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안뜰] 살림살이도 옷차림도 '사대부의 품격' 위한 전제조건

〈32〉사대부의 재테크와 의관 갖추기

사대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의관을 잘 차려입고 글을 읽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한껏 멋을 내고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다. 두 이미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인 듯하지만 의관을 잘 차려입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대부들은 왜 옷을 잘 차려입고자 한 것일까. 풍류를 즐기는 곳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잘 꾸미고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곳에는 기생들이 동참할 것이고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시(詩)·서(書)·화(畵)에도 능숙해야겠지만 일단 외모에서 풍기는 멋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글공부를 하는 데에는 왜 또 옷을 잘 차려입어야 했단 말인가. 그것은 사대부들이 글공부를 하는 마음가짐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알면 금세 답을 찾을 수 있다. 글공부의 최종 목적지는 과거 합격이다. 그러나 그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단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도 쉽지 않다. 또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데에는 또 시간이 필요하다. 먼저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책상부터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책상을 정리하고 나면 벌써 하루가 저물어 있다. 어렵게 마음먹고 시작한 공부라 하더라도 집안의 대소사까지 챙겨야 하고 예기치 않은 이런저런 일들도 많다.


이황(왼쪽)과 심득경의 초상. 심득경은 숙종 19년, 식년시에서 3등으로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서 시문을 읊으며 지낸 문인이다. 동파관을 쓰고 도포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검은 모자와 대비를 이루며 점잖으면서도 날카로운 기상을 드러내는 데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글공부가 먼저일까, 의관 갖추기가 우선일까

그러다 보니 공부가 목표인 사대부는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사대부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몸가짐, 구용(九容)이 있다. 발은 진중하고, 손은 공손하고, 눈은 단정하고, 입은 과묵하고, 목소리는 조용하고, 머리는 바르고, 숨소리는 엄숙하고, 서 있는 모습은 덕스럽고, 얼굴빛은 장엄해야 한다. 또 사대부가 경건한 태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의관을 바르게 하고, 단정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니고, 생각을 한 곳에 모으고, 속이지 않고 태만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 구용과 지경보다 좀 더 강력한 제약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물(四勿)이 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용과 지경과 사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나면 가만히 있어도 사대부의 위용이 드러난다. 여기에 이들을 관통하는 것이 있으니 요즘 말로 기승전 예(禮)이다. 예는 몸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기품이며, 사대부로서의 품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의관이다. 위세가 이러하다 보니 조선시대 사대부들 중 누구 하나 의관을 갖추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살림을 먼저 챙겨야 하는 진짜 이유

그렇기에 우리가 갖고 있었던 이미지처럼 사대부로서 글공부만을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의관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살림살이는 보장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대부들 중에는 살림살이에 신경을 쓰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택당 이식은 1610년(광해군 2년), 문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여러 번 국왕의 출사 명령에도 복종하지 않았다. 이렇게 소신을 굽히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부인의 능력 때문이었다. 부인 신씨의 친정은 전부터 재화가 넉넉했을 뿐 아니라 집안을 잘 통솔하여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택당이 살림살이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글공부나 하면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집안 살림살이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다만 어떻게 하면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경제를 책임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을 짓고 독서·수양·저술에 전념하며 많은 제자를 기른 대학자이다. 그는 오히려 살림살이를 신경 쓰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다만 살림살이에만 전념하면 속인이 되기 쉬우므로 문장을 공부하면서 살림살이를 해야 가풍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바로 살림살이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것은 학문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들 준에게도 그의 사상은 그대로 전달되었다.

“살림살이 등의 일도 사람으로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 아비인 나도 평생 그 일을 비록 서툴게는 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전혀 하지 않을 수야 있었겠느냐. 다만 안으로는 오로지 문장을 하면서 밖으로 살림살이를 하면 선비로서의 풍모를 떨어뜨리지 않아서 해로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문장을 완전히 저버리고 살림살이에만 정신을 팔면 이것은 농부의 일이며 시골 속인들이 할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말을 하는 것이다.”(퇴계집)

가식 없이 생활 속에서 느꼈던 것을 당부하는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편지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생활대책을 세우기 위해 고심했다. 심지어 다산 정약용은 단순히 생계대책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살림을 품위 있게 늘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 해법을 아들 학연에게 전해주었다.

“살림살이를 꾀하는 방법에 대하여 밤낮으로 생각해보아도 뽕나무를 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이제야 제갈공명의 지혜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없음을 알았다. 과일을 파는 일은 본래 깨끗한 명성을 잃는 것은 아니지만 장사하는 일에 가까우나 뽕나무를 심는 것은 선비의 명성을 잃지도 않고 큰 장사꾼의 이익을 볼 수 있으니 천하에 다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남쪽 지방에 뽕나무 365주를 심은 사람이 있는데 해마다 365꾸러미의 동전을 얻는다. 1년을 365일로 보면 하루에 한 꾸러미로 식량을 마련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궁색하지 않을 것이요. 아름다운 명성으로 세상을 마칠 수 있으니 이 일을 가장 힘써 배워야 할 일이다. 그다음으로는 잠실 3칸을 짓고 잠상을 7층으로 하여 모두 21칸의 누에를 길러 부녀자들도 놀고먹는 사람이 없게 도니 이 또한 좋은 방법이다. 금년에는 오디가 잘 익었으니 너는 그 점을 소홀히 마라.”(다산시문집)

다산은 뽕나무의 환금성에 감탄하며 살림살이의 지혜로 뽕나무 심기를 강조했다. 다산이야말로 재테크의 중요성을 간파한 조선 최고의 사대부가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다산도 돈벌이만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선비의 명성을 잃지 않으면서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뽕나무 심기이기 때문에 자식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서직수의 초상.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사대부 어떻게 의관을 갖출 것인가

이제 공부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살림살이가 마련되었으면 본격적으로 의관을 갖추고 글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대부가 갖추어야 할 옷차림은 어떤 것일까?

우리 옛말에 ‘철부지’라는 말이 있다.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인생살이에서 때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옷도 그렇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그에 걸맞은 옷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옷을 잘 입는 사람이 된다. 사대부로서의 품위가 있으려면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대부의 옷은 키를 커 보이게 하는데 최적화된 옷이다. 뿐만 아니라 꼿꼿한 기상을 드러내는 데에도 안성맞춤이다. 검은색 모자와 흰색 옷은 기본적으로 흑백의 조화를 이루며 세련미와 함께 올곧은 선비의 이미지와 부합된다. 거기에 검은색 갓은 머리 위로 올라오는 모정의 높이가 아주 높아 키를 커 보이게 한다. 또 위아래 흰색의 바지저고리와 그 위에 입은 흰색의 도포는 검은색의 모자와 함께 깨끗함과 고상함을 동시에 발산한다. 모자가 꼭 외출용 갓이 아니어도 집안에서 쓰는 모자 역시 키를 커 보이게 하는데 손색이 없다.

살림살이를 늘리는 것조차도 공부를 위한 전제조건이었으며, 그 조건을 완성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 남성들의 의관 갖추기 였으니 멋과 공부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던 사대부가 살림살이의 지혜는 바로 의관 갖추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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