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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삽자루의 천민통신] (7) 호모에스엔에스(SNS)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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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6 08:00:00 수정 : 2017-03-24 16: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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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연결돼 있다. 휴대전화 요금을 낼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연결돼 있다. 출근길 페이스북을 통해 연결된 이들의 소식을 본다. 직장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면 사내 메신저엔 이미 업무 지시가 내려져 있다. 점심 식사 후 우연히 지나던 길에 핀 봄꽃을 카메라에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려본다. 해시태그와 허세문구는 기본이다. 무료한 오후, 친구들 카카오톡 대화방은 세상사 쓴소리로 물든다. 저녁을 먹을 때 즈음이면 가족 단체톡방에 위치보고 공지가 뜬다. 오늘도 늦어요, 익숙하게 타자한다. 컴컴한 저녁 덜거덩거리는 지하철 리듬에 몸을 싣는다. 노약자석에 앉은 검은 머리 노인들이 밴드나 카페앱으로 지인들의 대소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간신히 '오늘' 자리에 누워 연결된 이들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둘러본다. 행여 메인 사진이 바뀐 사람을 보면 무슨 일 있나 궁금해 하며 페이스북을 찾아본다. 찰나는 억겁이다. 시간은 벌써 '내일'을 달리고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호모에스엔에스로 진화했다. 돌도끼를 들던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종이에 쓰여지던 모든 문명의 기록들이 디지털 스크린으로 옮겨갔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 했었는데, 요새는 '남아수득USB'면 거뜬하다. 외움형 인간은 찾음형 인간으로 변화했다. '호모먹이찾아스'들은 '호모정보찾아스'가 됐다. 무언가를 쓰고 기억하는 것이 불필요한 시대가 가속화하고 있다. 진보는 퇴보를 부르기도 한다. 전화번호 30~40개쯤은 거뜬하던 호모사피엔스는 자기 전화번호도 가물가물한 호모에스엔에스가 됐다. 친구 최우진(가명)을 ㅊㅇㅈ으로 찾아보면서 그 친구 이름이 당최 떠오르지 않아 당황하기도 한다. 키보드과 터치패드에 익숙해 가끔 손글씨라도 쓸 때면 어색하기도 하다. 거친 음식을 씹고 곤지곤지잼잼을 하며 발달하던 인간의 지성이 점차 위협받고 있다. 슬기롭던 인간은 어쩌면 쓸개 빠진 인간이 됐을지도 모른다.

연결의 시대다. LTE의 속도로 지식과 사람에 연결돼 있다. 연결과 연결이 거듭하며 무엇이 이슈가 되고 회자가 되기까지 수분이 채 안 걸리기도 한다.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들이 타자하는 실시간검색어는 실검1위가 돼 온 국민에 퍼진다. 백두에 설악까지 컵라면 익을 시간이면 충분하다. 과거엔 전단을 만들고, 이를 운반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이를 입에서 입으로 옮겨주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요즘은 여럿이 컴퓨터 앞에 앉아 반복된 검색어를 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통신사 중계기와 광케이블이 열심히 일한 결과 대륙 너머의 일도 쉬이 안다.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가 하나의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한 쪽을 흔들어주면 전체가 파드득거린다. 전파 한 번 잘타면 맛집이 되는 것도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닌 시대가 됐다. 연결이 만능인 시대가 됐다.

분명 나는 연결돼 있다. 회사나 학교, 연인이나 지인, 가족이나 사회에 단체톡방으로 연결돼 있다. 직장 상사의 퇴근 후의 업무지시, 학교 선배의 단체 공지 등 불편한 연결로 묶여 있기도 하다. 연결된 나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에 든다. 연결의 결과는 모든 이와 함께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과정은 홀로 이뤄지고 있다. 홀로 밥을 먹고 홀로 영화를 본다. 홀로 술을 마시며 홀로된 자신을 위로하기도 한다. 홀로이코노미가 만연하다. 저 멀리 외딴 섬 독도를 위로하던 홀로아리랑은 모두의 노래가 됐다. 금강산 맑은 물도 에스엔에스로, 설악산 맑은 물도 에스엔에스로, 우리네 마음도 에스엔에스로 흘러가고 있는데, 연결은 됐지만 하나 되지 못했다. 많은 이의 마음은 외로움의 섬이다. 에스엔에스는 연결됐다는 자기 위로의 공간이 되고 있다. 우리는 분명 연결돼 있는데 나와 당신은 왜 멀게만 느껴질까.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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