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식품업체에서 계약직 행정사원으로 2년째 일하는 송모(36)씨는 육아휴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볼드모트는 금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에서 마법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인물이다. 존재 자체가 공포이기에 이름도 언급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알지만 ‘그 사람(You know who)’ 혹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He who must not be named)’, ‘어둠의 제왕(The Dark Lord)’ 등으로 불리는 이유다. 송씨에게 육아휴직이란 ‘누구나 쓸 수 있다고 하지만 결코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누구나 알지만 부를 수 없는 이름’인 볼드모트의 현실 버전인 셈이다.
송씨 본인은 그다지 가정적인 편도 아니었던지라 결혼 전은 물론이고 결혼 후에도 육아휴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1년 전 결혼한 아내가 임신 15주차에 접어들면서 달라졌다.
육아휴직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육아휴직의 관문을 통과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은 뒤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송씨는 직장 내 육아휴직 선배를 찾아 조언을 구하고 싶었지만 언감생심이었다. 두 달 뒤 무기계약직 면접이 예정된 마당에 아무리 친한 동료라고 해도 육아휴직에 대해 묻거나 상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300명 남짓 근무하는 직장에서 송씨가 몰래 수소문한 결과 ‘육아휴직의 길’을 걸어본 직원은 몇 년 동안 남녀를 불문하고 전무했다.
그는 “한두 시간 더 일하는 게 미덕인 사회에서 육아휴직이란 단어를 꺼내면 별종 취급받고 조직에서 매도당할 게 불 보듯 뻔하다”면서 “기획팀에서 일하는 정규직들은 연차 쓰고 나와서 야근한다는데 비정규직인 제가 감히…”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휴, 아이 둘이나 셋 키우는 집들은 대체 무슨 능력으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한 골프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2년이 지난 김모(32)씨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 사무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2년 전 결혼해 12개월 된 아들이 하나 있지만 둘째를 가질 생각은 없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김씨 아내는 아들을 키우려고 1년간 쉬었다. 육아휴직 명목이었지만 1년간 무급 휴직을 한 것이다. 아내도 이런 마당에 김씨에게 육아휴직은 세상 물정 모르고 떠드는 사치나 다름없다.
김씨는 “일하겠다는 사람은 많으니 내가 그만두겠다고 해도 회사는 흔쾌히 수락할 것”이라며 “작년에 아내가 쉬는 동안 수입이 줄어서 너무 힘들었는데 둘 중 누구도 다시 휴직할 생각은 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송씨와 김씨의 형편조차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사립대에서 시간강사로 2년째 근무 중인 박모(34)씨에게 육아휴직이란 ‘현실적으로든 법적으로든 쓸 수 없는 것’이다.
대학 시간강사의 계약조건 자체가 걸림돌이다. 시간강사는 통상 학기 단위로 계약한다. 얼핏 반년 단위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분기 단위나 다름없다. 1학기라면 3월에 시작해서 길어야 6월 초에 끝나니 3개월 정도만 계약을 하는 셈이고 2학기 또한 마찬가지다. 박씨는 “이런 상황에서 육아휴직이나 출산은 둘째치고 다치기라도 하면 ‘다음 학기에는 계약을 하지 않겠습니다’는 뜻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의 육아휴직 장려책과 법적 허점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것이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사업주는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허용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육아휴직 신청 전까지 일한 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에는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아 놔 육아휴직 활용도를 떨어뜨렸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사업체 583곳 중 70%(408곳)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육아휴직 적용대상이었지만 최근 3년간 육아휴직을 쓴 직원이 있는 업체는 절반 정도(316곳)에 그쳤다. 이 중에서도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비정규직에게 육아휴직은 ‘그림의 떡’이었다. 316곳 업체에서 육아휴직을 쓴 정규직 근로자 수는 남성이 평균 1명, 여성이 10.8명이었던 비해 비정규직 근로자는 남성이 0명, 여성이 0.4명뿐이었다.
기획취재팀=윤지로·김준영·이현미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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