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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 재발견의 풍경, 재탄생의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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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30 23:22:11 수정 : 2018-07-30 23: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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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통해 작가의 정체성 찾은 괴테 / 휴가지 풍경서 새 삶의 모형 찾아보길
독일 통일 직후인 1991년 제작된 피터 팀 감독의 영화 ‘트라비에게 갈채를’에서 동독 출신의 우도 가족은 “죽기 전에 나폴리를 보라”고 했던 괴테를 따라 옛 동독 국민차 트라비를 타고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한다. 작고 낡은 트라비는 잦은 고장으로 멈춰 선다. 그때마다 이 가족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고 인용하면서 물질적 남루함을 정신적으로 승화하려고 애쓴다. 이 가족뿐만 아니라 여전히 많은 세계인이 괴테를 따라 이탈리아 여행을 한다.

괴테에게 이탈리아는 동경의 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탈리아 여행담을 자주 들려준 부친 덕분에 괴테는 이탈리아에 대해 많은 것을 상상하고 열망했다. 이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괴테는 37세 생일잔치를 벌이던 중 빠져 나와 잠행하듯 이탈리아로 떠난다. 20개월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를 거듭나게 한다.

1786년 11월 1일 괴테는 “마침내 나는 이 세계의 수도에 도달했다”며 치유와 모색을 위해 여행 왔음을 밝힌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몇 년 동안은 마치 병이 든 것 같았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곳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며 이곳에서 지내는 것뿐이었다”고 말한다. 병과 고통의 근인은 자기 예술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이었다. 또 그는 “나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많은 것을 획득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이나 예기치 않았던 것은 전혀 얻지 못했다. 또한 나는 그 어떤 모형을 자주 꿈꿔 왔다”고 했다. 그 ‘어떤 모형’을 위해 정신의 탄력성을 견지하며 이탈리아 고전 예술미와 적극 교감한다. 괴테는 ‘내가 보는 대상들에 비춰 나를 재발견하자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었음을 거듭 환기하며 감각적 실존의 경지를 제고한다. 자신의 관찰력으로 얼마나 많은 대상을 포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대상이 어떻게 자기 내부로 각인되면서 새롭게 변형 생성되는지를 예민하게 감지한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로 알려져 요즘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는 베로나의 한 박물관에서 괴테는 석상의 생생한 현실감에 감동한다. 그리고 그는 “조각가는 다소간의 기술로써 인간의 단순한 현실만을 재현했고, 그럼으로써 인간의 실존을 영속시키고 영생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대리석 조각상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성찰하고 그 시간적 영속성에서 인간 실존의 한계를 넘어선 예술의 경지를 새롭게 감각한다. 로마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서 그는 “2000년 이상이나 된 실체가 여기 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여러 가지로 근원적인 변화를 겪어왔으면서도 (…) 이러한 실체를 대할 때면 우리는 운명의 위대한 의지에 따르는 동반자가 된다”고 말한다.

결국 이탈리아 기행을 통해 괴테는 예술의 ‘어떤 모형’을 재성찰하고 작가로서 정체성을 되찾는다. 질풍노도 시절을 극복하고 고전주의 예술의 지평을 새로 연다. ‘파우스트’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등 걸작들이 그 결과물이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명실상부한 재발견, 재탄생의 시간이었다. 많은 이들이 꿈꾸는 여행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그러한 풍경이었다.

꼭 이탈리아일 까닭은 없다. 어디서 휴가를 보내든 그 풍경과 더불어 자기 삶의 새로운 모형을 성찰할 수 있다면 보람이겠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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