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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남북관계 9년째 '빙하기'…한반도에도 봄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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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9 11:00:00 수정 : 2017-03-18 17: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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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땅에 풀과 꽃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뜻의 이 구절은 흉노 왕과 결혼하기 위해 북쪽으로 떠난 전한 시대 미인 왕소군(王昭君)을 두고 시인 동방규가 지은 시에 등장한다.

계절상으로는 봄처럼 느껴지지만 봄을 상징하는 꽃도 풀도 없어 추운 겨울이 여전히 계속되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던 흉노 땅처럼 2017년 한반도 정세도 3월이라는 시기에 맞지 않게 꽁꽁 얼어붙은 동토(凍土)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남북관계의 마지막 연결선이었던 개성공단마저 폐쇄되고 남북을 잇던 통신선이 모두 단절되면서 남북관계는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직후처럼 모든 대화가 단절된 채 군사적 대치만 지속하던 시기로 되돌아갔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우리측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실내를 북한군이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남북 대치가 정점에 달하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은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섞인 관측을 낳고 있다. 2000년대 초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야권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남북교류협력이나 통일정책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잇따른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도 남한이 내미는 손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계산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과연 얼어붙은 한반도에도 봄은 올까.

◆ 남북관계는 서로의 착각 속에서 이뤄진다

1953년 이후 남북 관계에서 가장 큰 특징은 남북한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세가 펼쳐진다고 착각했을 때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를 순찰하는 장병들. 육군 제공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월맹군과 베트콩의 성공을 지켜본 북한은 베트남에서의 혁명 방식이 한반도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혁명의 기지 역할을 하면서 남한 내 혁명역량을 지원해 한반도를 공산화한다는 구상이 등장한다. 이에 따라 무장공비와 간첩들이 대거 남파돼 민중봉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968년 1월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 31명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 암살을 위해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한 사건과 같은해 11월 삼척과 울진에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해 유격대를 조직하려다 사살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들은 정치적 정통성이 부족하던 군사정권에 ‘반공’이라는 명분을 제공하고 남한 체제를 결속시키는 결과만 초래했다.

2000년대 남한의 김대중 정권이 내세웠던 햇볕정책도 마찬가지다. 당시 국제사회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은 북한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한은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화해와 교류 협력을 실시해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국가보위성 등 공안 통치 체계를 믿고 햇볕정책을 역이용해 경제적 지원을 얻고자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4월 발표한 드레스덴 선언도 남북 체제 대결에서 남한이 유리하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었다.

조기 대선까지 60일도 채 남지 않은 현재 상황은 북한과 남한 내 진보진영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집권 가능성이 큰 야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추종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간의 정책에 피로를 느끼는 국민들은 정책 전환을 반길 가능성이 높다. 5월 대선이 끝나면 남북 대화가 빠르게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착각은 자유”…심상치 않은 美 대북 압박

지난달 14일 주한미군 캠프 스탠리 기지에서 대량살상무기 제거 훈련을 실시하는 한미 장병들. 미 2사단 제공
하지만 착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생각보다 낮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고모부인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죽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국민들이 반감을 갖고 있는데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차가워져 차기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큰 요인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미국이다. 주한미군은 지난달 14~17일 한국군과 태스크포스 아이언 레인저스(Task Force Iron Rangers)라는 연합부대를 편성해 경기도 포천 영평사격장(로드리게스 훈련장)에서 북한 대량살상무기(WMD) 시설을 탐지하고 파괴하는 훈련을 했다. 주한 미 육군 66기갑연대 3대대는 지난 8일 경기도 의정부 캠프 스탠리 기지에서 적 갱도 소탕훈련을 실시했다. 이들은 북한 지하갱도를 본뜬 갱도에 진입해 적을 소탕하는 기술을 숙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사진에는 미군 장병들이 갱도의 어둠 속에서 신속하게 움직이는 모습과 개인화기를 사격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지난 7일에는 사드 발사대 2기의 국내 반입을 발표했으며, 12일에는 군산 공군기지에 그레이 이글 무인공격기를 배치했다고 밝혔다. 미 해군의 최첨단 구축함인 줌월트와 미 해병대 장비의 순환배치, 사드 포대 추가 배치 가능성도 계속 거론된다. 

동중국해서 합동훈련을 펼치고 있는 미 해군 이지스함 베리함과 일본 구축함 아시가라. 미 해군 제공
주일미군 전력도 증강되고 있다. 지난 1월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기지에 F-35B 스텔스 전투기와 E-2D 조기경보기를 배치한 미국은 오키나와에 C-130J 수송기 14대를 새로 배치하는 한편 특수작전용 CV-22 수직이착륙 수송기 10대도 2021년까지 투입할 예정이다. 미 본토 서해안을 담당하는 미 해군 3함대도 7함대 작전구역인 서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령 괌과 일본 오키나와, 일본 혼슈 서부 등에 최신 전력을 집중 배치해 북한을 남쪽에서 압박하는 모양새다. 

F-35B 스텔스 전투기. 올해 초 주일 미군에 배치됐다. 록히드마틴 제공
미군 전력이 한반도 일대로 전진배치되는 것과 맞물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강경모드로 바뀌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7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내외신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전략적 인내는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포괄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외교, 안보, 경제 등 모든 형태의 조치를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한국과 (주한)미군을 위협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위협수준을 더 높여 어느 수준까지 가면 행동을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전임자인 조지 부시나 버락 오바마와는 다른 트럼프 대통령의 기질도 대북 강경정책을 부채질한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정부 소식통은 “변호사 출신으로 의사결정과정에서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오바마와 달리 트럼프는 단순하게 사고한다”며 “미국 국방부가 이치에 맞는 대북 군사행동계획을 가져오면 그대로 따를 사람이다. 대북 선제공격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효과를 낼 군사행동방안이 실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을 접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이어진 정치, 경제적 이익을 기억하는 북한은 조기 대선에서 승리할 차기 정부의 대북 정책에 기대를 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년 동안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시점이 아니다”는 미국의 정책행보에 제동을 걸고 미국과의 접촉을 이어가기 위해 남한을 징검다리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차기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이라면 핵문제를 둘러싼 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보조를 맞춘다면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정지궤도 위성 발사, 핵탄두 실전배치 선언 등을 통해 미국과 정면대결을 불사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과 미국이 정면대결 기조를 이어갈 경우 2015년 8월 지뢰 및 포격도발처럼 대남 국지도발이나 대화공세를 통해 한미 동맹에 균열을 내려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강경하다고 해도 우리 정부가 ‘한반도 정세는 우리가 주도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움직인다면 북한과의 대화 혹은 압박 국면에서도 우리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차기 정부가 인수위 없이 바로 출범하는 것을 감안하면 정치권은 대선 기간 동안 대북 정책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사전에 구상해야 한다. 북한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만큼 대북 정책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초당적인 접근도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 수동적으로 대응하며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서 성과를 얻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뜻한 봄은 추운 겨울을 이겨낸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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