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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이것만은 확 바꾸자!] 교묘해진 '학교폭력' 숨기기 급급… 피해자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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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1 19:19:14 수정 : 2017-04-12 00: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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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학교폭력 근절 정책’… 겉도는 대책에 피해 학생 두 번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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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원도 강릉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이태경(12·가명)군은 1학년 때부터 최근까지 수년째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같은 학교 아이들은 중국동포인 조부모와 함께 사는 이군을 따돌리고 아무 이유 없이 때리기 일쑤였다. 정도가 심할 땐 연필로 어깨를 찌르거나 커터칼로 손끝을 그은 적도 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안 할머니(65)가 학교에 항의하고, 관할 구청과 교육청에 민원을 넣고 경찰에 호소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이군 할머니는 “아이 몸에 상처가 있고 따돌림 당하는 걸 직접 본 적도 있는데 다들 학교폭력이 아니라고만 하니 억울해서 전학도 못 보냈다”며 “이제는 가해자 처벌도 필요 없고 진실이 밝혀지기만 바란다”고 털어놨다.

#2.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 사는 오형석(19·가명)군은 학창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몸서리를 친다. 경미한 정도의 정신지체가 있는 오군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9년의 어느 날, 쓰레기통을 뒤집어쓴 채 반 아이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했다. 이를 전해 들은 오군의 어머니(49)가 학교를 찾아가 따졌으나 당시 담임교사는 반 아이들 대다수의 말을 믿고 오히려 오군에게 벌을 줬다. 오군 어머니는 참다못해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돌아온 건 가해학생 부모들의 멸시와 학교 측의 전학 권유뿐이었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도 담임교사가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머리를 때려 오군은 뇌진탕 진단까지 받았다. 오군은 중학교 진학 후에도 선배에게 맞아 고막이 터지는 등 괴롭힘을 당해 또다시 학교를 옮겨야 했다.

대한민국 학교가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다. 2011년 말 대구의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이후 정부가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여전히 학교폭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학생이 상당수다. 교육당국의 피해학생 지원대책이 겉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폭력 증감 여부 불확실… 수법은 교묘해져

교육부는 매년 두 차례씩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한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2016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피해응답률은 0.8%, 가해응답률은 0.3%, 목격응답률은 2.5%로 나타났다. 피해·가해·목격응답률과 응답학생 수는 실태조사가 처음 시작된 2012년 이래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반면 현행법에 따라 각급 학교가 폭력사안 발생 시 의무적으로 개최하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의 심의 건수는 2013년 1만7749건에서 2014년 1만9521건, 2015년 1만9968건으로 해마다 늘었다. 교육부는 조사 대상과 방법 등이 달라 단순비교가 어렵다고 설명하지만, 엇갈린 두 통계 결과는 학교폭력 증감 여부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 구타와 금품갈취 위주였던 학교폭력 수법은 최근 언어폭력과 따돌림이 주를 이루는 등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2016년 2차 실태조사의 피해유형별 비율을 살펴보면 언어폭력이 34.8%로 가장 높았고, 이어 집단따돌림 16.9%, 신체폭행 12.2% 순이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의 괴롭힘 같은 사이버 폭력도 급증했다.

피해자가 떠나야하는 현실을 보여준 영화 `한공주`.
◆“학교가 사안 덮으려 해” 불신 쌓이는 피해학생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에 재학 중인 김정미(15·가명)양은 2학년이던 지난해 동아리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김양이 학교 측에 피해 사실을 알려 학폭위가 열렸으나 ‘본 사안은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재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자 김양은 교육청에 감사를 청구했고, 학폭위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결과를 받아냈다. 학교 측은 그제서야 중재를 시도했지만 가해학생들은 사과를 거부하고 오히려 김양을 몰아세웠다. 김양 아버지(44)는 “이번 일이 진행되는 과정 내내 학교가 사안을 덮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과 가족들은 학교폭력 사안 처리과정에서 학교가 다수인 가해학생 편을 들어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통계로도 드러난 바 있다. 지난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민석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2∼2016년 전국적으로 학교폭력 은폐 또는 축소가 59건 적발됐고, 이와 관련해 교직원 126명이 징계를 받았다.

◆전문상담교사 태부족·기숙형 전담기관 1곳뿐

교육부의 학교폭력 피해학생 지원대책으로는 단위학교에서 상담·치유를 제공하는 위(Wee)클래스와 교육청 등 외부에 설치하는 위센터 운영, 전문상담인력 배치 등이 있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전국 초·중·고교 중 위클래스가 설치된 곳은 55.2%에 그치고, 상담교사와 상담사를 합한 전문상담인력 배치율도 41.3%에 불과하다.

학교폭력 피해학생만을 전담하는 기관은 전국에 31곳이 있지만 출석인정이 돼 대안교육을 받으며 기숙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은 대전에 있는 해맑음센터가 유일하다. 나머지 기관들은 상담 기능 정도만을 수행할 뿐이다. 차용복 해맑음센터 부장은 “부산이나 해남, 고성 등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오는데 주말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해 먼 거리를 왔다갔다하는 게 안타깝다”며 “권역별로 기숙형 전담기관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예산이다. 학교폭력 피해자 지원에 대한 예산은 대부분 특별교부금으로 편성되는 탓에 정책결정자들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깎일 수 있어 불안정하다.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폭력성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완전히 없애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학생들이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학교 현장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폭력과 관련한 큰 사건이 발생해야 당국이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무관심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보다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학교폭력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아직까지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학교폭력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관계자 모두가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할 때 해결될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교육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심 청구·행정소송 빈발… 교육적 처리 ‘실종’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처분 결과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하도록 한 교육부 훈령으로 학교폭력 처리과정에서 ‘교육’은 실종되고 ‘갈등’만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은 학폭위로부터 가해학생으로 결정되면 퇴학부터 서면사과까지 9가지 처분 중 반드시 하나 이상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 처분 결과를 학생부에 기재할 것을 훈령으로 못박았다.

대입에서 학생부 위주 전형의 비중이 계속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가해학생들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부인할 수밖에 없다. 가해학생 부모들도 최대한 시간을 끌려고 걸핏하면 시·도교육청 징계조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가해학생의 재심 청구 건수는 2012년 305건에서 2015년 408건으로 해마다 늘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학생들은 예민해진 가해학생이나 부모로부터 욕설을 듣는 등 2차 공격을 받는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간 관계 회복이 전보다 어려워진 것은 물론이다. 피해학생이 시·도지역위원회에 제기한 재심청구도 2012년 267건에서 2015년 571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학폭위 처분과 관련해 행정소송이 벌어진 건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최은순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학폭위 처분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건 일종의 이중처벌로 굉장히 비교육적인 조치”라며 “재심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당사자 간 화해나 학교 측의 중재가 아니라 변호사들이 나서게 된다”고 꼬집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과도한 경쟁과 지나친 성취지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서로에 대한 배려를 배우지 못하고 있다”며 “엄중한 처벌에 집착하기보다 인성이나 인권교육 등을 제대로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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