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3월 1일 당시 만 28세의 청년이던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이 자본금 3만원으로 대구 중구 인교동 길가에 소박한 4층짜리 ‘삼성상회’를 세울 때와 결이 다르지 않다.
22일 재계 등에 따르면 창립 80주년을 맞은 삼성은 이날 별도의 기념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대신 삼성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 사내방송을 통해 ‘삼성의 80년사’를 기록한 7분가량의 동영상을 방영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1938년 대구 중구 인교동에 세워진 삼성상회의 설립당시 모습. 삼성전자 제공 |
이 영상의 전체적인 키워드는 변화와 상생, 헌신으로 요약된다.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은 ‘다이낵믹 삼성 80, 새로운 미래를 열다’를 제목으로 한 특별 영상에서 “변화를 위해 우리 임직원들의 사고방식과 일하는 것들을 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변화는 곧 위기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인텔을 제치고 세계 1위 반도체기업에 올랐다. 그러나 올해 글로벌 사업 환경은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에서 변화는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세계적 석학들의 격려와 고언도 이어졌다. 타룬 카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실리콘 밸리나 다른 기업의 방향성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조언했다. 케빈 켈러 다트머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거창한 약속은 필요 없다”고 당부했다. 후쿠가와 유기코 와세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족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 중에서 우수한 인재를 채용했다”며 삼성의 인재 중시 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80주년을 맞아 ‘제3의 창업’ 같은 새로운 청사진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날 이재용 부회장의 별도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23일 열리는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재계 관계자는 “집행유예 중인 이 부회장이 나타날 경우 모든 비난의 화살은 그에게 향할 것”이라며 “리더십 부재의 고충을 토로했던 삼성이 이 부회장에게 당분간 경영 일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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