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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화엄경 60만자 석판에 새기는게 현생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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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13 20:00:42 수정 : 2016-05-13 21: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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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맥 끊긴 석경 부활 나선 서법예술가 김정호씨 “60만자 화엄경 사경집과 화엄석경을 제 손으로 직접 제작하는 것이 생의 목표입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작품이 없어 명맥이 끊긴 석경(돌에 새긴 불경) 작업에 몰입해 새로운 서각 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서법예술가 김정호씨. 4년여에 걸쳐 불교 경전인 법화경 7만자를 돌판에 새겨 서예계와 불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를 13일 충남 천안 ‘의암서법예술원’에서 만났다.

“화엄경을 돌에 새겨 전남 구례 화엄사 법당 내부의 후불벽으로 꾸몄다는 스승님 말씀을 듣고 석경을 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서예를 하면서 각(刻)에 관심이 많았던 의암에게 소해서(작고 가는 글씨를 쓰는 서법) 연구를 권한 것은 그의 스승이었다. 1만4000여 조각으로 남겨져 있는 화엄석경의 재현이 필요하다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석경 제작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김정호씨가 충남 천안시 신방동 자신의 의암서법예술원에서 화엄석경 제작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서예 전각가인 여초 김응현(1927∼2007년) 선행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던 1997년 겨울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사방 10㎝ 크기의 판석 위에 북위시대 해서체로 9㎜ 크기의 천자문을 20여 번 새겨 스승께 탁본을 보여드렸더니, “이제 각은 그만하고 사경(불교경전을 베껴 쓰는 일)을 하라”라는 말이 떨어졌다고 소개했다.

“스승께서는 제가 ‘도장장이’가 될까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각에 맛을 들이면 글씨 공부에 소홀해질 수 있으니까요. 서체 이상의 각자(刻字)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사경하라’는 스승의 지시 이후 본격적인 사경 연구에 착수했다. 사경에 몰두하면서 1999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2회 불교사경대회에 참가해 대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부터 면벽수련의 시간을 가지며 오로지 사경연구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반야심경과 금강경, 법성게, 지장경, 법화경, 화엄경 등 불교경전을 쓰고 또 쓰면서 17년의 세월을 보냈다. 이발조차 하지 않고 산발한 채 오직 사경에만 메달린 당시의 모습은 광인과 다름이 없었다고 했다.

“불학(佛學)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경연구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불심이 마음으로 들어왔어요.” 애초 불교신자가 아니었던 그는 스승의 말을 좇아 사경을 하면서 서서히 불자가 됐다. 사경에 몰두할수록 석경 제작에 대한 갈망은 커졌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했다. 법화경 사경집과 법화경 32폭 병풍을 완성할 무렵, 인사동의 한 필방에서 우연히 돌 위에 손으로 직접 서각할 수 있는 돌을 발견했다.

우선 제대로 공부한 법화경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뜻을 세우니 뜻밖에도 지인이 석판을 기증해 줬다. 매일 108배를 한 뒤 목욕재개하고, 향을 사르고, 오전 오후 각각 5시간씩 하루 10시간 작업에 몰두했다. 머릿속에 글자 획에 대한 설계를 마치고 칼을 잡으면, 칼은 붓이 되어 석판 위에서 춤을 췄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전각용 칼로 본이 없이 직접 돌에 글씨를 새기는 방식이다 보니 손목과 어깨 관절과 근육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깨 근육 파열이라는 진단과 치료로 작업이 더뎌지기도 했지만, 하루에 몇 글자라도 꼭 새기고 넘어갔다. 이런 작업을 거쳐 509판 7만여자의 법화석경이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1판은 153칸으로 이루어졌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글자를 새겨 나가면서 형용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어요. 인터넷으로 다운받은 법문과 불교음악을 들으면서 하루 150여자, 일주일에 5판 정도의 석경 제작은 고된 수행의 길이였지만 하루하루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새로운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전란을 거치며 1만4000여 조각으로 깨진 보물 1040호인 화엄석경을 재현하는 일이다. 그는 이미 고려대장경 연구소 종림 스님으로부터 화엄석경 잔편 15만여자의 사진과 7만여자의 탁본 사진을 구했다고 전했다. 그는 “처음 사경을 시작할 때부터 품은 원력은 화엄석경 복원이었어요. 생전에 각에 대한 제자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화엄석경 재현을 제안했던 스승의 바람을 꼭 실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천안=글·사진 김정모 기자 race121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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