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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미 보고 있다'…시선 강탈하는 유세는

관련이슈 2018.6.13 지방선거

입력 : 2018-06-08 08:02:00 수정 : 2018-06-08 14: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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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차에 올라 마이크 잡고, 시장에 가서 순대 먹고, 지하철역에서 출퇴근 인사하고….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이같은 풍경으로는 더이상 표심을 사로잡을 수 없다. 이에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는 톡톡 튀는 유세로 유권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후보들이 쏟아졌다. 이들은 골목마다 쩌렁쩌렁 구호를 외치는 전통적인 선거운동 대신 ‘조용한 유세’ ‘문화 유세’를 펼치는가 하면, 특이한 분장과 퍼포먼스로 유권자들의 시선을 ‘강탈’하고 있다.

◆“요즘 누가 시끄럽게 유세 하나요” 

전통적인 선거운동을 고집하는 후보들에게 ‘확성기 없는 유세차’는 속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다. 그간 정치인들은 기호와 이름, 소속 정당 색으로 랩핑한 유세차에서 목청이 떠나가라 지지를 당부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소음공해 없는 선거’ 내건 바른미래당 이상은 대구 북구 기초의원 후보.  이 후보 캠프 제공

하지만 대구 북구 기초의원(다선거구) 선거에 출마한 바른미래당 이상은 후보의 유세차는 확성기가 없다. 선거운동원이 타는 자리도 없앴다. 유세차 한편에는 ‘소음공해 없는 선거’ ‘주민의 소리가 정치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후보는 “주민들께 선거운동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드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선거 공해’는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공식 선거운동 기간 중 전국에 접수된 소음 신고는 하루 평균 211건이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535건으로 늘었다. 이는 선거법에서는 확성 장치 개수와 연설 시간 등만을 제한할 뿐, 소리 크기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울산시 남구의회 의원 후보로 출마한 민중당 홍성부 후보가 5일 오전 유세차로 활용 중인 소형 전기차를 타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권자들의 불만을 파고든 ‘조용한 유세’는 전국 곳곳에 퍼지고 있다. 유세차에 방송장치를 달지 않거나 엔진 소음이 적은 전기자동차·스쿠터 등으로 이동하며 주민 불편 최소화에 힘쓰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박의정 충남도의원(천안) 후보는 아예 유세차, 로고송, 율동, 확성기가 없는 ‘4무(無) 선거운동’을 내세우기도 했다.

◆선거는 축제…버스킹에 흥겨운 골목길
자유한국당 권영진 대전 유성구청장 후보(가운데)가 금관 5중주로 구성된 ‘음악 유세단’과 함께 유세를 펼치고 있다.  권 후보 캠프 제공
유세차 옆 성악가와 금관 5중주 연주자들. 이들이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에 맞춰 후보가 유세를 펼친다. 유세와 클래식이라는 다소 낯선 조합을 택한 이들은 한국당 권영진 대전 유성구청장 후보의 ‘음악 유세단’이다. ‘21세기 문화구청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권 후보는 “유성구민들에게 문화정책을 홍보하고 선거유세도 문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며 유세단을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단순히 유권자들에 대한 지지 호소를 넘어선 ‘문화 유세’를 펼치는 것이다.
 
바른미래당 유능종 구미시장 후보(왼쪽)가 지난 4일 오후 경북 구미시 봉곡동 테마공원에서 문화유세단과 함께 길거리 버스킹 공연을 접목한 선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뉴스1
문화 유세는 그동안 소리만 큰 선거 구호에 지친 유권자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주겠다는 의미를 더했다. 바른미래당 유능종 구미시장 후보도 이에 공감해 ‘선거는 축제다’는 슬로건과 함께 선거운동에 길거리 버스킹을 접목했다. 기타리스트, 전자 바이올린 연주자가 비발디의 사계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연주를 펼치면 유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이 강강술래를 펼치며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유 후보 측은 “주변을 산책하던 시민들도 저희 선거운동에 하나둘씩 모여들어 박수를 쳐 주신다”며 “신선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안 볼래야 안 볼 수가…톡톡 튀는 코스튬 

7일 서울 마포구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에 만화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메텔’과 ‘철이’가 나타났다. 메텔과 철이는 파란색 배경에 ‘사전투표’ 문구가 적힌 동그란 손팻말을 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 평화철도111 유세단의 정청래 중앙역장(오른쪽 세 번째부터), 만화 ‘은하철도999’ 의 주인공 메텔과 철이로 꾸민 이재정·박주민 의원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사전투표 독려 홍보캠페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의 ‘평화철도 111 유세단’이다. 메텔은 이재정 의원, 철이는 박주민 의원이 각각 맡았다. 유세단장인 정청래 전 의원은 중앙역장으로 변신했다. 지난달 30일 출범한 뒤 전국을 누비며 지원 유세를 펼쳤고, 시민들도 이에 호응을 보내고 있다. 특히 평소 ‘거지갑(甲)’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 의원이 누추한 차림의 철이로 분장한 것이 화제였다.
더불어민주당 김삼수 부산시의원(해운대) 후보가 ‘슈퍼맨’으로 변장한 모습. 김 후보 페이스북 캡처
자유한국당 고태선 제주도의원(연동갑) 후보가 ‘아이언맨’으로 변장한 모습.  고 후보 페이스북 캡처
 
‘튀어야 산다’는 어느새 후보들의 선거 모토로 자리 잡았다. 개성 있는 코스튬을 통해 인지도가 낮은 후보들은 단번에 자신을 알릴 기회를 만들고, 기성 정치인들은 권위적인 이미지를 타파하는 데 널리 활용하고 있다. 지역마다 슈퍼맨, 아이언맨 등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캐릭터로 변장한 후보와 선거운동원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다.

◆수수께끼 현수막, 비리 성토 샌드백 유세도

현수막도 인지도를 높이는 좋은 소재이다. 충북 제천단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바른미래당 이찬구 후보는 현수막에 ‘아이엠그루트…(3이찬구…)’라는 문구를 적어넣었다. ‘아이 엠 그루트’는 최근 흥행한 헐리우드 대작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등에 등장한 인기 캐릭터 ‘그루트’의 명대사다. 이 후보는 단어 그루트를 숫자 ‘9’와 연산기호 ‘루트’로 나누어 해석해 자신의 기호인 3번을 강조한 것이다. 수수께끼 같은 이 후보의 현수막은 온라인상에 광범위하게 퍼지며 화제를 모았다.
 
충북 제천단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바른미래당 이찬구 후보의 현수막.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국당 홍성각 청주시의원(사창·성화·개신·죽림) 후보는 ‘홍성각은 중국집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로 이목 끌기에 나섰다. 자신의 이름이 중국 음식점의 상호명과 비슷한 것에 착안해 유권자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슬로건을 만들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자유한국당 홍성각 청주시의원 후보가 지난달 31일 오전 청주시 상당구 청주대교 앞 거리에서 손팻말을 들고 유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에서는 ‘샌드백 유세’가 유명세를 타고 있다. 대구시의원(지산·범물·파동)으로 출마한 민주당 박인환 후보는 자신의 유세차에 샌드백을 달고 “23년 시의회 비리, 확! 한 대 때려주세요”라는 문구를 적어넣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인환 대구시의원(지산·범물·파동) 후보가 유세차에 설치한 샌드백을 시민이 치고 있는 모습.  박 후보 캠프 제공

박 후보는 “온라인에서 ‘대구시의회 비리’라고 검색하면 기사가 너무 많이 나오더라”라며 “23년간 (한국당) 일당 체제로 운영되다 보니 견제할 세력이 없어 시의원들이 나쁜 짓을 해도 막을 사람이 없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들이 샌드백을 치면서 그간 한국당이 주도한 대구시의회를 성토하고 민주당 후보인 자신을 뽑아달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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