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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색] 바람 잘 날 없는 '평화의 소녀상' 어떻게 건립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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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07 14:10:56 수정 : 2017-03-07 14: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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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오산·인천 건추위의 치열했던 기록/오산은 나눔 릴레이 ‘평화나비’로 모금 활동 전개/순천은 저금통·네이버 밴드 등 모금 방식 다각화/인천은 소녀상 이어 강제 징용 노동자상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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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지난 2일(현지시간) 일본 정부의 총공세에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소녀상 건립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6일 대전에서는 한 대학생이 서구 보라매공원에 설치된 소녀상 무릎 위에 일본 국기인 일장기와 욱일기를 꽂고 사진을 찍는 일이 빚어졌다.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은 자전거에 묶이는가 하면, 주변에 쓰레기가 무단 투기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평화의 소녀상은 이 같은 수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다. 서울 강서·금천·도봉구, 광주 북구 등 지역별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꾸려져 지역 사회의 힘으로 소녀상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소녀상은 어떻게 건립되는 걸까. 전남 순천·경기 오산·인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건추위)의 치열했던 기록을 되짚어 봤다. 이들은 저마다 백서를 발간해 소녀상 건립 과정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다.

지난해 8월 경기 오산시청 만남의 광장에 들어선 오산 평화의 소녀상의 모습. 오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시민추진위원회 페이스북 캡처
◆오산 평화의 소녀상 건추위의 이야기

인구 21만 소도시인 오산 건추위의 공식 명칭은 ‘오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 시민추진위원회’다. 시민추진위원회란 말대로 지역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과 참여로 소녀상이 건립됐다.

오산 건추위는 광복 70주년인 2015년 8월14일 김미정 전 오산시의원 등 공동추진위원장 5명을 주축으로 출범했다. 이들은 발족 선언문에서 “광복한 지 70년이 됐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원하는 진정한 광복은 오지 못하고 있다”며 “오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이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 행위를 감추려는 일본 정부의 치졸함을 고발하는 운동이자 후대에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범시민적 운동”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출범 당시 목표한 대로 딱 1년 뒤인 지난해 8월14일 오산시청 만남의 광장에서 제막식을 열었다. 소녀상은 서울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작가로 유명한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제작했다.

모금액은 당초 목표치인 500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개인 565명, 단체 95곳의 후원으로 6600여만원이 모였다.

‘오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나눔 릴레이’인 평화나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5년 12월22일 운산초등학교 학부모회를 시작으로, 2016년 4월5일 가장산업단지기업인협의회에 이르기까지 평화나비 총 50호가 각각 최소 30만원을 쾌척하며 바통을 이어갔다. 그해 1월 오산시의회도 소녀상 건립 추진을 지지하는 결의문을 채택해 힘을 보탰다.

정의와 평화를 향한 오산 시민들의 바람을 담은 비문은 아래와 같이 새겨졌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유린당한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과 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평화와 인권이 실현되는 세상을 위해 오산 시민의 뜻을 모아 이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합니다.”

지난 1일 한 어린이가 세종시 호수공원의 세종 평화의 소녀상에 꽃을 꽂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순천 평화의 소녀상 건추위의 이야기

순천 건추위는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해 3월8일이 발단이 됐다. 순천여성회, 순천시여성농민회 등 지역 여성 단체 15곳과 개인 146명이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여성 연대’를 구성해 순천 지역 시민과 함께 소녀상을 건립하고자 한다”고 선언한 것.

그해 3월17일 ‘순천 평화의 소녀상’이란 네이버 밴드가 개설되면서 논의에 가속도가 붙었다. 3개월여 만인 6월29일 개인 80명, 단체 92곳의 참여로 건추위 결성식이 열렸다.

순천 건추위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종교계가 대거 참가했다는 점이다. 건추위 상임대표 6명 중 4명은 기독교·불교·원불교·천주교 인사들이다.

순천 건추위는 또 저금통을 이용해 모금 활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관내 초·중·고등학교와 어린이집은 물론, 병·의원과 금융기관 등 지역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곳에 저금통이나 모금함을 전달했다. 건추위 활동에 뜻을 모은 지역 음식점 주인들도 가게에 저금통을 배치했다. 이렇게 모금함 30개, 저금통 4500개가 지역 곳곳에 뿌려졌다.

네이버 밴드를 통한 온라인 홍보 활동으로 다른 지역 주민들의 동참을 호소한 것도 순천 건추위의 특징이다.

관내 초·중·고생과 일반인을 상대로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글쓰기와 그리기, 퀴즈 대회로 구성된 ‘평화나비 문화제’를 개최한 게 대표적이다.

순천 건추위가 올해 1월 펴낸 소녀상 건립 백서는 하나의 교과서에 가깝다. 앞부분 3분의 1가량은 12·28 한일 정부 합의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순천 건추위는 소녀상 건립 부지 선정과 활용을 위한 공청회를 거친 끝에 지난해 10월15일 조례호수공원에서 제막식을 열었다. 순천 소녀상도 오산 소녀상처럼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만들었고, 개인 535명과 단체 170곳의 후원으로 당초 목표치(5000만원)를 초과한 7400여만원을 모금했다.



지난해 10월 인천 부평공원에 건립된 인천 평화의 소녀상의 모습. 두 주먹을 쥔 채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페이스북 캡처
◆인천 평화의 소녀상 건추위의 이야기

인천 소녀상은 건추위가 출범한 지 단 4개월여 만에 건립됐다. 인천 건추위는 지난해 6월8일 출범 기자 회견문에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인천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려 한다”며 “과거를 잘 기억하는 것만이 같은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는 강화도조약 체결 140년이었다. 부산·원산·인천 항구를 일본에 개항하고 일본의 치외 법권을 인정하는 내용의 이 조약은 일제의 국권 침탈을 불렀다.

인천 건추위는 거리 서명과 콘서트, 영화제, 토론회 등을 열어 모금과 홍보 활동을 병행했다. 김말숙 인천 건추위 집행위원장은 백서에서 “월요일을 제외하고 3개월에 걸쳐 시민들이 함께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모금과 홍보를 했다”며 “그 결과 (3만원 이상 후원한) 추진위원이 900명을 넘어섰고 9000여만원이 모금됐다”고 설명했다.

인천 소녀상은 지난해 10월29일 부평공원에 건립됐다. 부평공원은 과거 일본군이 주둔하고 주한 미군의 폐품 처리와 군수 지원을 맡던 기지인 캠프마켓이 있던 곳이다.

인천 소녀상은 오산·순천 소녀상과는 다르다. 김창기 작가가 만든 인천 소녀상은 두 주먹을 쥔 채 우뚝 서 있다. 김 작가는 백서에서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가 박차고 일어난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사람이 주먹을 불끈 쥘 때는 더 이상 참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나고 분노에 찼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인천 건추위는 소녀상에 이어 강제 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의 역사를 고려하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강제징용 노동자도 기억해야 한다는 것. 일제는 1930년대 중반부터 만주 사변을 위해 인천에 군수 공장을 지었고, 청소년들이 강제 노동에 동원됐다. 특히 부평에는 군수 물자 보급 공장인 육군 조병창과 미쓰비시 중공업 공장 등이 있었다.

건립 과정이나 시기는 제각각이지만 이들 소녀상은 모두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모금과 참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소녀상 건립 부지도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와 의견 수렴을 거쳐 선정됐다.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한다는 뚜렷한 지향점이 있다. 일본 정부의 망언과 방해 공작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앞으로도 확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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