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출범과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무국적 상태인 조선적(朝鮮籍) 재일동포의 고국 방문이 10년 만에 다시 기지개를 켤 전망이다. 문재인정부가 재외동포의 입국을 원활히 하는 방향으로 관련 지침을 개정한 데 이어 남북은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 응원단의 활동 보장에 합의했다. 조선적 동포의 일부는 조총련에 소속돼 있어 남북의 해빙 분위기는 조선적 동포의 방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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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적재일동포입국실현을위한모임이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세종대로 광화문 1번가 국민인수위원회 앞에서 조선적 동포의 자유로운 왕래 허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선적재일동포입국실현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
조선적 재일동포는 무국적 상태다. 일제 패망 이후 일본에 남아있던 동포 중 분단에 반대하며 남(대한민국)과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이다. 남북 분단이 굳어지면서 이들의 무국적 상태도 영구화됐다. 이들은 국적도 여권도 없이 일본 사회 내 소수자로 차별과 냉대를 경험하면서도 수십년을 무국적으로 살아온 신념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남과 북의 체제 경쟁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조선학교 등 건립 등 북한이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사이 한국은 거리를 뒀다. 이후엔 이를 빌미로 친북계로 분류하며 이념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차별과 냉대 속에 대한민국 국적을 뒤늦게 취득한 이들도 많지만 아직 3만여명(일본 외무성 2015년 말)이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무국적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에 입국할 때 일본 지역 내 대사관, 총영사관에서 별도의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매년 2000여명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고국 땅을 왕래했다.
이명박정부 들어 여행증명서 발급 거부가 급증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조선적 재일동포들이 여행증명서를 신청한 뒤 심사차 영사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받았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조선적재일동포입국실현모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면담 시 영사 및 직원들로부터 국적 변경을 강요받거나 협박, 폭언을 들었고 신원조회를 빌미로 변칙적인 정보수집도 있었다. 조선적을 유지하는 이유서와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 학자의 경우 과거 논문 제출 등을 요구받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구(舊)조선적 동포의 경우도 “가족 중 조선적자가 남아있는 이유가 뭐냐”고 추궁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인권침해를 호소하던 이들이 입국을 포기하면서 여행증명서 발급 신청 건수도 2000명대 수준에서 2011∼2016년에는 연 39∼86건으로 떨어졌다. 이마저도 절반 이상이 ‘방문목적 불투명’, ‘서류 기재 부실’ 등을 사유로 거부됐다.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10조에는 외국거주동포의 출입을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조선적 재일동포들이 이 법률에 맞게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조선적재일동포입국실현모임은 지난해 성명을 내고 “재일 조선적 동포는 국권을 상실해 국가가 보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던 시기에 형성된 특수한 존재로 일본 사회에서 온갖 차별과 냉대를 감수하면서도 이를(민족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이라며 “이들을 포용하는 실질적 개선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히는 등 현재 정부 재량을 유지하는 안보다 개선된 방안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문재인정부 출범 후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다.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말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 재외동포정책위원회 회의에서 신정부 재외동포정책 수립의 일환으로 소외된 동포들에 대한 지원강화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때 조선적 재일동포의 자유로운 모국방문을 위해 이들의 특수한 지위 및 인도적 사유 등을 고려해 현행 여행증명서 발급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정부 입장이 공식화됐다.
외교부는 이에 따라 내부 지침을 개정해 지난 12일부터 개정한 지침을 적용 중으로 알려졌다. 개정된 내용은 일반 여권과 같이 여행증명서 역시 8일 이내에 발급 또는 거부를 통보한다는 것이다. 발급기한을 명시한 것이다. 또 거부사유를 국가안보위해 소지, 서류미비 등으로 압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30일 “발급거부 사유 중 불명확한 사유를 없애고 정해져 있지 않았던 심사기간을 정해 절차를 명확히 한 것”이라면서 “신청자들 입장에서는 사유나 기간 면에서 예측 가능한 발급이 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면담에서의 인권침해 주장과 관련해서도 “절차를 명확히 했다는 것은 그런(인권침해) 부분도 최소화하기 위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관련법 개정도 꾸준히 논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지난해 3월 발의한 여권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강 의원이 발의한 여권법 개정안은 조선적 재일동포 입국을 위한 여행증명서 발급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예외사항을 법률로 두며, 발급거부는 여권정책심의위에서 심사한다는 내용이다. 같은 당 심재권 의원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재일조선적 방문자 수가 이처럼 정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여행증명서 발급 심사 방식과 승인 여부가 명확한 기준 없이 영사관 재량에 맡겨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외교부 내부 지침 개정을 통해 조선적 재일동포들에 대한 인권 침해 소지를 개선할 수 있게 된 것을 적극 환영한다”며 “앞으로도 정부가 보편적 인권 보장 차원에서 지침을 적용해 조선적 재일동포를 포함한 외국거주 무국적 동포들의 자유로운 고국 방문을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외동포의 고국에 대한 자유로운 왕래를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만큼 법적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여권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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