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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럽까지 몰아친 ‘마녀사냥’… 도대체 왜?

입력 : 2016-05-06 19:40:08 수정 : 2016-05-06 19: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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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산물로만 여겨졌던 ‘마녀사냥’
르네상스 이후에도 계속 벌어져
1400년~1775년 서구에서 5만명 처형
주경철 지음/생각의힘/1만6000원
마녀/주경철 지음/생각의힘/1만6000원


요한네스 유니우스는 독일 밤베르크 시장이었다. 1628년 그는 악마가 주관하는 집회 ‘사바스’에 갔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결백을 주장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지금은 상상조차 힘든 고문에 혐의를 인정해야 했다.

“…그가 사바스에 가려고 하면 언제나 침대 앞에 검은 개 한 마리가 나타나서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개에 올라타면 악마의 이름으로 떠올라 둘이 함께 떠났다.”

마녀재판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유니우스는 화형을 당했다.

시장을 지낸 인물까지 화형대에 세울 수 있는 마녀사냥 광풍이 한때 서구 사회를 휩쓸었다. 마녀사냥이 시작되면 누구도 안심할 수 없었다. 희생자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교과서적으로 언급되는 추산치’는 1400∼1775년 유럽,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10만명 정도가 기소되고, 5만명가량이 처형을 당했다는 것이다. 흔히 마녀사냥을 ‘암흑시대’ 중세의 산물로 인식하지만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의 시기를 거치고 곧 찬란한 계몽주의의 빛이 온세상을 환히 비춘다고 하는 근대 유럽의 중심 지역들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책은 “유럽 문명은 마녀를 필요로 했다. …지극히 엄격한 기준을 세운 후 이를 어기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권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방식으로 진리를 수호하려 한다는 점에서 마녀사냥은 분명 서구 근대성의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전제한다. 

추악한 이미지로 그려진 마녀. 기독교 권력이 공고해진 중세 유럽에서 마녀는 음란함과 악마성, 아이 살해 등의 특성을 가진 사악한 존재로 그려졌다.
생각의힘 제공
국가와 교회가 확고하게 권위를 성립해 갈 즈음인 서기 1000년 이후 마녀는 헛된 망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악마의 힘을 가진 존재로 변모했다. 당시 교회는 ‘유럽 전체를 통일하는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어냈고 교육, 혼인, 가족, 약자의 보호, 계약 문제 등 삶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틀을 만들어냈다. 개별국가도 국왕이 자국 내에서 ‘지상권’(至上權)을 가진다는 개념을 만들어내며 세속 문제에서는 하느님의 권위를 대변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교회, 국가는 종교, 세속의 영역에서 각각 명료한 자신의 체제를 확립했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응집성을 가진 실체로 발전해갔다.

그러나 이런 흐름에 맞서며 교회, 국가 조직에 포함되기를 거부하는 원심력도 존재했다. 기존 교회의 부패를 강하게 비판했고 정통 교리, 교회의 권위를 부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게다가 기독교와는 분명히 다른 민중신앙이 여전히 농촌공동체에 자리잡고 있었고,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기독교 교리에 배치되는 ‘비술’(秘術)에 대한 관심이 높아갔다. 영적 믿음의 통일성을 체제 유지의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간주했던 지배세력에게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이단’에 대한 가혹한 진압이 시작됐다. 마녀를 판단하는 기준도 제시됐다. 당시 출간된 마녀 관련 저술을 종합하면 마녀는 ‘악마와의 계약’ ‘악마와 성관계’, ‘날아서 이동하는 능력’ ‘사바스 참석’ ‘사악한 위해의 행사’ ‘아이 살해’ 등을 중요한 특성으로 한다. 스스로를 ‘최선’으로 자리매김한 교회, 국가는 다른 신앙을 악마와 내통하는 위험한 마녀 집단으로, 민중 신앙의 야간 집회는 사바스로 규정해 ‘최악의 존재’로 발명해 낸 것이다.

책은 마녀라는 개념의 성립과 발전 과정, 가혹한 탄압, 쇠퇴 과정을 시대 흐름에 따라 면밀하게 분석해간다. 악마의 사주를 받아 인간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를 실제하는 것으로 본 마녀사냥은 분명 근대 초기 유럽 문명의 특이한 현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악을 만들어내는 현상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했다. 나치에게 유대인이, 파시스트에게는 공산당이 최악의 존재였다. 우리에게도 그런 역사는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세력을 ‘빨갱이’로 규정하는 색깔론을 전가의 보도로 휘둘렀다. 이런 극단적인 배제의 논리가 여전히 고개를 쳐들기도 한다는 점에서 책은 오늘날의 세계를 되돌아보게도 한다.

정밀한 분석에, 논리를 탄탄하게 이끌어가는 저자의 글쓰기가 돋보이는 책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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