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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 한장 수십만원… 취준생 절박감 파고드는 대필업체

입력 : 2016-08-15 19:18:10 수정 : 2016-08-16 07: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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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공채 앞두고 고액 요구 업체 기승 “자소서 쓰는 법 강의료가 월 68만원이래요….”

졸업을 미룬 채 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 백모(25·여)씨는 최근 인터넷에서 검색한 자기소개서(자소서) 첨삭?대필 업체에 가격을 알아봤다가 괜스레 마음만 무거워졌다. 백씨는 다음달 하반기 주요 기업 공개채용을 앞두고 절박한 맘에 문의했지만 부르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대부분 업체는 한두 장짜리 자소서 작성에 10만∼30만원을 불렀다. 어떤 곳은 한달 강의료로 68만원을 요구했다. 백씨는 “자소서를 맡긴다고 서류전형을 통과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한 번쯤 강의를 듣고 싶다”며 씁쓸해했다.

하반기 공채가 임박하면서 자소서와 씨름하는 취업준비생들이 적지 않은 가운데 고액의 자소서 첨삭·대필 업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업 채용 담당자들은 매번 ‘결국 들통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등불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취준생들의 발걸음은 이어지고 있다.

15일 취업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자소서 부담으로 대필 업체를 찾는 취준생이 부쩍 늘고 있다. 인터넷에는 ‘자소서 대필(대행)’을 걸어둔 채 버젓이 운영 중인 업체가 10곳이 넘는다. 취준생이 대거 가입한 취업정보카페에는 ‘자소서 대필’ 홍보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자소서를 대신 써주는 이들을 ‘작가’라고 부르는데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 되는 꼴이다.

취준생들은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는 반응이다. 올해 초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취준생 881명 등 1235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자소서 대필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자는 41%로 ‘부정적으로 생각한다’(35.8%)보다 많았다. 응답자의 25.2%는 ‘기회와 비용이 있다면 대필해도 무방하다’고 답했다. 15.8%는 ‘작성 능력이 없다면 적극적으로 대필해도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서류전형 통과와 같은 결과를 보장하거나 서비스 수준이 어떻든 환불을 약속하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업체 대부분은 ‘합격 후기’나 신춘문예 당선 경력, 기자·방송작가 경력 등을 내걸고 홍보하는데 대부분 사실 확인도 불가능하다. ‘현직 기자가 필진’이라고 홍보 중인 한 업체에 대필 작가의 신원을 문의하자, 업체 측은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일간지 소속 기자”라고만 밝힌 뒤 구체적인 언급을 거절했다. 이 업체는 “어떤 업체도 합격이나 사후서비스(AS)를 약속하는 곳은 없다”며 “창작 행위의 특성상 한번 서비스가 이뤄지면 환불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필 행위의 경우 위법은 아니다. 하지만 자격을 검증할 방법도 없어 전문성이 의심스러운 경우가 태반이다.

2년차 대필 작가인 김모(26)씨는 기자와 만나 “큰 업체는 구인 사이트를 통해 작가를 찾는다”며 “대부분은 문예창작과 출신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하는 경우”라고 귀띔했다. 이런데도 대필 업체가 성황을 이루는 것은 수요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력 9년차인 유명 대필 작가는 “형편이 넉넉해 대필을 의뢰하는 사람은 없다. 100명 중에 99명은 조금이라도 나은 점수를 얻어보려는 것”이라며 “경쟁이 심한 대기업, 공기업, 은행권 지원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채용 담당자는 “대필 ‘냄새’가 나는 항목은 따로 골라 축적하고 있다”며 “일부 기업은 대필을 걸러내는 시스템도 도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글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서투르더라도 열정과 실행력을 갖춘 사람”이라며 “부정을 불사하는 태도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균관대 구정우 교수(사회학)는 “고액을 쓰면서까지 자소서를 맡기는 모습은 토익 등 정량지표를 탈피하려다가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아이러니”라며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취업 시스템이 젊은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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