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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추억의 건물' 철거 대신 공존 … 도시에 문화를 불어넣다

입력 : 2016-10-09 21:04:00 수정 : 2016-10-09 22: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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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서울, 도시재생에서 해법 찾다] ① 세운상가, 도시재생으로 재도약
2016년 서울 사대문 도심의 대표적인 번화가 종로. 수많은 유동인구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흥에 가득 차 있는 길을 따라 동대문을 향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인적은 드물어지고, 주변의 조명은 어두워진다. 거리의 활력도 한풀 죽은 느낌이다. 그 중심에 흉물처럼 서 있는 건물이 바로 ‘세운상가’다.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로 각광 속에 세워졌으며, 한때는 ‘국내 전자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그곳. 그러나 지금은 존재감이 사라져 대중들에게 ‘추억’ 속의 한 페이지가 된 지 오래다.

이 세운상가가 잃어버린 존재감을 다시 찾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 1월 서울시가 세운상가 재생사업 ‘다시·세운 프로젝트’ 1단계에 착수한 것. 새로운 출발을 위해 세운상가가 선택한 방식은 낡은 건물을 밀어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건물을 다시 짓는 ‘전면 철거 후 건축’이 아닌 ‘재생’이다. 세운상가가 가진 역사성과 문화성을 살리면서 지역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불어넣는 것이 목표다. 과연 세운상가의 이러한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오랜 침체 속에 도심의 대표적 낙후지역으로 전락한 세운상가.
서울시 제공
◆도시재생 핵심은 지역 활력 되찾는 것

세운상가 일대는 유동인구 많기로 유명한 도심 사대문권 안에서도 ‘섬’ 같은 존재로 통한다. ‘2014년 서울 유동인구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 10곳 중 8곳이 명동, 종로, 을지로 일대에 속해 있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중구 명동길14의 하루 평균 유동인구는 9만9635명에 달한다. 이에 반해 세운상가의 유동인구는 불과 2300여명에 불과하다. 직선거리 1.2㎞에 불과한 두 지역 사이에 40여배에 달하는 ‘온도차’가 존재한다.

이는 세운상가가 어느 순간 경제적, 문화적으로 ‘섬’이 된 탓이 크다. 원래 세운상가는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 주도로 당시 종로·퇴계로 일대에 즐비한 윤락업소를 전면 철거하고 건립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세상의 기운이 다 모여라’는 뜻의 ‘세운(世運)’이라는 이름은 건립 당시 이곳에 몰린 기대를 함축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후로도 세운상가는 1980년대까지 국내 전자산업의 메카로 성장을 거듭하며 서울의 가장 ‘젊고 뜨거운’ 지역으로 통했다. 한때 ‘탱크나 미사일도 만들 수 있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출범하며 세운상가는 급격한 냉각기를 맞기 시작했다. 상가의 활력을 채워주었던 상인들이 하나씩 떠났지만, 그 빈자리가 새로운 활력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이후 30여년간 세운상가는 인파 가득한 도심 속에서 유일한 ‘차가운’ 지역으로 남아 있다.

이번 재생사업의 핵심은 세운상가의 잃어버린 ‘활력’을 다시 찾는 것이다. 서울시는 세운상가 재생사업을 시작하며 ‘다시·세운’이라는 이름에 그 각오를 담았다. 프로젝트는 우선 1단계로 발길을 끊은 인파를 다시 끌어모으는 데 집중한다. 우선 세운상가가 도심 남북을 연결하는 수평적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기 위해 상가군 7개 건물 양옆 3층 높이에 있는 보행데크를 모두 연결한다. 보행데크 위에는 전시실과 휴게실 등의 다양한 거점문화공간을 만들어 세운상가를 찾고 싶은 공간으로 바꿔나갈 계획이다. 청계천과 을지로를 오가는 사람들이 쉽게 보행데크로 오를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등 접근성 향상에도 주력한다. 세운초록띠공원은 보행데크로 쉽게 오를 수 있도록 경사진 형태의 ‘다시세운광장’으로 새로 태어난다. 이런 물리적 변화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세운상가로 모이게 하고 전체 상가를 다시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이다.

보행랜드마크 조성과 4차산업거점 육성을 통해 새로운 도심거점으로 거듭나게 될 세운상가의 가상도.
서울시 제공
◆세대 간 공존의 공간으로 재탄생

프로젝트에는 세운상가를 4차산업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계획도 담았다.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세운상가군에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기능하는 산업생태계가 남아 있다는 것이 시의 판단이다. 여기에 최근 한 달 15만∼20만원의 값싼 임대료를 찾아 몰려들고 있는 벤처창업가들의 열정과 창의력을 버무려 세운상가의 잃어버린 경제적 활력을 되찾는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시는 세운상가를 창의제조산업 혁신지로 조성하고자 다시세운협업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스타트업 창업자를 위한 ‘세운리빙랩’의 시범사업에도 착수했다.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신직업연구소, 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등 전략기관도 유치한다. 주민 주도의 지역활성화를 위해 다시세운시민협의회와 협력해 ‘수리협동조합’, ‘21세기 연금술사’, ‘세운상가는 대학’ 같은 역량 강화 프로그램 운영도 지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월 프로젝트 착수식에서 “3차 산업혁명을 이끈 요람이었던 세운상가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혁신지로 거듭날 것”이라면서 “다시 세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세운상가의 유동인구는 현재 하루 평균 2300여명에서 1만3000명으로 5배 증가하고 상가 매출이 30% 늘어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중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세운상가 일대는 다양한 소규모 산업이 자생적으로 나타나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이런 융복합과 공존의 개념은 김수근 선생이 세운상가를 처음 지을 때부터 반영된 것”이라면서 “다만 상가의 주기능이었던 전자 기능이 빠져나가면서 급격한 공동화현상이 생기고 지역 생태계 자체가 급격히 쇠퇴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다만 아직도 그 주변을 가보면 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생태계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생태계를 죽이지 않고 살려 미래적인 부분을 접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이번 재생사업은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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