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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경선 통해 본 주류 사회의 도덕성

입력 : 2016-05-06 18:56:03 수정 : 2016-05-06 18:5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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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 트럼프·민주 샌더스 ‘아웃사이더 돌풍’
보통사람들의 분노·좌절감 표출 기인
트럼프 포퓰리즘적 언행 남성 근로자에 먹혀
민주 정치 전범 미 시스템 변질 원인 파악
“두사람 부상 아메리칸 드림 사라지는 증거”
마이클 샌델 지음/안진환 옮김/김선욱 해제/와이즈베리/1만6000원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 좋은 삶을 향한 공공철학 논쟁/마이클 샌델 지음/안진환 옮김/김선욱 해제/와이즈베리/1만6000원


미국 대선에서 아웃사이더가 기세를 떨치고 있다. ‘찻잔 속 태풍’으로 예상됐던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내 공화당 최종 주자로 올라섰다. 민주당 상원의 유일한 사회주의자라는 버니 샌더스 의원은 갈 길 바쁜 힐러리 클린턴을 물고 늘어진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와 샌더스에 상당히 냉소적이다. 이들의 등장을 포퓰리즘 조장 내지 ‘이상한 대선판’ 식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정말 이상한 선거판인가. 미국 주류 사회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은 그럴 수도 있다며 수긍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와 샌더스 모두 기득권 정치 세력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미국 사회 통념에 대항하고 있다. 트럼프의 포퓰리즘적 언행은 특히 근로계층 남성들에게 먹혀들고 있다. 그들은 일자리와 임금에 위협을 느끼는 계층이다. 두 사람은 이념적으로 다르지만, ‘불만’이라는 원천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해진 마이클 샌델(사진) 미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가 신작을 내놓았다. 현대 민주정치의 전범이었던 미국 정치 시스템이 어쩌다 이렇게 변질되었는지 짚어본다. 그러면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정치 현실을 비판한다. 샌델은 이 둘의 등장을 보통 사람들의 분노와 좌절감의 표출로 풀이한다. 본래 금수저’였던 억만장자 트럼프와 달리, 샌더스는 거의 무명에서 출발했다. 샌더스는 대형은행 해체, 금권정치를 비판하면서 지지기반을 다져왔다. 힐러리 클린턴이 월가와 너무 친밀한 나머지 대형은행들에 맞서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선거비 모금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클린턴은 금융계에서 1500만달러의 기부금 지원을 받은 반면에 샌더스는 일반인 소액 기부금으로 선거비용을 충당했다. 클린턴은 국무장관 퇴임 후 강연료로 2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유대계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고작 세 차례 강연료로 그녀에게 67만5000달러를 지불했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왼쪽 사진)와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연말 미국 대선을 앞두고 아웃사이더의 돌풍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는 강한 미국을 외친다. 동맹국들은 좌불안석이다. 그가 당선된 이후 전개될 시나리오를 그리면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반면 상실감에 빠진 미국 근로계층은 열광하고 있다. 트럼프가 포퓰리즘을 조장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성원하고 있다.

최근 벌어진 미국 사회는 포퓰리즘 온상이 그 자체였다. 예컨대 지난 30년간 경제 성장 혜택의 대부분은 최상위층에게 돌아갔다. 상위 0.1% 갑부들이 합친 돈은 일반 시민 하위 90% 사람들이 합친 돈보다 더 많다.

이 같은 부의 편중은 정치의 타락과 관련성이 깊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금융산업 규제 철폐는 1990년대 말 빌 클린턴 행정부의 작품이었다. 금융위기 와중에 정권을 넘겨받은 버락 오바마는 클린턴 시절 월가의 규제 철폐를 주도한 사람들을 요직에 임명했다. 그들의 도덕성은 그다음 문제였다. 그리고 그들의 조언에 따라 혈세를 투입했다. 은행들과 투자회사들을 구제한다는 명목이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드러나는 중이다. 연말이면 월가는 보너스 잔치를 벌이곤 했다. 반면 불안한 일자리와 저임금에 시달리는 일반 시민들은 아직 고통 속에 있다. 이들 대부분은 금융위기 당시 날린 집을 되찾지 못했다.

현재 미국 시민들은 민주, 공화 양당 기득권층의 도덕성 결여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미국 정치는 상류층에만 후한 보상을 안겨주는 대신, 다른 모든 이의 삶은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샌더스와 트럼프의 부상은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풀이한다. 현재 미국의 계층 간 이동은 약화되었다. 대부분의 유럽 주요 국가들보다도 한참 뒤처져 있다.

소득을 5분위로 나눠 비교해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최하위 가정 출신 미국 남성의 42%는 성인이 되어도 그 계층을 벗어나지 못한다. 덴마크의 25%, 영국의 30%와 비교해 격차가 크다. 최하위층에서 최상층으로 이동하는 미국 남성도 단지 8%에 불과했다. 미국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아메리칸 드림’이 오히려 서유럽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신자유주의 질서를 기반으로 한 현재 세계적인 흐름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을 비롯한 영국, 호주 등 신자유주의 체제를 적극 받아들인 나라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시민 사회 불만이 급격히 팽배해지고 있다. 미국 대선 후보 경선은 도덕성을 잃은 미국 주류 사회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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