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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조선일보 이끈 ‘뼛속까지 신문인’

입력 : 2016-05-08 21:27:38 수정 : 2016-05-09 00: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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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 별세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이 8일 오전 11시 별세했다. 향년 88세. 방 상임고문은 1928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제9대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방응모 선생의 친형 방응곤씨 손자이자 방일영 전 회장의 동생이다.

고인은 1952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해 방일영 사장과 함께 납북된 할아버지 방응모 사장의 빈자리를 대신해 조선일보 재건에 주력했다.

방 상임고문은 1964년 방일영 당시 사장이 회장에 임명되자 대표이사로 취임했으며 1970년에는 사장이 됐다.

사장직에 오른 그는 조선일보 지면을 혁신하고 ‘월간조선’, ‘월간 산’, ‘월간낚시’, ‘스포츠조선’ 등을 잇달아 창간·인수했다. 1992년에는 국내 신문사 최초로 전국 동시인쇄망을 구축하고 신문제작 전산시스템(CTS)을 개발했다.

방 상임고문은 1993년 조카 방상훈 현 대표이사 사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2003년에는 조선일보 경영에 참여한 지 40년 만에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그는 2008년 출간한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서 “1948년 대한민국이 탄생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신생(新生)의 감격과 아픔, 격동과 혼돈을 조선일보라는 창(窓)을 통해 목도하고 체험했다. 나의 신문 만들기 55년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한 세월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고인은 국내 정·관·언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6년 9월에는 방응모 선생 22주기 추모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괴한 두 명에게 차량 뒷유리창을 벽돌로 내려 찍히는 습격을 당했다.

저서로는 ‘조선일보와 45년’,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미수((米壽)문집 ‘신문인 방우영’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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