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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이겨내도 비정규직·실업자"…암 걸린 게 잘못인가요?

관련이슈 암 이후의 삶 홀로 싸우는 사람들

입력 : 2016-07-04 18:58:55 수정 : 2016-07-05 20: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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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이후의 삶] 홀로 싸우는 사람들
“작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는데, 이제는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자리 잡고 싶어요.”

한 이동통신사의 안테나 관리 자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김민우(30)씨는 오는 8일 다시 ‘구직자’로 전락한다. 이날로 2년 계약기간이 종료되기 때문이다.

24살 때부터 사회에 뛰어든 김씨에게 이 회사는 벌써 네 번째 직장이다. 처음은 금융감독원에서 2년간 사무보조를 했고 6개월은 민간 회사에서, 또 1년은 국책은행에서 일했다.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김씨는 중학교 때 배아세포종(뇌종양의 일종)을 앓았다. 치료는 1년 만에 끝났지만 투병을 전후로 김씨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치료 후유증으로 신체 왼쪽이 불편해졌고 방사선 치료를 받은 자리에는 머리털이 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김씨는 20대 초반까지 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다. 지난달 24일 김포시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취재팀과 만난 김씨의 표정은 밝고 당차 보였다. 과거의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김민우씨가 지난달 24일 경기도 김포시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취재팀과 만나 암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포=남정탁 기자
“오랜 기간 암 환우회 활동을 하다보니 우울증도 없어지고 마음이 편해지니까 왼쪽 마비 증세도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로 나아지더라고요.”

그러나 혼자 힘으로 어렵게 세상으로 나온 김씨가 미래를 향해 차근차근 밟아나갈 수 있는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계약이 끝나면 실업급여를 받고 또 비정규직을 찾아 일하는 식으로 경제활동을 이어왔지만, 앞으로는 좋아하는 분야 일을 하면서 자리 잡고 싶다”며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를 앞두고 있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암 생존자들은 어떻게든 신체·심리적 후유증을 극복하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기를 소망하지만 생각만큼 간단치가 않다. 중증질환을 앓았던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못한 사회 제도와 인식의 벽을 넘어서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다. 스무살 이전 암에 걸려 군대에 가지 못한 전력 때문에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남성 암 생존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입사 지원서 병역 사항에 적게돼 있는 군 면제 사유 때문에 서류심사부터 발목 잡히는 심정이라고 토로한다.

초등학생 때 암에 걸려 군복무가 면제된 이철호(26)씨는 “면제 사유에 ‘질병’이라고만 적어도 면접에서 어디가 아팠는지 물어보기 때문에 과거 병력을 말할 수밖에 없다”며 “암 치료를 마친 지 10년이 훨씬 지나고 아무런 장애가 없어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답답해했다.

모 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기업문화가 야근이 잦고 회식도 있다보니 (암 생존자들과) 일하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며 “표면적으로 암 생존자를 차별하는 규정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직장에 다니다 암에 걸린 사람들도 치료 후 복귀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배미영(31)씨는 2013년 유방암으로 가슴 한쪽을 절제했다. 다니던 직장은 암 진단을 받은 뒤 그만뒀고 지금은 부모님의 식당 일을 돕고 있다. 취업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손에서 일을 놓은 지 오래된 데다 몸이 완전히 회복됐다는 확신도 없어서 다시 사회생활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4년 한 연구에 따르면 폐암 생존자 830명을 대상으로 암진단 전과 암 수술 1년 뒤의 취업률을 조사한 결과 68.6%에서 38.8%로 급감했다. 위암 생존자를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조사에서도 암 진단 28개월 이후 실업률은 46.6%로 일반인 그룹(36.5%)보다 훨씬 높았다.

암 생존자들의 사회 복귀에 가장 큰 걸림돌은 건강 상태다. 치료를 마쳐도 면역력과 체력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이는 일정 기간 휴직이 보장돼야만 건강을 회복한 후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13년 유방암·난소암 수술을 받은 이영자(61)씨는 유방암 약을 먹으며 6개월에 한 번 추적관찰을 받고 있지만 일상생활을 할 때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이씨는 “이직하려고 쉬던 중 암에 걸린 걸 알아서 그동안 사회적인 인간관계도 많이 끊기고 암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아 일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암 진단 5년 뒤에는 산정특례(암 진료비 급여항목의 95%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가 끝나서 약값이랑 검사비가 갑자기 올라간다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장태수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 교수는 “암 생존자의 사회 복귀를 막는 요인으로는 사회적 편견과 기업의 태도, 암 생존자 스스로 느끼는 자괴감 등이 있다”며 “암 생존자의 재교육을 지원하거나 업무복귀 시 일정 기간 이들을 배려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기획취재팀: 윤지로·김유나·이창수 기자
※실명 사용과 사진 촬영을 허락한 김민우씨를 제외한 나머지 환자의 이름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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