 “복무기간을 5년으로 해야 한다” “무조건 현역보다 강도가 높아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대체복무에 지뢰제거를 포함하는 등 징벌적 요소가 포함된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부 야구 선수가 지난해 입대를 포기하고 야구 대표팀에 합류한 것을 놓고 “은메달을 기원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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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8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B조 예선 한국과 홍콩의 경기에서 우리 선수가 날아오는 공을 향해 배트를 대고 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
스포츠 선수에 대한 병역 면제 특례 논란은 글로벌 차원의 국제 스포츠 대회가 열릴때마다 제기됐던 문제다.
체육요원 병역특례로 불리는 스포츠 선수 병역 면제는 1973년 박정희정부 시절 제정됐다. 체육 분야 특기를 가진 사람에게 현역 군 복무 대신 해당 분야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하도록 해 국위 선양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대상자는 △올림픽에서 3위 이상으로 입상한 사람 △아시안게임에서 1위로 입상한 사람이다. 단체종목선수는 한 경기라도 실제 출전해 팀의 메달 획득에 기여해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병역특례 대상자는 군입대 대신 4주 기초 군사훈련만 받고 해당 분야에서 2년 10개월간 봉사활동을 한다.
당초 체육분야 병역특례에는 세계선수권대회나 월드컵,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이 포함됐다. 축구대표팀이 2002년 월드컵에서, 야구대표팀이 2006년 WBC에서 4강에 진출해 병역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2008년부터 올림픽과 아시안게임만 특례 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시작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스포츠 분야 병역특례 논란은 재점화됐다. 일부 병역 미필 선수가 합류하면서 논란을 빚은 야구대표팀의 경우 “은메달을 기원한다”는 네티즌들의 비판이 집중됐다.
이러한 상황은 스포츠 종목별 특수성에 원인이 있다. 아시안게임에서 야구는 일본, 대만 등 8개국이 참가하지만 일본, 대만은 실업팀이 다수 참가하고 나머지 나라는 우리나라의 중학교 수준이라 ‘동네 야구대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어렵지 않게 금메달을 딸 수 있어 병역 특례를 쉽게 받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야구대표팀이 프로야구선수 병역 특례 수단이 됐다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반면 수영, 육상 등 비인기종목 선수들은 병역 특례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선진국과의 실력 차가 커서 메달권 진입이 야구보다 훨씬 어렵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정식으로 채택되지 못한 종목 선수들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워도 현역 입대를 피할 수 없다. ‘동네 야구대회’에 출전해 쉽게 금메달을 딴 선수와 비인기종목에서 천신만고 끝에 우승한 선수간의 병역 의무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위 선양할 방법은 많으니 체육 병역 특례를 없애는게 낫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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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 공병대원이 땅속에서 발견한 지뢰가 폭발하지 않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육군 제공 |
인터넷에서 ‘대체복무’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지뢰’ ‘양심적 병역거부 지뢰’ ‘지뢰제거 대체복무’ 등이 함께 등장한다.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이 지난 14일 대체복무에 지뢰제거를 포함시킨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부터다.
지뢰제거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장병들이 지뢰탐지기 등의 장비를 가지고 실시해야 하는, 난이도가 높고 위험한 작업이다. 특히 비무장지대에 남북이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200만개의 지뢰를 모두 제거하려면 약 500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대체복무자 수백명이 최대 44개월간 복무한다 해도 제거할 수 있는 지뢰의 양은 극히 적다.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 병사보다 1.5~2배 정도 연장하는 것으로도 대체복무가 병역 면탈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자유한국당에서 대체복무 업무 범위에 지뢰제거를 포함한 것을 놓고 “징벌적 성격을 강조해 대체복무제도 취지를 근본부터 뒤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대체복무에 지뢰제거를 포함한 것에 대해 “대체복무 5년, 인상 없는 병사 월급에 예비군 10년” “지뢰제거 5년 시켜라” “복무기간도 긴데 지뢰제거 배워서 하면 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이 적지 않다. 지뢰제거가 징벌적 성격을 갖고 있다면 현역으로 입대해 관련 임무를 수행하는 육군 공병대 장병들은 복무기간 내내 벌을 받고 있느냐는 것이다.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는 “지뢰제거를 담당하는 부사관들도 처음부터 지뢰제거 할 줄 알았느냐. 대체복무자라고 못할 거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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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복무요원이 119 구급대원과 함께 심폐소생술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병무청 제공 |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 중 100% 완벽한 것은 없다. 면밀하고 객관적인 검토를 거쳐 끊임없이 수정하면서 시스템의 효력을 유지하는 작업을 통해 100%에 가까운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 운영체계다.
우리나라의 병역 시스템은 어떨까. 우리 사회는 병역의무에 매우 예민하다. 신체적 문제만 없다면 모두가 동일한 수준의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병역을 회피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는다. 지난 2002년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스티브 유(유승준)는 같은해 법원으로부터 입국 금지조치가 내려졌다. 스티브 유는 지금까지도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고, 이는 연예인들의 병역의무 이행 촉진과 병역제도 보완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체육 병역특례의 경우 스포츠를 통해 정권의 정통성을 강화했던 1970~1980년대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은 물론 세계선수권(3위 이상), 유니버시아드(3위 이상), 아시아선수권(3위 이상), 한국체대 졸업성적 상위 10% 이내 선수까지 특례 대상으로 분류됐다. 현재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만 특례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이 규정은 2008년 이후 변함이 없다. 종목별 형평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10년 동안 개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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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 장병들이 휴전선 남방한계선 철책을 순찰하고 있다. 육군 제공 |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유명 대회에서 한 번 입상한 것으로 병역특례를 부여하는 기존 제도 대신 출전 횟수나 수상 내역 등을 종합해 산정한 누적점수를 기준으로 병역특례를 부여하는 등의 대안이 정치권에서 제시된 바 있다. 하지만 입법화에는 실패해 논란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아시안게임과 헌법재판소의 대체복무제 도입 판결은 우리 사회에서 예민한 이슈인 병역의 형평성 논란을 촉발시켰다. K-POP 가수처럼 스포츠 이외의 분야에서 국위를 선양하는 사람도 병역특례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 대체복무자를 지뢰제거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병역제도의 형평성에 대한 의문이 국민들 사이에 아직 남아있다는 의미다. 국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병역제도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국가를 위한 헌신’의 의미마저 퇴색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 당국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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