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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의 한국은 지금] 인정과 불법 사이 '지하철 불법 노점상'

입력 : 2017-05-20 08:57:58 수정 : 2017-05-20 15: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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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으로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지하철역 안에서 자리를 펴고 물건을 파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있다. 시민들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물건을 사곤 한다.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백발의 할머니가 떡을 팔고 있다. 시민 대부분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하철 역사 내에서 물건 파는 일은 불법이다. 이러한 사실은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 장사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잘 알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역으로 나오는 이유는 단 하나 생계를 위해서다. 불법이며 오가는 사람들에게 피해 준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분들은 혼잡한 출근 시간을 피해 점심시간쯤 돼서 무거운 짐을 들고 역을 찾아와 사람들 발길이 뜸한 저녁 8~9시쯤 자리를 접는다.

또 단속을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일부는 매일 고정된 자리를 찾지만, 일부는 그때그때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서울의 한 역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면봉과 고무장갑을 팔던 한 할머니에게 단돈 1000원 하는 면봉을 구매하며 몇몇 질문을 던지자 할머니는 성급히 물건을 챙기며 손자뻘 되는 기자에게 “잘못했다” “미안하다” “금방 치우겠다”라고 말해 되레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또 한 노점 할머니는 기자를 단속원으로 생각했는지 “노인이 먹고살기 어려워서 그래요”라고 말해 사정을 자세히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놓은 물건의 가격은 대략 1000~2000원 내외로 20~30개 정도의 물건을 모두 2000원에 팔면 약 6만 원을 벌게 된다. 하지만 정오쯤 본 물건은 저녁 늦게까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어느 하루의 얘기는 아니다.

한 할아버지가 파는 고무장갑을 집어 든 한 중년 여성은 “아버지 같은 분이 고생하는 듯해서 물건을 샀다”며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장사하겠냐”고 되물었다. 또 올해 대학 졸업반이라는 한 남학생은 쑥스러웠는지 “어머니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며 고무장갑을 구매해 가방에 넣었다.
반면 한 시민은 “누가 봐도 도색한 목걸이를 18k라고 속여 파는 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건 파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는 시민들 일부는 불편함을 호소한다. 자칫 부딪히거나 물건을 발로 찰 수 있어서다.  다른 일부는 마음의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50대 직장인 남성은 “서민들은 노인이 돼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며 “늙어서 박스 줍지 않으면 인생 성공한 것”이라고 씁쓸한 말을 했다.
지하철 역사 내에서 나물 파는 중년여성. 자리에 앉아 나물을 다듬고 있다. 비교적 젊은 층도 눈에 띄지만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이 대부분이다.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재활용품을 골라내는 할머니. 고물상에 내다 팔면 10원에서 100원을 받는다.
지하철 역사 내에서 물건 파는 일은 불법이다. 그래서 대한 단속이 이뤄진다.
단속하는 직원들도 불편한 마음은 마찬가지다. 민원이 들어오면 처리해야 하고, 이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거리로 내몰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기초생계비는 일종의 ‘꼼짝마 지원금’이다. 지금 수준으로는 현재 사는 곳에서 최소한으로 입고 먹고 자는 것 이외의 활동은 사실상 어렵다.

나라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 생활 수준에 대한 눈높이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굶지 않고 길바닥에서 잠들지 않을 정도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일부 노인들은 거리로 나와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좌판을 펼치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한편 근로소득이 생기면 그만큼 기초생계비가 깎인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 정한 최소한의 생활을 벗어나기 쉽지 않으며 이러한 이유로 기초연금을 받지 못한 노인은 1월 기준 42만 1000명으로 전체 수급자 465만 4819명의 약 9%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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