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광부들이 가족들과 등을 뉘었던 탄광촌 사택 풍경 .일명 하모니카 나고야로 불렸다. |
여인들은 일을 마치고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함바 샤워실에서 목욕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탄광사고로 죽은 광부들의 아내들이었다. 그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리로 향했다. 판자 사이로 여체가 얼핏 보였다. 비누 칠한 몸매로 탄가루가 흘러내렸다. 인간 피부가 물비늘처럼 싱싱하게 다가왔다. 죽은 남편을 대신해 건강한 노동으로 가족의 미래를 다져가는 그 현장, 그 현실을 증거하고 싶어졌다.
“나도 모르게 샤워실 문고리에 손이 가 있었어요. 바르르 손이 떨리고 열 것인가, 말 것인가 그렇게 내면의 실랑이를 30여분간 벌였지요. 끝내 열지 못하고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그는 이런 현장을 팔지 않아도 될 만큼의 직관력이 있다면 화가로 살아갈 것이요, 여인의 음모를 드려내면서까지 해야 겨우 인간 진실을 그린다면 화가로서 재질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순간까지 그 부끄러운 순간은 삭혀지지 않았어요. 타인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구축하는 것은 아닌지 늘 되돌아보게 됩니다.”
유화물감 작업보다 머리카락 작업이 3배나 힘들었다는 황재형 작가. 그는 “제 그림은 제가 아니라 우리가 익명의 개인에게 보내는 뜨거운 연서”라고 말했다. |
“모든 것이 목적화된 세상에서 이런 건강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편으론 위안이었습니다. 모진 현실에도 굴하지 않는 한국여인의 건강한 삶의 메시지죠.”
그가 탄광촌 미장원에서 머리카락을 모아 화폭에 붙여가는 계기가 됐다.
원이 엄마의 편지글 위에 머리카락과 짚신을 붙여 만든 작품. |
불평등이 체화돼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에 무감각해진 우리 사회에 대한 강한 환기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속옷 바람으로 도망치듯 탈출한 세월호 선장입니다. 우리 모두가 만든 또 다른 ‘나’였지요.”
그가 익숙한 붓과 물감 대신에 머리카락을 사용하는 것은 습관화된 주관에 빠지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제 개성마저 눌러버려 우리 삶과 하나가 되고 싶은 심정이지요. 고된 삶마저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경지를 표현하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바람은 하나다. 이 땅에서 자신을 실현시키고자 현실을 버텨가는 모습들에 모두가 찬가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이 조화로운 생명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의 전시는 14일부터 내년 1월 28일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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