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詩歷) 50년을 맞은 이건청(75·사진) 시인이 열한 번째 시집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서정시학)를 펴냈다. 인용한 표제작에서 보듯 시인의 생은 말[言]에 붙들린 말[馬] 같은 세월이었다. 곡예 같은 생의 뒷마당에 하릴없이 묶인 말은 아무리 버둥거려도 벗어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가는 모든 존재에 새겨진 멍이다.
“멍은 검다./ 아니 푸르다./ 아픈 멍도 있지만/ 그리운 멍도 있다.// 쌓인 그리움이/ 옹이로 짜여,/ 가슴 한켠에/ 대못으로 박힌 멍도 있다.// 명정에 덮인/ 목관 속까지 따라가/ 백골에 새겨지는 멍도 있다.”(‘멍’)
살아 있는 것들의 낙인 같은 ‘멍’을 산비탈 붉게 물든 꽃들이 달랜다. “거기, 세상의 매와 멍을 다/ 품어 안고 퍼질러 앉아” 흐느끼는 ‘진달래꽃’이 “멍든 사람들을 다독여/ 불러 앉히며 너는 울지 마라,/ 눈보라 휘몰아치던 때도 가고./ 새들도 오지 않았느냐”고 다독인다.
시(詩)라는 한자를 풀어 보면 ‘말로 지은 시인의 절간’이라는데, 이건청은 그 절간에서 청정하게 세속의 아픔을 씻어내는 수도자 같은 자세를 이번 시집에 내내 보인다. 백골까지 새겨지는 멍도 있고 사막까지 따라오는 울음소리도 들리는 생이지만 “열매를 터뜨리면/ 잊혀지지 않으려는/ 그리움처럼,/ 진한 향내가 사람을” 감싸는 산초열매처럼, “우리 여생의 길도/ 그리움의 향기 아찔한/ 저 풀섶 쪽으로/ 아득히, 멀리/ 열려 있기를”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시인들아,/ 당신들이 놓아 키우는 말들이/ 큰소리로 울리라. 말들이 말들 속에 씨를 심고,/ 푸진 말들이 자꾸 태어나리라./ 시인들아, 당신들의 말들이/ 말들을 자꾸 품으면/ 망아지들이 아슴아슴 태어나리라.”(‘시인들아, 말 사러 가자’)
이건청은 “감각과 상상력과 시적 긴장과의 길항 속에서 좋은 말들을 발견하는 일은 고된 것이지만 기쁜 일”이라며 “밝은 눈과 맑은 귀로 보고 듣기 위해 애를 써야 하리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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