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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트럼프, 북핵 위협 좌시 안 해… ‘전략적 인내’ 폐기될 것”

입력 : 2016-11-29 19:08:42 수정 : 2016-11-29 19: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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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북한에 덜 친절하고 덜 자비로운 미국이 될 것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인내심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만난 천영우(64)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행정부에 대한 진단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슬람국가(IS) 소탕전, 이란 핵 문제 해결에 집착한 사이 증대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이끌 차기 미 행정부에서 방치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게 요지다. 그는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와 외교부 2차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 외교안보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전형적인 관료의 이미지가 굳어졌을 법도 한데 의외로 마음씨 좋은 동네아저씨 같은 소탈함이 대화 곳곳에서 묻어난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데.

“대외정책은 국익이 좌우한다. 대통령이 국익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시각과 대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트럼프 당선자는 경제적 실익을 안보이익보다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실용주의적 접근이다. 그래서 안보적 측면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통상 분야에서 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한·미 FTA 폐기는 쉽지 않겠지만 개정하려는 시도는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가장 큰 난제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망한다면.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은 IS 대처 등 중동에 초점이 맞춰지겠지만 이란 핵 문제도 해결된 만큼 오바마 행정부 때보다는 북한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 정도가 대북정책을 결정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위협에 대한 인식은 북한이 만들어가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수년 동안 커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위협을 트럼프 행정부가 무시하고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 내각이 ‘마초’ 기질이 농후한 강성 인사들로 채워질 개연성이 다분한 만큼 오바마 행정부의 기조였던 ‘전략적 인내’와 같은 어정쩡한 대북정책은 폐기될 것이다. 북한에 대해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을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처음에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설 법한데.

“북한 당국과 미국 민간전문가의 접촉은 늘 있었다.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필요하니까. 문제는 공식적인 접촉이다.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하느냐에 따라 북·미 간 의미있는 접촉이 이뤄질 것이다. 대화의 조건이 더 중요하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등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북·미 간 공식 접촉의 조건은 뭐라고 보는지.

“북·미 협상과 6자회담에서는 두 가지 변수가 있다. 하나는 제재 강도와 효과다. 군수물자에 한정된 제재를 전면적인 제재로 확대하고, 북한과 교역하는 중국 기업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이 시행되면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핵동결과 핵실험 중단 카드를 앞세운 평화공세일 것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완성도다. 추가 핵실험이 필요없을 정도로 경량화·소형화를 달성하고 핵무기를 최소 수천㎞까지 운반하는 미사일 기술을 확보한다면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대북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체결,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미국이 대북 선제타격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엔 헌장 51조의 자위권을 근거로 행사할 수 있는 선제타격은 공격이 임박하고 다른 수단이 없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선제타격을 가하면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북한 공격이 임박했다면 몰라도 국제법상 금지된 예방전쟁으로 비난받을 가능성도 있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 주한미군 철수 등 대선 공약을 이행할 가능성이 있을까.

“방위비 분담금은 트럼프 당선자가 대선후보일 때 여러 차례 언급했다. 미국이 강도 높게 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FTA 재협상에 비하면 방위비 분담금은 큰 이슈가 아니다. FTA는 몇 십조원짜리이지만 방위비분담금은 연간 1000억원을 더 내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한·미 동맹이 흔들릴 사안이 아니다. 맞서지 말고 미국이 쉽게 양보할 부분을 챙기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국내에서는 독자적 핵무장 주장도 나오는데.

“통상 다른 핵보유국은 핵을 통한 상호 억지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무너질 수 있는 체제다. 따라서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하면 핵무기를 사용해 체제 붕괴 가능성을 1%라도 낮추려 할 수 있다. 핵무기를 사용하는 대북 억지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미군의 전술핵 재배치도 자체적인 핵무장도 도움이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기 전에 북한 핵·미사일 기지를 제거할 타격수단이다. 국제사회의 제제를 받아가면서 핵개발을 할 필요는 없다.”

-북한의 핵 개발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보는지.

“북한이 사용 가능한 핵을 가졌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아직 가지지 못했다고 본다.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 하는 게 그 증거다. 핵실험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핵실험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소형화, 경량화를 달성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한다면 핵탄두 소형화는 달성했으나 이를 운반할 중거리 미사일은 부족하다는 의미다.”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은 어떻게 보나.

“오래전에 해야 했다. GSOMIA를 32개국과 체결했다고 하는데, 북한 정보를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과거에 우리를 침탈한 나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인식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 대북정보다. 미국의 정찰자산을 총동원해도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의 10분의 1도 파악하기 힘들다. 그 공백을 일본이 상당 부분 메워줄 수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를 빼면 북한 정보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일본이다. 우리가 수조원을 투입해야 확보할 수 있는 정보자산을 사실상 공동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 우리 돈을 아낄 수 있는 협정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알 수 없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가 좋지 못한데.

“중국이 반대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이롭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좋을수록 중국은 강하게 반대한다.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가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강요하는 레버리지가 되는데 중국이 좋아할 리 있겠나. 중국이 ‘한국은 앞으로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해칠 일을 더 많이 하겠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해야 중국의 대북정책을 바꿀 수 있다.”

-최순실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청와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보나.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의 문제다. 수석비서관으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지 않으면 굳이 수석비서관을 둘 필요가 없다. 대통령과 수석비서관은 실시간으로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 수석비서관들이 대통령 의중을 파악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에서는 매일 대통령과 독대했다. 독대를 마치고도 수차례 통화했다. 국가안보실장,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처장, 외교안보수석으로 구성된 청와대 외교안보라인도 비효율적이다. 책임과 권한이 불분명한 조직들이 병렬적으로 편성돼 외교안보라인의 통일된 의견 수렴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현 시국에서 정부가 취해야 할 외교안보정책은 무엇이라 보는가.

“그런 것을 말하려면 내가 대통령급은 되어야 한다(웃음). 외교안보정책은 나라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생존과 국익이 달린 것이다. 견해차는 있을 수 있어도 당리당략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임진왜란 이래 400여년 동안 안보를 남에게 의존하다 보니 나라를 지키는 전략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부족하다.”

정리=박수찬 기자 psc@segye.com

대담=박병진 군사전문기자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1952년 경남 밀양 출생 △부산대 불어불문학 △컬럼비아대 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외무부 입부(제11회 외무고시·1977) △외교부 국제기구정책관(2002∼2003) △주유엔 주재 차석대사(2003∼2005) △외교부 외교정책실장(2005∼2006)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겸 6자회담 수석대표(2006∼2008) △주영국대사(2008∼2009) △외교부 제2차관(2009∼2010)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2010∼2013)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2013∼) △아산정책연구원 고문(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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