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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익숙한 풍경에 마음의 색 담아… 힐링과 평안을 주고싶다”

입력 : 2016-05-19 22:09:31 수정 : 2016-05-19 22: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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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 풍경’ 외길 김동철 작가 강원도 정선이 고향인 김동철(51) 작가에게 산과 강은 너무나 친숙한 대상이다. 동강이 흐르고 태백산맥의 물들이 한강·낙동강·오십천으로 흐르는 발원지인 삼수령은 늘 어린아이에게 감성풍경이 됐다. 성장해 서울을 오가면서는 안개 낀 양수리 두물머리 풍경에 매료되기도 했다. 인간에게 하늘과 땅과 물은 어머니 자궁 같은 곳이다. 그러기에 언제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힐링풍경이 돼 준다.

“대부분의 화가가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특정 대상이나 범주에 한정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어떠한 형태로든 규정되어 대중과 소통하길 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자주 듣는 풍경화가라는 말이 그러하다.”

사실 그의 그림은 자연주의나 사실주의뿐만 아니라 인상주의 범주에도 넣을 수 없다. 그는 늘 마음의 우윳빛 유리를 통해 세상과 만난다. 마음의 창에 여과된 듯한 안개 풍경이다. 구체적인 형태가 걸러지고 실루엣처럼 흐릿하다. 물 안개나 물 비늘, 수면에서 반사하는 햇빛 등 자연현상으로 정서적인 감응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산을 빈틈없이 덮고 있는 숲 그림자와 안개 등이 가득히 다가오지만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어떤 실체와 마주하고 있다는 경험을 하게 한다. 

청자에 분칠을 한 분청자 같은 색깔로 마음을 풀어놓게 만드는 김동철 작가. 그는 익숙한 주변풍경에서 힐링의 감성을 포착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자 자신의 내면 공간을 거기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유적 공간이자 시적인 공간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내면적 공간이 됐으면 한다.”

그는 통상적 풍경화에서 보는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밀쳐낸다. 그래서인지 긴 여운이 따른다. 빛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몸을 살며시 흔들어대는 수면 위의 잔물결처럼 아련한 감정의 여운이 가슴에 밀려든다.

“풍경은 그림이나 사진의 영원한 소재다. 하늘 아래 진부한 작품은 있어도 진부한 소재는 없다는 말이 있다. 흔하지만 결코 진부할 수 없는 행복, 조화, 휴식, 고요, 평온, 서정 같은 것이다. 고전주의와 인상주의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화폭에 담을 수 있는 미의 소재가 고갈된 것으로 보고 더 노골적이고 말초적인 이슈들을 찾아 나섰다. 그런 가운데서도 많은 작가들은 여전히 또 다른 미의 세계를 풍경에서 천착해내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에게는 새로운 소재를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다. 어찌 보면 진부할 정도로 평범하고 흔한 소재다. 그러나 흔하다 해서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구상의 남녀 수만큼 넘쳐나는 것이 사랑이지만, 남의 것일 때는 시시해 보이는 사랑도 막상 자기 것이 되면 더 이상 진부하지 않는 법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된다. 흔하지만 결코 진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청자와 분청자기를 떠올리게도 해준다. 청자 위에 분을 바른 듯한 분청자의 느낌이다. 하늘색인 청자에 마음의 색인 분을 발랐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늘상 하늘빛에서 저 세상의 이상을 투영해 왔다. 예로부터 하늘색에 가까운 옥으로 치장을 하고 장식을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부장품으로 매미 유충을 닮은 옥 장식(천합석)을 넣을 정도였다. 후대에 비싼 옥 대신 청자 부장품으로 대치됐다.”

도자사에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중간시기에 분청자가 위치하고 있다. 형식에 있어서도 자유로운 시기다. 현대미술을 방불케 하는 조형미를 보여준다. 형식을 넘어선 분칠에서 오는 해탈감이 충만하다.

“내 그림의 색은 청자에 마음의 분칠을 한 분청자의 색이라 할 수 있다. 해탈의 경지에서 맛볼 수 있는 힐링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붓질의 지향점이다.”

그의 물안개 피어오르는 몽롱한 풍경은 아련한 이상세계를 환기시켜 준다. 그러면서도 수면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햇살은 보는 이의 가슴을 따스하게 감싼다.

그는 특히 물에 집중한다. 양수리나 충주호, 한강 등 실제 자연이 그의 그림 모델이다. 흐릿한 화면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대자연은 ‘익숙한 낯섦’이다. 작가는 진정한 휴식은 ‘익숙한 것’에서 온다고 한다.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양수리, 잔잔한 바닷물에 반짝이는 햇살, 뽀얀 안개 너머로 보이는 강 건너 언덕 등이 정겹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치유의 바다,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쉬어 가고 싶은 정겨운 강가다. 골치 아픈 현실마저도 잊게 해주는 대안의 공간이다. 자연이 건네는 순도 높은 정화의 맛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에서의 색채지각이 그림의 총자산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꽃이나 석양의 신비스러운 색상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경험이 있다. 이것은 눈으로 본 대상(꽃, 석양), 즉 동공을 거쳐 망막에 비친 상의 색채를 구별하는 세포들이 색채를 구별하여 뇌로 전달하여 준 일련의 과정 때문이다. 이때 망막에 맺힌 정보 중에서 색채의 종류(색상), 밝기(명도), 맑기(채도)를 구분하여 파악하는 것을 색채지각(color perception)이라 한다. 인간의 색채지각 범위는 200개의 색상을 구분할 수 있고, 한 가지 색을 500개의 명도로, 그리고 한 명도를 20단개의 채도로 구분, 최대 200만 가지의 색을 식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60만개의 색을 구분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지각의 모든 과정에서 동일한 외부의 자극을 누구나가 동일하게 수용하지는 않는다. 색채지각 또한 그렇다. 연령이나 인종 등 환경에 따라 시각경험이 다르며, 그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 색채의 수는 달라진다. 그리고 이렇게 지각된 색채는 미술의 표현에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색채지각과 표현은 기본적으로 개인적 특성을 반영하지만 가족이나 지역, 국가 등 구성의 범위에 따라 공통의 특성을 나타낸다. 이것은 집단마다 다른 자연환경과 역사적 경험에 따른 색채지각의 특성 때문이다.” 그는 최근 특정장소에서 그림 두 점을 그렸다.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삼수령을 배경으로 그린 300호 크기의 대작이다. 삼수령에서 시작된 물은 영월 제천 충주 양수리 서울을 거쳐 서해로 흘러간다. 

지친 영혼에 바다와 같은 위로를 선사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작품 ‘자연-휴식’.
“2014년 여름 태백시에 머물며 그림을 그린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수백미 떨어져 있는 진도에서의 세월호 비극을 듣게 되었다. 안산 학생들의 희생이 컸다. 무연탄의 주생산지인 태백과 사북의 많은 주민들이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안산으로 이주를 했다. 사북엔 강원랜드가 세워지고 일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아픔을 안고 안산 등지로 흩어졌다. 그들이 또 세월호에 자식을 잃고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파주 작업실로 돌아왔지만 그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고향 정선과 태백의 이야기여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는 붓을 들어 화폭에 머릿속을 맴돌던 아픈 심사를 풀어냈다. 삼수령의 거대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상류 S자 물흐름의 파동을 양수리에 풀어놓은 듯하다. 팽목항 앞바다까지 전하고자 하는 소리없는 아우성 같다. 그림 앞에 서면 그 안에 이미 들어서 있는 느낌이다. 지친 영혼에 바다와 같은 위로와 물 같은 휴식이 전해지는 듯하다.

“나의 작업의 여정은 시각적으로 가장 편안한 색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었다. 가장 많이 경험한 색이 가장 편안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주변풍경에 몰두해 왔다. 일산 자유로를 오가며 본 한강풍경도 그중에 하나다.”

24일까지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린다. 모처럼 신작들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최근 그의 작업실 앞에 놓인 소나무 그림은 붓터치가 격정적이다. 새로운 작업을 열어가는 신호탄이길 기대해 본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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