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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도박에 빠졌던 어느 아버지의 후회

입력 : 2018-01-06 20:00:00 수정 : 2018-01-05 19: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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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주의·쾌감 빠져 도박장 들락날락/늘어나는 빚에 인생은 결국 나락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거듭 다짐해봅니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으며, 내 가족을 이렇게 괴롭혔는지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는 게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저희 집은 가난했습니다. 부모님은 열심히 일을 했으나 5남매인 저희를 감당하기에는 힘이 부쳤습니다. 당연히 저희는 어려서부터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온갖 것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10대 후반에 취업한 음식점에서 잡일을 하게 되면서 어깨너머로 여러 요리법을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어렸던 탓에 요리 기구는 잡지 못하고 설거지나 청소 등을 하는 게 전부였죠.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한 저를 잘 봐준 음식점 사장은 몇가지 요리법을 배우라고 허락했고, 덕분에 20대 중반에는 돈을 어느 정도 모아 30대에 접어들면서 작은 가게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제 인생이 나중에 이렇게 나락으로 전락할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돈이 생기니 자연스레 도박에 욕심이 생기더군요. 예전부터 주변에서 도박판에 몸담은 이도 봤고, 패가망신한 지인도 접하면서 그들처럼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했는데, 손에 돈이 들어오고 배가 불러서 그런지 그쪽으로 눈이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불법 스포츠 도박, 카드 그리고 카지노 등 대박을 노릴 수 있다고 꿈꾼 곳은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돈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장사판에서 험한 말을 들으면서 돈을 긁어모았던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그리 고생을 했을까 그런 마음도 들었죠. 참으로 한심했습니다. 그때는 어쩌면 도박이 찬란한 인생을 열어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돈을 따는 순간의 쾌감에 사로잡히니 가게보다 도박장을 들락날락하는 일이 더욱 잦아졌습니다. 자연스레 장사는 소홀해졌고, 매출도 반 이상 뚝 떨어졌습니다. 아이들의 학업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가게에는 어느새 먼지만 쌓였고, 손님도 줄면서 운영해봤자 손실만 가져오는 악순환이 발생했습니다.

이와 비례해 도박판 빚은 점점 늘면서 결국 정든 가게를 처분해야 했습니다. 사실상 그때가 제게 주어진 마지막 갱생의 기회였던 셈이죠. 가게를 판 돈으로 빚 일부를 청산하고, 손을 털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좋았을 텐데 ‘한번만 더 해보자’는 생각이 제 머리를 지배했습니다.

빚을 완전히 갚은 것도 아니어서 아내는 일용직 일로 생활비를 보태려 했습니다. 가산을 탕진하고 할 일이 없어진 저도 인력시장을 돌며 일당이라도 벌고자 했습니다. 그제야 착실하다고 평가받던 사장에서 도박 빚에 눌린 ‘구제불능’ 아버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은 핑 고이고, 무슨 낯으로 가족을 봐야 하나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제 사연을 접하는 여러분도 답답하시죠?

결국 가족의 권유로 도박중독을 치유하려고 상담센터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문득 ‘나만 생각했지, 가족은 어느새 머리에서 지워졌구나’라고 자책하게 되었습니다. 돈만 생기면 도박으로 ‘역전’을 일구리라 헛꿈만 꿨지, 가족 먹일 간식거리 하나 변변히 사주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도박욕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순 없겠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도 성실히 살아가겠다고 거듭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끊어야지’라는 머리로만 생각했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게 가족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다행히 상담을 받으면서 가족과 대화도 늘어나 마음도 점점 차분해졌습니다. 아내와 아이도 제가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줬습니다. 예전의 착하고 성실했던 아버지이자 남편 그리고 가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다짐이 끝까지 이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이 기사는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제공한 성인 도박 관련 상담사례를 토대로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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