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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촛불 133일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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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0 13:59:04 수정 : 2017-03-10 13: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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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했다. 지난해 10월 29일 1차 이후 19차까지 이어진 촛불집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냄으로써 한국 헌정사상 유래없는 시민 혁명을 일궈냈다. 국민이 불의한 권력자에 항거한 건 4·19혁명, 87년 6월 항쟁에 이어 세 번째다. 폭력이 없는, 촛불만으로 이만한 성과를 달성한 건 처음이다. 물론 그 사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61·구속기소)씨 등은 조직적이고 교묘한 반격을 벌였다. 자칫 천문학적 액수의 뇌물수수, 국정농단이 망각 속으로 밀려날 뻔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때마다 촛불을 밝히고 진실을 요구했다. 촛불은 분노했으나 품위를 지켰으며, 자발적이었으나 조직적이었다. ‘세계사적 사건’으로까지 꼽히는 촛불집회는 133일 동안 흔들림없이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넷째주(10월24∼30일)는 촛불 혁명의 서막을 예고하는 발화점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연이어 최씨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의혹을 쏟아냈다. 박 전 대통령은 10월 24일 ‘개헌’ 카드를 꺼내 반격에 들어갔다. 비리 의혹을 개헌으로 잠재우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른바 ‘태블릿 PC’ 보도로 개헌 국면은 다시 뒤집혔고, 박 전 대통령은 “순수한 마음으로 최순실에게 도움 받은 적이 있다”고 첫 공식사과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책임 회피적인 태도는 오히려 공분을 자아냈다. 결국 주말에 국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당시 참가자는 3만명(주최측 집계)이었다.

2차 촛불집회(11월5일)에는 30만명이 광장으로 나왔다. 1차의 10배였다. 그 사이 최씨가 귀국하고 검찰에 출석했지만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검찰은 최씨에게 하루 정도 시간을 벌어줬고, 박 전 대통령은 신임총리 등 개각을 발표했다. ‘꼼수’를 쓰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인 5%로 추락했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이 때부터 촛불집회 인원이 급격히 늘면서 평범학 학생, 주부, 직장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부의 운동에서 벗어나 대중적인 행동으로 퍼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와 함께 촛불이 타오를 수록 집회와 청와대의 거리가 좁혀졌다. 1, 2차 촛불집회 때 청와대와 거리는 1300m였으나, 이후 900m(3차), 500m(4차), 200m(5차)로 줄더니 6차 집회(2016년 12월3일) 때는 불과 100m 떨어진 거리에서 집회가 개최됐다. 경찰은 청와대 인근 집회를 금지했지만 법원은 국민의 손을 들었다. 법원은 촛불집회를 두고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집회”라며 “조건 없이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적인 법원이 촛불집회를 응원하고 나선 것이다.

수십만∼수백만 군중은 집회에서 질서를 지켰다. 친구와 연인, 가족들은 영하의 기온에 촛불로 추위를 녹이며 노래를 부르고 서로 응원했다. 간혹 한쪽에서 흥분한 사람이 보이면 다독이고 말렸다. 연행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장 경찰은 불법집회 경고 대신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런 때일수록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하고 경찰 안내에 따라 이성적으로 행동해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들은 경찰차에 ‘꽃 스티커’를 붙이며 화답했다. 차벽은 꽃으로 뒤덮였다.

촛불집회는 평화적이면서도 주도면밀했다. 특히 국회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대한 가결을 할 때 지혜가 빛났다. 당시 정치권은 대통령 탄핵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박(친박근혜) 색채가 강한 여당은 분열했다. 교착된 국면이 길어지자 촛불 국민들이 직접 정치인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국회 앞에 모여 촛불 집회를 이어갔다. 국회를 둘러싼 촛불을 본 정치인들은 그제서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서둘렀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는 탄핵안을 가결했다. 찬성 234명, 반대 56명, 기권 2명, 무효 7명. 그 때 국민들은 광장에서 외쳤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2항의 규정이다. 

촛불집회는 3차 집회(2016년 11월12일)에서 처음으로 100만명이, 6차 집회(2016년 12월3일)에선 우리나라 대중 집회 사상 최대인 232만명이 모였다. 촛불집회를 이끈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추산한 누적 참가인원은 1500만명. 단순계산으로 하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일 촛불을 들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으로 촛불집회는 이제 소강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 등 부정부패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도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국민들 역시 나라가 안정된 만큼 이제는 촛불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희미해지는 촛불을 뒤로하는 국민들의 마음에 하나의 교훈은 더욱 또렷해지고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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