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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지구의 미래] 꿀벌이 사라진다?…'봉(蜂) 선생'에게 물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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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03 06:00:00 수정 : 2018-05-04 17: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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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실종' 부른 살충제 퇴출… 더 큰 화 당하기 전에 팔걷다 / EU,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 왜 사용 금지했나
‘꿀벌이 사라진다.’

최근 10여년간 꿀벌은 가장 ‘핫’한 곤충이었다. 2006년 미국에서 꿀벌이 사라진다는 이상 현상이 보고되면서부터다.

꽃밭이든, 과수원이든 꿀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붕∼’하고 날아다니는 줄 알았던 꿀벌이 언제부턴가 벌집을 버리고 감쪽같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이런 보고에 각국의 곤충학계는 물론, 꿀벌에게 ‘수분(受粉)’을 의존하는 농업계, 환경단체까지 동시에 ‘꿀벌 실종사건’의 원인분석과 대책마련에 뛰어들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 실외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올해 말부터 적용될 이 결정에 따라 EU 회원국에서는 온실에서만 네오니코티노이드를 쓸 수 있다.

유럽 언론은 이번 결정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네오니코티노이드가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과연 무엇이 사실이고, 이런 상반된 주장 속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일평생(?) 동족의 운명에 대해 연구해 왔다는 꿀벌 ‘봉(蜂) 선생’과의 문답으로 궁금증을 풀어봤다.
―지금부터 슬슬 바빠질 때인가.

“그렇다. 꿀벌은 보통 5월부터 활동량을 늘려 6∼8월이 가장 바쁜 시기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꽃이 많이 피니까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한다.”

―아시겠지만, 최근 유럽에서는 네오니코티노이드 사용을 금지하는 결정이 나왔다. 이에 대한 꿀벌계 반응은?

“당연히 환영한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이름만 들어도 날개가 벌벌벌 떨린다. 네오니코티노이드가 어떤 성분이냐면, 왜 사람들 중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많으니까 ‘니코틴’이라고 들어봤을 거다. 니코틴은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각성 효과를 일으킨다. 집중력 향상을 핑계로 담배 피우는 사람 있지 않나. 니코틴이 과하면 독이 된다. 네오니코티노이드도 니코틴과 작용기전이 비슷하다.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히 밝혀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처럼 몸집이 작은 꿀벌이 네오니코티노이드에 노출되면 방향감각을 잃고 집을 못 찾아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집만 못 찾아가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부분 바로 죽는다. 유독 곤충에 치명적인 농약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위험한데 어떻게 살충제 시장의 4분의 1을 점유하게 됐을까.

“‘유독 곤충에게 치명적’이란 말에 답이 있다. 바꿔 말하면 네오니코티노이드는 사람이나 가축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물론 살충성분이 들었으니 해롭기야 하겠지만, 다른 농약이 비해 위해도가 훨씬 낮다. 살충효과는 높고, 인체에는 덜 위험하니 사용량이 급증한 것 아니겠나.”
지난달 27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네오니코티노이드 관련 표결을 앞두고 환경단체회원들과 시민들이 벨기에 브뤼셀 슈만플레이스 앞에서 회원국의 네오니코티노이드 사용 제한 결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브뤼셀=AP연합뉴스
―꿀벌이 사라진다는 ‘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은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됐다. 그런데 왜 미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처음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 퇴출 결정이 나온 걸까.

“유럽 농법은 미국이나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우리나라는 농약 약제를 물에 희석해 1000ppm(0.1%) 정도 되는 농도로 작물에 뿌린다. 시골에서 농부가 농약통을 어깨에 메고 농약을 ‘칙칙’ 여기저기 뿌리는 걸 한번쯤은 봤을 거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입제농약을 주로 사용한다. 입제는 인스턴트 커피 알갱이보다 작게 농약을 동글동글하게 고형화한 것을 말한다. 이런 입제는 농약 성분이 1∼5%나 된다. 유럽에서는 이런 입제로 씨앗을 코팅해 땅에 심는다. 이렇게 하면 씨앗이 흙에 있는 온갖 병균이나 벌레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고, 새가 파먹는 일도 줄어든다. 종자 손실률이 줄어드는 거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농약 코팅 씨앗을 곱게 심었으면 피해가 이렇게 크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작업 효율을 올리기 위해 기계로 압축공기를 내보내 땅에 구멍을 뚫은 다음 씨앗을 묻는다. 강한 압력에 씨앗에 묻어있던 농약이 분진이 되어 날린다. 유럽에 사는 먼 친척뻘되는 벌에게 들으니 이 기계가 한번 지나가면 부옇게 분진이 일어난다고 하더라. 0.1% 네오니코티노이드 농약도 정면으로 맞으면 살아남기 힘든데, 이 독한 분진이 여기저기 흩어졌으니 유럽 벌들이 어디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또, 농약에 부정적인 유럽 여론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그런데 네오니코티노이드가 꿀벌 감소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던데?

“당신들도 그렇고, 우리 꿀벌들도 그렇고 10년 넘게 연구를 했지만,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한 건 사실이다. 휴대전화 전자파가 꿀벌이 집을 찾아가는 걸 방해한다거나 유행병이 돈다는 설도 있고, 기후변화가 원인이라는 얘기도 있고. 원인을 일일이 나열하자면 10개도 넘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CCD가 특정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누적돼 꿀벌 집단의 면역력을 떨어뜨렸고, 그래서 어떤 외부 자극이 있을 때 개체수를 급감하게 하는 거라 의견이 모이고 있다. 그래서 요새 곤충학계에서는 CCD란 용어를 잘 쓰지 않는다.”
―꿀벌 감소는 세계적인 현상인가? 봉 선생 당신은 꽤 건강해 보이는데.

“좋게 봐줘서 고맙다. 사실 꿀벌 감소는 세계적인 현상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꽤 심각할 정도로 줄어든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늘었고, 호주에서는 뚜렷한 추세 없이 늘었다 줄었다 반복해 왔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꿀벌은 늘고 있다. CCD가 처음 보고된 2006년부터 10년여 동안만이 아니라 더 기간을 길게 잡아 1980년대 후반부터 살펴봐도 그렇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벌집 수를 보면 1987년부터 2016년 사이 전 세계 벌집 수는 6744만개에서 9056만개로 늘었다.”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여태 ‘꿀벌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해왔는데, 이게 사실이 아니라고?

“낭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분명 미국과 유럽의 경우 1987년 이후 지금까지 벌이 크게 줄어든 것은 맞다. 미국에서는 1987년 이후 30년간 12.9%가 줄었다. 최근 몇년간 다시 군집이 늘어서 그나마 선방한 것이다. CCD가 보고된 2006년에는 1987년보다 꿀벌이 25.1%가 줄었던 상황이니 ‘꿀벌이 사라진다’는 게 분명 호들갑은 아니었다. 1987∼2016년 사이 독일에서는 무려 60.8%, 프랑스에서도 34.2%가 줄었다. 다만, 이런 현상이 전 세계적인 것은 아니고 지역에 따라 늘어나는 곳도 있어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꿀벌 실종이 사실이냐 아니냐, 네오니코티노이드가 실종의 첫번째 원인이냐 아니냐가 핵심은 아니라고 본다. 분명한 사실은 농약이 우리 꿀벌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이고, 농약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순식간에 개체수가 급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감염병이 휩쓸어 2년 새 23%가 사라지지 않았나. 당신들이야 지구를 지배한 최상위 포식자이니 잘 모르겠지만, 이 땅의 모든 동물은 인간의 작은 행동에도 죽음에 내몰릴 수 있다. 이것만은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도움말: 김정한 서울대 교수, 박경원 농촌진흥청 연구관, 박진희 한국양봉협회 연구소장,이승환 서울대 교수(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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