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래퍼로… ‘움직이는 예술정거장’의 매직쇼 한적한 시골 충청남도 부여군 간대리 마을에 요란한 색깔의 우주선이 그려진 버스가 먼지를 날리며 들어온다. “저게 뭐여? 뭔 버스가 저려?” 경로당에 모여 있던 노인들이 관심을 보이며 버스로 모여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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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와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부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로 랩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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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월섭 할머니(왼쪽)가 환한 표정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
2012년부터 시작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움직이는 예술정거장’은 평소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접해보지 못한 농어촌, 도서지역의 어르신들을 찾아 잠시나마 문화 예술의 맛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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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예술정거장에서 예술가 박재현씨가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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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도중 움직이는 예술정거장을 찾은 세도보건지소 전순금 간호사가 이명식(80) 할아버지의 치아를 살펴보고 있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 금연을 시작해 보건지소의 관리를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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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이야기를 메모장에 적고 있다. 진지함이 묻어난다. |
버스가 도착하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예술가와 스태프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분홍색 티셔츠로 단체 무장한(?) 노인들이 조명과 음향시설이 설치된 버스 내부를 둘러보며 어리둥절해한다. 오늘 프로그램은 자신의 이야기를 랩에 담아 풀어내는 ‘속풀이 랩 타령’이다. 예술가 박재현(35), 공도하(24)씨가 능숙한 솜씨로 어르신들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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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씨가 어르신들과 함께 노래부르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
“랩이 뭐여?”, “음식 싸는 거 아녀~” 들뜬 표정의 할머니들과 달리 할아버지들은 영 불편한 낌새다. 옷도 마음에 안 들고 요상한 모자와 선글라스도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굳었던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쓰는 시간에는 속마음을 곧잘 풀어낸다. “뭘 쓴디야?”, “농사 잘됐다고 쓰유~”, “잘되긴 뭐가 잘돼. 뚜드려봐야 알지”, “날이 너무 가물어서 큰일이여. 내 80살 먹었는디 이렇게 가물고 더운 거는 처음이여. 들깨를 많이 심었는디 비가 안 와서 그게 제일로 애로사항이여~” 할아버지들의 장탄식은 농사이야기로 길어진다. 각자 적어낸 메모에는 건강과 농사, 자식 이야기 일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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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쓴 랩 가사들. 갖가지 이야기가 담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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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예술정거장’ 앞에서 어르신들이 랩 손동작을 해보이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분장을 마친 노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랩으로 풀어낸다. “나는 나는 김옥례 사십육년생 눈 아파~ 허리 아파~ 사는 게 힘들어~ 손자가 너무 이뻐 손자 보고 싶다~” 손자 보는 즐거움을 랩에 담아 부르는 할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3시간의 랩 프로그램이 끝나가자 할머니들이 더 놀다 가라며 성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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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담당자인 단동우(42·왼쪽), 손용우(27)씨가 물품을 옮기고 있다. 폭염에 땀이 흐르지만 즐거워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힘이 난다고 한다. |
“어르신들이 살아온 이야기 들으며 인생을 새로 배우고 있어요. 농사에 지친 어르신들이 잠시나마 신나게 웃고 떠들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도움 드리는 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연극배우로 활동 중인 박씨는 기뻐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며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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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국도를 따라 이동 중인 예술버스. |
어르신들과 짧지만 알차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예술버스가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국도를 따라 다음 행선지로 달려간다.
부여=사진·글 이제원 기자 jw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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