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게 반했어(강!민!호!) 화려한 조명 속에 빛나고 있는 넌 내게 반했어 (강!민!호!)”
프로야구는 관중과 함께하는 스포츠다. 선수가 나올 때마다 ‘맞춤형 등장송’이 울려퍼지고 팬들은 일제히 따라부른다. 팬들로선 야구장에서 흥겨운 콘서트장에 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1일 두산베어스와 KT위즈가 맞붙은 서울 잠실야구장은 평소보다 차분했다. 타자들이 타석에 등장할 때 나오던 20초 안팎의 ‘등장송’이 사라진 영향이 크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이날부터 전 구장에서 선수별 등장송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그동안 가요 중 일부를 발췌해 선수별 맞춤형 노래를 만들어 틀었다. 두산베어스 양의지 선수의 등장송은 박재범의 ‘좋아’, 삼성라이온즈 강민호 선수의 등장송은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가 원곡이다. 지방에 연고를 둔 구단 관계자는 “보통 구단 마케팅팀에서 선수 특성에 맞게 등장송을 정한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일부 원작자가 ‘저작인격권’ 침해 논란을 제기했다. 노래 일부분만 사용하거나 가사를 고치면서 원곡 느낌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저작권법 13조의 ‘동일성 유지권’인 저작인격권은 저작자가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뜻한다. 수도권 연고 구단의 한 관계자는 “원곡자들은 ‘슬픈 느낌의 곡을 만들었는데 (구단에서) 특정 부분만 틀어 곡 전체의 느낌이 달라지게 했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가사를 바꿔 응원가로 사용한 부분도 문제가 됐다. 두산베어스는 박현빈의 노래 ‘앗 뜨거’를 개사해 3년 이상 응원가로 사용하다 지난해 원작자의 항의를 받고 다른 노래로 바꿨다. 롯데자이언츠를 대표하는 문성재의 ‘부산갈매기’도 더 이상 응원가로 사용되지 않는다. 구단은 원작자와 대개 곡당 50만∼300만원인 저작인격권료 협상을 시도하지만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작곡가 윤일상 등 21명은 삼성라이온즈가 2012∼2016년 사용한 음원의 저작인격권 침해를 지적하며 지난 3월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다른 구단들도 개별 원작자들에게 소송을 당했다고 한다. KBO도 일단 이날부터 등장송 방송을 중단했다.
양측은 등장송의 저작인격권 침해 여부를 놓고 법적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2015년 4월 인터넷 이용자에게 음악의 ‘미리듣기’ 등을 제공했다가 원작자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노래방기기·웹사이트 업체에 동일성 유지권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은 당시 “부분적 이용으로 그 저작물에 표현된 저작자의 사상·감정이 왜곡되거나 저작물의 내용, 형식이 오인될 우려가 없으면 저작자의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미리듣기는 음원 구매를 위해 앞부분만 들려준다는 점에서 이번 경우와 성격이 다르다고 볼 여지도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전문 테크앤로 법률사무소의 구태언 대표 변호사는 “기존 노래의 가사를 바꾸고 작곡가와 협상도 없이 일부만 틀어서 사용한 건 문제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