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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자주국방' 외칠수록 미국 의존도 높아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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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2 08:00:00 수정 : 2017-02-11 15: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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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창시절 과학을 공부할 때, 태양계의 구성원 중 ‘혜성’에 대해 배우게 된다. 태양 등 큰 질량의 행성에 대해 타원이나 포물선 궤도를 가지고 도는 작은 천체인 혜성은 자신을 속박하는 태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멀고 먼 우주로 날아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태양의 강력한 중력에 이끌려 태양계로 돌아와 태양 주변을 맴돈다. 태양의 중력에 포획되지 않은 채 우주를 떠도는 떠돌이 행성과 달리 멀어지는 듯 하면서도 태양과 함께 일생을 보낸다.

3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모두 발언을 마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을 한민구 국방장관이 접견실로 안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미 동맹도 태양과 혜성의 관계와 비슷하다. 대미(對美) 의존도를 낮추겠다며 자주국방을 추진하면 우리 영토를 우리 힘을 지키게 된 것 같은 생각에 빠져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의존도는 변하지 않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조림계획, 율곡사업, 818 군제개혁, 국방개혁 2020 등 수많은 자주국방정책이 시도됐으나 한미 동맹에 의한 국방태세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주한미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으로 미국 의존도는 더욱 높아진 인상마저 주고 있다. 왜일까.

부산 앞바다를 항해하는 상륙함 독도함. 해군 제공
◆ 서로 닮았던 천수이벤과 노무현의 자주정책

‘자국의 경제규모에 맞는 주권을 행사하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외세로부터 국가주권을 간섭받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해 자주국방을 완성해야 한다’

2000년대 들어 이같은 인식을 가졌던 두 지도자가 있었다. 대만의 천수이벤 전 총통과 우리나라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0년 3월 대만 총통에 당선돼 8년간 재임한 민진당의 천수이벤과 노 전 대통령은 유사한 점이 많다. 변호사 출신으로 재판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정치에 입문했다. 총통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총통 재임 기간 동안 대만의 주권을 강조했다. 야당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축출 위기에 몰렸으나 극적으로 부활했다.

자주국방 노선을 추구한 것도 비슷하다. 대만의 주권을 강조했던 천수이벤은 중국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국방력 강화에 힘을 쏟았다. 6년 동안 136억8350만 대만달러(약 5100억원)를 투입해 사거리 300㎞의 초음속 대함미사일 ‘슝펑-3’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순항미사일 ‘슝펑-2E’를 개발해 중국 본토 타격 능력을 확보했다. 미국으로부터 아파치 공격헬기, PAC-3 등을 도입하려 했으나 중국을 의식한 미국 정부는 천수이벤의 후임인 친중 성향의 국민당 마잉주 총통이 집권하고 나서야 판매를 승인했다. 마잉주의 뒤를 이어 총통이 된 민진당의 차이잉원은 천수이벤의 정책을 상당 부분 계승해 중국 영향력 축소와 주권회복을 강조하면서 군비 증강을 시도하고 있어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노 전 대통령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할 말은 하는 외교’를 추구하면서 동북아의 평화를 주도한다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창했다. 국내 반발 여론이 극심했음에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적극 추진하면서 국방개혁 2020을 통해 군 구조를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고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배정했다. 독도급 상륙함과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등 신형 함정들이 속속 배치됐고 조기경보통제기와 F-15K 전투기를 비롯한 공군력 증강도 이루어졌다. 합참은 전작권 전환 결정과 맞물려 조직 영향력이 확대됐고, 국내 방산업체들은 무기 개발과 생산에 박차를 가하면서 기술력을 점진적으로 확보해나갔다.

연합 훈련을 마친 한미 공병대원들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육군 제공
◆ 자주국방이 미국 의존 더 높이는 역설

천수이벤 전 총통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는 국가의 지위에 걸맞는 위상을 갈구하던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욕망을 충족시켰다. 중국의 압박으로 외교적 고립이 심화돼 올림픽에서도 국기를 내세우지 못하던 현실에 좌절하던 대만인들과 IMF 구제금융을 졸업하면서 얻은 자신감에 더해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자부심을 느끼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두 지도자의 외교안보전략은 목마른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두 지도자의 임기가 끝난 지 10년이 흐른 시점에서도 대만과 우리나라의 자주국방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만과 달리 우리나라는 외교적으로 고립되지 않았지만 대미(對美) 의존도는 대만보다 높은 측면이 있다. 좌파로 분류되는 참여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하며 미국 의존 탈피를 외쳤지만 주한미군 기지 이전 사업 등 미국의 해외 주둔군 재편 계획을 지원하고 이라크에 수천명의 병력을 파견해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반미면 어때?”라며 ‘탈미국’ ‘자주국방’을 주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보수정권보다도 미국의 정책에 충실히 보조를 맞췄던 동맹 중시 모습이 숨어있었다.

미 공군의 B-1B 전략폭격기. 유사시 핵탑재가 가능한 전략자산 중 하나다. 미 공군 제공
이같은 모습은 자주국방이 갖는 의미가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진 것에 큰 원인이 있다. 냉전 시절 자주국방은 우리 힘으로 우리 영토를 지키자는 ‘자력(自力)국방’에 가까웠다. 북한 탄도미사일이나 핵위협도 없었고 첨단 장비의 비중이 높지 않았던 시절이라 무기 국산화만 진행해도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방위의 한국화’가 강조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자주국방의 개념은 달라진다. 자주국방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국방태세의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진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반도 방위를 우리 군이 주도하되 부족한 전력은 미국이 지원하는 구조로 상호 협력 하에 진행된다. 미국이 지원하는 전력은 정보, 감시정찰, 전자전 등인데 이러한 전력은 현대전의 핵심이지만 우리 힘으로 갖추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 여기에 핵우산과 전략자산까지 포함하면 한미 동맹에 의한 대미 의존도는 변하지 않고 오히려 높아진 측면도 있다. 미국의 도움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미국의 요구에 일정부분 응하며 협조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협력적 자주국방’을 앞세워 국방개혁을 적극 추진했지만 그 성과가 ‘대미 종속의 종말’이 아닌 ‘미국과의 협력에 의한 국방태세 변화’에 가까웠던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IT의 발달로 사회적, 경제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제기된 군사혁신도 한 원인이다. 2000년대부터 부대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체계, 전장의 무인화, 여단 중심의 유연한 전투부대 구조 등 새로운 국방 패러다임이 형성되면서 군사혁신이 시작됐다. 이같은 패러다임은 세계적 추세였지만, 그 추세를 선도하는 조직은 미군이었다. 제한된 시간과 예산 내에서 국방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우리 군에 미군의 군사혁신은 좋은 참고서였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는 있었지만 미군과 유사한 형태의 혁신이 진행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서울 용산 주한미군 기지에 위치한 편의시설인 드래곤 힐.
미국이 동맹국을 다루는 대외 전략도 한 원인이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전략적 의도를 자국의 이익으로 연결하는 전략에 탁월하다. 이러한 유연함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동맹체제를 유지하는 원천이다. 참여정부 시절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요구하는 우리측 요구를 주한미군 재편에 따른 평택 기지 이전과 이라크 파병 등 자국의 전략적 이익과 연계했다. 자주국방 노선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 우리 군 전력 증강에 필요한 무기들을 더 많이 판매하고 상호운용성 증진을 통해 동맹 체제 강화와 국익 증대를 꾀하는 실리를 챙겼다. 오바마와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 아베 정권의 목표인 ‘보통국가화’를 지지하면서 일본의 군사력을 주일미군과 연계해 중국 견제에 활용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 면담하고 있다. 미 국방부 제공
북한 위협이 지속되고 있고 중국 등 핵보유국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한미 동맹에 의한 대미 의존을 완전히 끊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장 진보적인 정권이었던 참여정부도 대미 의존도를 낮추고자 자주국방을 추진했지만 미국과의 밀월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자주적인 국방태세 구축을 위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하면서 한미 동맹을 북한만 바라보던 종속적인 냉전 구조에서 벗어나 한 단계 높은 차원의 협력적 질서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한미 동맹은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꺼려하고 과거의 체제에 만족하려는 우리측의 태도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는 처음 연주할 때는 다양한 악기들이 제각각 소리를 내면서 불협화음을 일으키지만 시간이 흐르면 소리가 조화를 이루면서 멋진 교향곡을 들려준다. 한미 동맹은 거대한 오케스트라다. 우리의 ‘홀로서기’ ‘할 말 하기’ 정책이 미국과 충돌한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시대 변화에 걸맞는 수평적인 한미 동맹질서를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수혜만 받는 냉전식 동맹 체제는 미국 내 ‘안보 무임승차론’만 가중시킬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에 변화가 예상되지만 한미 동맹은 이상없다는 식의 립서비스 대신 국내외 정세 변화에 맞는 새로운 동맹체제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의 ‘홀로서기’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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