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에 은유적 표현… 당시 세도정치 비판
저자 주관적 해석 많아 동의는 독자의 몫
이성현 지음/들녘/2만2000원 |
여기 늙은 고양이 그림(사진①)이 있다. 바닥에 웅크린 놈은 온종일 어딘가를 들쑤시고 다녔는지 꾀죄죄한 행색이다. 방금 쥐를 잡아 먹은 것일까. 주둥이 주변에 쥐의 피 같은 얼룩이 남아 있다. 그런데 묘하게 위엄이 있다. 꼬리 끝에 절제된 힘이 느껴지고, 정면을 응시하는 눈은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김정희가 그렸다는 모질도.(사진①) 전통회화에서 모질도는 장수를 축원하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추사코드’의 저자는 정치적 탄압에 대한 김정희의 복수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들녘 제공 |
추사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일반적인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예술가’가 아니라 ‘정치가’에 방점을 두고 추사를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추사를 예술가로 기억하고 있다. … 그러나 생전의 추사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 여겼을까? 단언컨대 정치가”라고 강조한다. 작품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모질도에 대한 설명이 그렇다.
정치적인 부침은 추사의 인생을 뒤흔들었던 게 사실이다. 경주 김씨 그의 집안은 손꼽히는 명문이었으나 당시 정치적 실권을 잡고 있던 안동 김씨와 대립하면서 추사는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저자는 추사가 몰두했던 고증학도 당대의 주류인 성리학의 폐해와 허구성을 바로잡기 위한 정치적인 도전이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정치적인 박해 속에서 정적의 눈을 피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관철시키려 했던 추사가 은밀하게 표현한 코드를 읽어야 추사의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역사상 가장 독특한 예술적 성취라는 추사체에 대한 해석도 이런 관점을 전제로 한다.
저자는 ‘谿山無盡’(계산무진·사진②)의 각 글자를 분석해 안동 김씨의 권력에 대항할 것을 주문한 김정희의 정치적 선동을 읽어낸다. 들녘 제공 |
추사와 그의 작품을 보는 저자의 시각은 파격적이다.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해 암호 풀 듯하는 방식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해석과 관련된 사료, 당시의 정황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해석을 뒷받침할 직접적인 증거를 내놓지는 않는다. 글자 모양에 대한 설명이 주관적이라는 느낌도 강하다. 谿山無盡에서 산 속의 연기니, 조각배의 균형을 잡는 사람이니 하는 모습을 읽어냈지만 그렇게 보지 않을, 혹은 다른 걸 형상화한 것으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 저자도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의 해석을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지 않느냐’는 식으로 독자의 동의를 종종 구하려 든다. 동의할 수 없는 독자라면 읽는 재미는 상당히 반감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