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납부한 400만원만 돌려줘
3월 사기방지법 제정 이후 기승
정부 “상황 심각하게 보고 있다” #1. A씨는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보험사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자살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이를 근거로 억대의 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미 낸 보험료 400만원만 돌려줬을 뿐이다. 유족들은 금융당국이 개입하고서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2. 50대 초반의 B씨는 공장에서 근무 중 작업차량에 치어 숨졌다. 보험사는 재해사망보험금 2억원을 지급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유족이 받은 것은 5000만원에 불과했다. 보험사가 직업·직무변경을 이유로 감액한 것인데, 금융당국 확인 결과 B씨는 직업·직무를 변경한 사실이 없었다.
보험사들의 보험금 부지급 행태가 가관이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아예 주지 않거나 시간을 끌면서 감액 합의를 종용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고 한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5일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며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의 이런 행태는 지난 3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제정 이후 심해진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보험사기 아니냐’며 어르고 달래며 보험금을 깎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일반 사기보다 더 무겁게 처벌토록 하는 이 법은 9월 말 시행에 들어간다. 이 법엔 정당한 사유 없이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을 경우 처벌토록 하는 조항도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방지법 때문이라는 건 지나친 해석”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보험사들의 ‘출구 봉쇄전략’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보험료 납입의 입구는 열어놓고 보험금 지급 출구는 봉쇄하는 경영계획이 보험금 부지급 사례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초저금리 기조에서 이익 창출이 어려워지자 무리하게 출구 봉쇄전략을 설정하고 임직원들에게도 보험금 면책률에 따라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하면서 부지급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보험사들의 행태는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의 피해를 유발할 뿐 아니라 보험의 신뢰를 허문다는 점에서 보험사들로서도 자해행위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보험금은 주고 경영 효율을 추구해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면서 “보험업은 덩치만 커졌지 내용은 허접한 게 30년 전과 똑같다”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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