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충남 공주시 유구읍 석남2리 남방리마을 지영배(66) 이장은 녹슬어 본래 색을 잃어버린 대문을 지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 버려진 집 지붕은 슬레이트가 철거된 채 앙상한 골격만 남았고, 문에는 거미줄이 너르고 단단하게 쳐 있었다. 이 마을에 이 같은 빈집이 11채나 됐다. 10년 전만 해도 68채 모두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빈집 포함 32채만 남았다. 마을의 30% 이상이 빈집인 셈이다. 지 이장은 “아이들이 빈집에서 노는 경우가 많아 언제 안전사고가 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21일 찾은 전남 나주시 영산동 홍어특화거리 모습은 쇠퇴한 지방 상가지역의 전형이었다. 일제 적산가옥을 개조한 상가들에는 문을 닫은 곳이 더 많았다. 한 상가에는 ‘매매한다’는 현수막이 나풀거렸다. 동행한 문식 나주시 역사도시사업단 차장은 “2년쯤 전부터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고 말했다. 국도 1호선에서 상가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좌판이 북적였다는 배후주택가는 인적 하나 없이 낯선 방문객을 경계하는 개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곳곳이 빈집이거나 사람이 사는 흔적이 있어도 담장이 무너진 채 보수되지 않은 집들이 눈에 띄었다.
인적 끊긴 나주 죽전거리 지난 21일 낮, 인적 끊긴 전남 나주시 영산동 죽전골목의 초입 상가에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나기천 기자 |
근근이 유지되고 있는 한국 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하면 이들 도시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 문재인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도시재생 뉴딜’을 채택한 근간에는 각 지방도시에 활기를 다시 불어넣어 이런 사태를 막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다른 나라도 우리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거나 먼저 걸었다. 한국보다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의 산간지역 도야마현 도야마시는 쇠퇴한 도시 곳곳에 트램 등 교통망을 확충했고, 구도심을 복원하기 위해 새 집을 짓는 건설사나 이주자에게 인센티브를 준다. 독일 통일 이후 인구가 구 서독으로 급속히 빠져나간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은 빈 건물을 과감하게 철거하고, 각 지역 필요에 맞춘 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희연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도시축소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이에 부합하는 도시계획의 새 패러다임과 전략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환·나기천 기자 hwan@segye.com
축소도시란=1980년대 후반부터 유럽, 미국의 학계에서 다뤄지던 개념인 ‘Shrinking City’를 한국어로 번역한 단어다. 지속적이고 심각한 수준의 인구감소로 인해 주택, 기반시설 등의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는 도시를 의미한다. 국내 일부 학자들은 이 개념을 ‘수축도시’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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