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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文 대화 제의 걷어찬 北…ICBM 레드라인 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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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ICBM 발사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전배치라는 레드라인에 한발짝 다가섰다. 지난 17일 우리 정부의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이산가족 상봉) 제의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북한은 28일 오후 11시 40분쯤 화성-14 ICBM 2차 발사를 전격 단행했다. 화성-14 ICBM의 2차 발사가 이루어지면서 북한은 미국 알래스카와 본토 서부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1만㎞급 ICBM을 실전배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29일 새벽 실시된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에서 우리 군의 현무 탄도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합참 제공
우리 정부는 이에 맞서 화성-14 발사 6시간만인 29일 오전 5시45분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단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미군 전략자산 전개와 경북 왜관 캠프 캐롤 주한미군기지에 보관중인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를 지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미국은 이 (미사일) 시험을 규탄하며 이러한 시험과 무기들이 북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거부한다.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고 규탄했다.

◆기습발사에 대미 경고까지…北 다목적 포석

북한의 이번 발사는 전략적, 전술적으로 지난 4일 단행됐던 1차 발사와는 훨씬 심각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미 양국이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29일 오전 보도를 통해 “28일 밤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 2차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면서 “화성-14는 최대정점고도 3724.9㎞까지 상승하며 거리 998㎞를 47분12초간 비행하여 공해상의 설정된 수역에 정확히 탄착됐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발사과정을 참관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시험발사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켓체계의 믿음성이 재확증되고 임의의 지역과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대륙간탄도로켓을 기습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과시됐다”며 “오늘 우리가 굳이 대륙간탄도로켓의 최대사거리 모의시험발사를 진행한 것은 최근 분별을 잃고 객쩍은(의미 없는) 나발을 불어대는 미국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북한 노동신문이 김일성의 105번째 생일(태양절)을 맞아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중인 열병식에 신형 ICBM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연합뉴스

이번에 발사된 화성-14는 지난 4일 1차 발사 당시보다 최대고도, 비행거리 등이 더 향상됐다. 1차 발사 당시 기록은 최고고도 2802㎞, 비행거리는 933㎞였다. 1차 발사가 화성-14 발사를 성공시키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었다면 이번 발사는 기술적 신뢰성을 높이고 사거리를 최대로 연장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4일 발사는 첫 발사라 최대 추력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며 “이번에는 1차 발사 성공의 자신감으로 보다 높은 최대 추력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발표로 미루어 볼 때 이번 발사는 1차 발사와 동일한 2단 로켓 방식의 화성-14에 추력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추력이 늘어난 상황에서 탄두중량에 변화가 없다면 화성-14의 사거리 평가는 기존과 달라진다. 결국 미 본토 서부지역 전체가 사정권에 들어가는 1만㎞급 ICBM의 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화성-14의 1단 추진체는 화성-12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성-11 1단 엔진의 추력은 80tf(톤포스·80t의 무게를 밀어올리는 힘) 수준의 주엔진에 보조엔진들이 더해져 약 100tf 수준으로 추정된다. 사거리 1만1000㎞의 러시아제 SS-11 세고(sego) ICBM은 1단 추진체의 추력이 88.8tf다. 따라서 화성-14도 이와 유사한 수준의 능력을 확보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ICBM의 핵심인 대기권 재진입체 기술을 온전히 호학보했는지에 대해 북한의 주장만 있는 상황이어서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TV는 4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4`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ICBM 발사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북한이 발사한 화성-14이 발사대에서 기립한 모습. 연합뉴스

전술적으로는 한미 연합군의 핵, 미사일 타격전략인 킬 체인(Kill Chain)을 피해 언제든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했다. 한미 정보당국이 정찰위성 등을 동원해 감시를 하지만 탄도미사일 발사가 거의 이루어진 적이 없는 자강도에서 늦은 밤 기습 발사를 감행함으로서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이번 발사가 실전배치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자강도는 북한 ICBM이 실전배치되면 실제 기지나 부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라 “이번 발사가 실전배치와도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극성-2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의 실전배치 선언이 첫 시험발사 후 3개월 후에 치러진 2차 발사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화성-14의 실전배치를 단행할 가능성은 열려있다.

◆대화도 압박도 주도하지 못하는 南

북한의 화성-14 2차 발사에 대해 정부는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 반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미군 전략자산의 전개 협의에도 착수했다. 또한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중인 정밀타격용 탄도미사일 영상을 공개하는 등 강대강 대응에 나서고 있다.
북한이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시험발사 성공 소식에 기뻐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하지만 이같은 조치들이 북한에 어느 정도의 압박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화성-14 2차 발사 직후 김 위원장의 발언을 보면 한국에 대한 메시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에 대한 경고”라는 발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위협적 수사만 가득할 뿐이다. 지난 4일 1차 발사 당시에도 김 위원장은 미국에 대해서만 언급했을 뿐 한국에 대한 발언은 없었다. 이것은 북한이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만을 추구하는데 집중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북한의 거듭된 탄도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경색되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에서 남북 연결통로가 모두 끊어진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못하고 있다.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에 북한이 응하지 않자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낼 대안은 마련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군사적 차원에서도 정부의 대응은 수동적이다. 정부는 화성-14 2차 발사 직후 경북 왜관 캠프 캐롤에 보관중인 사드 발사대 4기를 사드 장비 일부가 배치된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 부지로 추가 반입하는 방안을 주한미군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28일 오전 사드에 대한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다고 밝힌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결정은 정부의 북한 핵미사일 대응 전략이 일관성이 있는가를 의심하게 한다.
6월 29일 저녁(현지시간)백악관에서 열린 정상간 상견례 및 만찬에서 문재인대통령과 트럼프미국 대통령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남제현 기자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군이 북한 도발때마다 꺼내드는 카드들이 억제력은 발휘하지 못한 채 우리 군의 능력만 공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5차 핵실험 당시 군 당국은 한국형 3축 체계를 언급하면서 대량응징보복(KMPR) 개념을 공개했다. 그 이전에는 정밀타격용 순항미사일 발사 영상을 기자들에게 공개했고, 이번에는 ADD가 개발중인 정밀타격용 탄도미사일을 공개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우리 군의 비밀무기가 공개됐다는 것 이상의 억제력은 발휘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탄도미사일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전략군과 수천문의 장사정포, 방사포를 갖고 있는 북한이 우리 군의 탄도미사일 전력에 움츠러들기보다는 더 많은 미사일과 장사정포, 방사포를 일선에 배치해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상호확증파괴 전략을 구사하려 할 가능성이 더 높다.

김 위원장이 탄도미사일을 앞세워 미국과 ‘판갈이’ 결전에 나서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는 동안 한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국면에서 조금씩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하려면 ‘한국을 거치지 않으면 미국에 접근할 수 없다’는 인식이 북한에 있어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북한은 그런 인식 대신 미국과 직접 상대하려 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2015년 8월처럼 비무장지대(DMZ)에서 도발을 감행했다가 대회를 제의하는 방식으로 한반도 정세를 흔들려 할 수도 있다. 핵과 미사일을 등에 업은 북한이 도발과 협상 제의를 반복하며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경우 한국은 북한발(發)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끌려다닐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호응하기를 기다리는 대화도, 우리 군의 능력만 공개하는 압박 대신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내면서 미국과의 직거래 시도를 차단하는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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