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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은 저질 정치의 상징이다. 인기를 겨냥한 극단적 감정 표출이다. 편가르기가 노림수다. ‘네 편’의 피해에 손뼉치는 ‘내 편’이 고객이다. 막말은 반짝 관심을 끌기도 하지만 결국엔 독이다. 유력 정치인을 훅 가게 하는 한방이기도 하다. 2004년 17대 총선. “60, 70대는 투표 안 해도 된다, 집에서 쉬셔도 된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이 한마디로 어르신들 공분을 샀다. ‘노인 폄하’ 발언은 그의 정치 인생과 대권 가도에 치명타가 됐다. 당도 불똥을 맞아 180석 이상 예상 의석이 152석에 그쳤다. 8년 뒤 민주통합당은 ‘김용민 막말’로 19대 총선을 망쳤다. 20대 총선에선 새누리당이 ‘이한구 막말’로 낭패를 봤다. 그가 김무성 대표에게 내뱉은 “바보 같은 소리”는 회자됐다. 세치 혀의 무서움을 모르는 정치인은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

지구촌에서 막말 정치인이 잇따라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상 현상이다. 필리핀에서 막말 대통령이 탄생했다.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은 어제 대선 개표 결과 당선됐다. 그는 선거 기간 “범죄자 10만명을 죽여 물고기 밥이 되도록 마닐라만에 버리겠다”고 했다. 또 1989년 폭도들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에 대해 “내가 먼저 (폭행)했어야 했다”고 했다.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개XX”라고 욕설까지 퍼부었다. 막말 제조기 도널드 트럼프는 미 공화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돼 본선 승리를 넘보고 있다. 그의 입은 히스패닉과 무슬림 등 이민자에 대한 반감과 증오, 여성 비하 발언으로 넘쳐난다. 브라질도 자이르 볼소나루 사회기독당 의원의 ‘더러운 입’에 오염되고 있다. 그는 난민을 향해 “쓰레기가 브라질에 들어오려고 한다”고 했다. 동성애자·여성 모욕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그가 대권 주자로 떠오른다.

트럼프·두테르테 식 막말 정치의 자양분은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과 반감이다. 양국의 가난한 유권자들은 기득권을 옹호하는 기성 정치에 분노했다. 그동안 소외됐던 이들을 정치 무대로 끌어들여 결집시킨 게 막말이다.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백인 노동자는 아웃사이더 트럼프에 열광했다. “범죄와 빈곤에서 우리를 탈출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필리핀 빈민들은 두테르테를 택했다. 그는 현직 시장으로 자경단을 조직해 재판 없이 범죄자를 처형했다. 이상 현상은 기성 정치에 대한 준엄한 경고로 들린다. 막말의 주요 타깃은 이민자, 여성, 동성애 등 사회적 약자다. 막말 지도자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모두의 불행이다.

허범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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