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장르 해결사’ 이두용 감독을 만나다

입력 : 2016-10-09 21:28:05 수정 : 2016-10-09 21:28:0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BIFF 한국영화 회고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은 ‘장르의 해결사’ 이두용(사진) 감독이다. 그는 액션 멜로 사극 사회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우리의 삶 속 희로애락을 작품마다 다른 색조로 그려냈다. 그리고 일흔네 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삶을 비추는 영화, 남과 북에 대한 영화 만들기를 꿈꾼다.

1970년 ‘잃어버린 면사포’로 데뷔한 이 감독은 한국영화를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 알린 주인공이다. 1981년 ‘피막’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84년에는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가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한국영화 ‘최초’의 일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라는 것조차 몰랐다”는 그의 말처럼 당시는 영화인들이 생존을 위해 영화를 찍던 때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알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2005년에는 프랑스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서 이 감독을 초청해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이 감독은 1974년에 줄줄이 내놓은 ‘용호대련’ ‘돌아온 외다리’ ‘분노의 왼발’ 등 태권 액션영화뿐 아니라 멜로 ‘죄많은 여인’(1971) ‘욕망의 늪’(1982), 전통과 한국 정서를 담은 시대극 ‘초분’(1977) ‘뽕’(1985) ‘내시’(1986), 사회성 드라마 ‘경찰관’(1978), 하드보일드 ‘최후의 증인’(1980),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지옥의 49일’(1979), 현대 사회의 가족 문제를 그린 ‘장남’(1984) 등 폭넓은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8편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용호대련(1974): 1940년대 만주. 독립군 자금으로 쓰일 황금을 두고 일본 가라테 사부 사사키, 중국의 무술 고수 왕, 한국의 태권도 고수 이가 격돌한다. ‘이두용표’ 발차기 태권도 액션영화의 출발점으로, ‘악당 귀싸대기를 발차기로 파바박 때리는’ 장면을 원했던 이 감독의 요구에 따라 활극 액션을 선보인 재미교포 차리 셸(한용철)은 당대 최고 액션 스타가 됐다.

▲초분(1977): 오태석의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 이 감독이 샤머니즘을 소재로 만든 첫 영화다. 외딴섬의 박수무당이 초분의 전통을 고수하며 사는 주민들을 현혹해 땅을 팔게 하고 젊은이들을 궁지로 몰아간다. 액션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전환기를 맞는다.

▲경찰관(1978): 좋은 조건의 직장을 마다하고 경찰이 된 최문호 순경. 정년을 앞둔 파출소 엄 소장은 그에게 긍지를 잃지 않도록 정신적 힘을 준다.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경찰관의 애환을 그렸다.

▲피막(1980): 사람이 죽기 전 잠시 안치해 원한이 마을에 서리는 것을 막고자 마을 외곽에 세운 피막(避幕). 억울하게 죽은 피막지기 삼돌의 복수를 위해 무당으로 가장한 그의 딸 옥화가 강 진사 집에 들어온다. 20년 가까이 묻혀 있던 피막에 얽힌 비밀이 드러난다. 베니스국제영화제 특별상 수상작이다.

▲최후의 증인(1980): 이 감독이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빚어낸 작품.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세상물정 모르는 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세태를 폭로하는 영화다. 6·25를 소재로 하지만 전쟁영화가 아니라 권력에 상처 입고 희생당하는 약자들을 그렸다. 개봉 당시 검열로 30분이나 삭제된 채 상영됐다. 배창호 감독이 ‘흑수선’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 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복원된 154분 짜리를 감상할 수 있다. 양조장 주인 양달수 피살사건을 맡게 된 오형사는 사건을 추적하던 중 6·25전쟁 당시 유산에 얽힌 사건 때문에 억울한 희생을 당한 손지혜와 황바우의 사연을 알게 된다.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4): 동시녹음을 최초로 시도한 한국 영화. 유교적 억압의 굴레에서 고통받았던 한 여인의 기구한 일생을 다룬다. 가난한 양가의 규수 길례는 김 진사 댁의 망자와 혼례를 올리고 청상과부로 살다 겁탈당한 뒤 내쫓긴다. 밤길을 걷던 길례는 한 머슴을 만나 그와 부부가 되고, 머슴의 가문이 복권되어 부잣집 며느리가 된다. 하지만 아이가 없어 씨내림을 받아 아들을 낳은 길례에게 남편은 자살을 권유한다. 조선시대 여성의 참혹한 삶이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진출했다.

▲장남(1984): 고향이 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노부모가 상경한다. 장남은 부모를 모시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처음 겪는 서울 아파트살이가 노부모에겐 쉽지 않다. 근대화 속에 혼란을 겪는 가족의 초상을 그린 작품. 아파트 곤돌라에 실려 상여가 내려오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내시(1986): 신상옥 감독의 ‘내시’(1968)를 리메이크 했지만 정작 이 감독은 신상옥 원작을 보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로 연출했다고 한다. ‘피막’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의 연장선에서 유교적 억압에 희생되는 여인과 내시의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는 사극으로 완성했다. 궁중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에로티시즘, 내시들의 반란으로 표현되는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당시로는 5억원이라는 최대 규모의 제작비를 들였다.

부산=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