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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공허한 말폭탄뿐"…북핵 위기 막지 못한 朴 정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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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1 11:00:00 수정 : 2017-03-11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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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9일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3차 대국민담화 발표를 마치고 떠나고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주문을 끝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몰고 온 대한민국 대통령의 탄핵은 92일만에 그 역사적 심판을 마쳤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탄핵을 당한 순간이었다.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북한에 단호한 태도를 보여줄 지도자를 원하던 국민들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국가 안보 분야만큼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국민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정책을 원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은 육지와 바다, 하늘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진행됐으며, 1년 동안 핵실험을 두 차례나 실시하는 등 핵능력 고도화도 지속됐다. 박근혜 정부는 이에 맞서 개성공단 폐쇄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강도 높은 말폭탄을 퍼부었지만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는 정치적 효과 외에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2월12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 시험발사 직후 관계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 노동신문
◆ 시작부터 꼬인 안보정책, 끝내 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안보정책은 박 전 대통령의 취임 전부터 삐걱거리는 조짐을 보였다. 북한은 2012년 12월 12일 장거리미사일 은하 3호를 발사해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했다. 2013년 2월 12일에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3차 핵실험을 강행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3차 핵실험 강행 사실을 공개하면서 “다종(多種)화된 핵 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이 물리적으로 과시됐다”며 기존의 핵기술이 한 단계 도약했음을 시사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내세워 단절 직전의 상황에 직면한 북한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려고 시도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북한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대화와 협력을 추진해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회체제 구축, 통일기반을 조성한다는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3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민생 인프라 구축,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동질성 회복을 골자로 한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한다. 하지만 북한은 같은해 4월 “우리의 존엄 높은 사상과 제도를 해치기 위한 반민족적 체제통일”이라며 드레스덴 선언을 비난했다.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장병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육군 제공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첫 단추인 드레스덴 선언이 효력을 잃자 일촉즉발의 긴장이 고조됐다. 북한은 2013년 3월27일 남북 군통신선 단절을 시작으로 핵무력과 경제건설 병진노선 채택, 영변 핵시설 재가동, 개성공단 직원 철수 등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섰다. 정부 역시 북한과의 대화보다는 도발 억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류협력은 사실상 명맥이 끊어졌다.

2014년은 남북 강 대 강 대치국면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북한은 2월 21일 동해로 신형 방사포 4발을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9월6일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할 때까지 스커드, 노동, 프로그 등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3~4월에는 파주와 백령도, 삼척에서 북한이 보낸 소형무인기가 발견되면서 자신들의 소행임을 부인하는 북한과 우리측간에 설전이 오갔다. 10월18일과 19일에는 철원과 파주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에 북한군이 접근하면서 총탄이 오가는 긴박한 상황이 펼쳐졌다.

2015년과 2016년은 남북 긴장이 정점에 달했다. 북한이 2015년 5월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 수중사출시험에 성공한 직후 8월4일과 20일 김행한 DMZ 지뢰, 포격도발 사건은 한반도를 전쟁의 먹구름으로 뒤덮으며 전면전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위기는 25일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으로 해소됐지만 2016년 1월6일 4차 핵실험으로 더욱 악화됐다. 정부는 2월7일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광명성호’를 발사하자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주한미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선언하는 등 고강도 압박과 제재에 나섰다. 북한도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과 스커드-ER 미사일 발사, 핵무기 관련 기술공개에 이어 9월9일 5차 핵실험을 강행해 우리측의 압박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처럼 남북 대치가 지속되던 끝에 지난 9일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10일 박 전 대통령 탄핵 직후 긴급 소집된 전군 주요지휘관 화상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 플랜B 없이 軍 의존…‘말폭탄’만 양산

정부 출범 시기부터 북한의 도발이 거듭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기 어려웠다면 또다른 계획으로 이를 대체해야 했다. 아니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실제 효력을 갖도록 치밀한 행동전략이 마련되어야 했다. 북한은 도발과 대화 제의를 반복하며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핵보유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정치, 군사, 외교전략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플랜B를 갖추지 못한 채 북한 도발에 ‘단호한 대응’만 반복하는 수동적 자세로 일관했다.

북한 도발에 따라 수동적으로 대응하다보니 안보정책의 일관성도 사라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드 문제다.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은 사드 배치를 자국 정부에 요청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3NO(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었다)로 일관했다. 이같은 태도는 지난해 2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직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국방부가 사드 배치 공식 협의에 착수했다고 밝히면서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이후 사드 배치는 국내외의 반발여론에도 속도전으로 진행됐다. 야권이 사드 배치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미 군 당국은 6일 밤 사드 발사대를 기습 반입했다.

‘북한 도발=단호한 대응’은 박근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지만 단호한 대응에 필요한 실질적인 수단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대북 선제타격은 불가능하고 남북 교류가 끊어진 상황에서 독자적인 제재의 효과도 미지수다. 결국 북한 도발에 단호히 대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략폭격기를 비롯한 미군 전략자산의 전개다. 하지만 운영비가 막대한 전략자산은 한반도에 자주 올 수 없다. 결국 북한에 거친 어조로 경고를 하는 ‘말폭탄’ 공격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방법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군이 있었다.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직후 군은 “도발 원점을 타격한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2014년 5월 우리 군이 국내에서 발견된 무인기가 북한의 소행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북한이 반박한 것을 놓고 김민석 당시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은 나라도 아니다.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비판해 북한의 거센 반발을 샀다. 군은 2015년 8월 북한 지뢰도발 직후 “북한이 자신들의 도발에 응당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지난해 9월 5차 핵실험 이후에는 “대량응징보복을 통해 평양의 일부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다” “도발을 계속하면 완전한 고립과 자멸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문제는 군의 경고를 북한이 귓등으로 흘려듣고 도발을 지속하는데 있다.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군 당국의 경고수위가 더욱 강해지면서 자극적이며 공포와 충격을 주는 표현도 늘어났다. 결국 북한 도발을 막지 못하면서 북한의 대남 비난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의 발언이 나온다. 이같은 강경 발언은 북한 주민들의 적대감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나라가 없어지느니 김정은 정권이라도 있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는 군의 책임만은 아니다. 체계적인 위기대응전략도 대북 전략도 없는 상황에서 정책의 일관성마저 상실한 채 지지층 결집용으로 ‘단호한 대응’을 남발하며 군을 앞세운 박근혜 정부의 잘못도 크다. 

국내외 귀빈과 일반국민 등 7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3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취임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제 5월이면 조기 대선이 실시된다. 사드와 위안부 문제 등으로 주변국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남북관계는 최소한의 대화조차 실종된 1953년 휴전 직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정치권과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이익이 무엇인지,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할 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다음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안보분야에서 벌어진 지난 4년간의 실패를 반복할 경우 우리나라의 안보는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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