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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서화에 감춰진 은밀한 코드로 조선의 정치 읽다

입력 : 2016-04-23 03:00:00 수정 : 2016-04-22 20: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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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안동 김씨와 대립… 긴세월 유배생활
작품 속에 은유적 표현… 당시 세도정치 비판
저자 주관적 해석 많아 동의는 독자의 몫
이성현 지음/들녘/2만2000원
추사코드/이성현 지음/들녘/2만2000원


여기 늙은 고양이 그림(사진①)이 있다. 바닥에 웅크린 놈은 온종일 어딘가를 들쑤시고 다녔는지 꾀죄죄한 행색이다. 방금 쥐를 잡아 먹은 것일까. 주둥이 주변에 쥐의 피 같은 얼룩이 남아 있다. 그런데 묘하게 위엄이 있다. 꼬리 끝에 절제된 힘이 느껴지고, 정면을 응시하는 눈은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김정희가 그렸다는 모질도.(사진①) 전통회화에서 모질도는 장수를 축원하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추사코드’의 저자는 정치적 탄압에 대한 김정희의 복수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들녘 제공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추사 김정희가 그린 ‘모질도’라는 그림이다. 모질도는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그려 장수를 축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살이 복스럽게 오른 노란 고양이와 호랑나비를 그린 단원 김홍도의 모질도가 유명하다. 추사의 모질도 또한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하지만 30년간 화가로 활동하며 미술사를 연구한 ‘추사코드’의 저자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다. 추사의 그림에 나비가 없고 고양이가 늙었다는 점, 화제(畵題)의 내용, 얼룩이 있는 주둥이가 쥐(‘간신’의 은유)를 잡아먹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무엇보다 쉰이 넘은 나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귀양길에 오른 상황에 그렸다는 점 등을 근거로 복수심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추사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일반적인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예술가’가 아니라 ‘정치가’에 방점을 두고 추사를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추사를 예술가로 기억하고 있다. … 그러나 생전의 추사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 여겼을까? 단언컨대 정치가”라고 강조한다. 작품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모질도에 대한 설명이 그렇다.

정치적인 부침은 추사의 인생을 뒤흔들었던 게 사실이다. 경주 김씨 그의 집안은 손꼽히는 명문이었으나 당시 정치적 실권을 잡고 있던 안동 김씨와 대립하면서 추사는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저자는 추사가 몰두했던 고증학도 당대의 주류인 성리학의 폐해와 허구성을 바로잡기 위한 정치적인 도전이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정치적인 박해 속에서 정적의 눈을 피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관철시키려 했던 추사가 은밀하게 표현한 코드를 읽어야 추사의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역사상 가장 독특한 예술적 성취라는 추사체에 대한 해석도 이런 관점을 전제로 한다. 

저자는 ‘谿山無盡’(계산무진·사진②)의 각 글자를 분석해 안동 김씨의 권력에 대항할 것을 주문한 김정희의 정치적 선동을 읽어낸다.
들녘 제공
‘谿山無盡’(계산무진·사진②), 추사체의 완성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저자는 추사체가 ‘그림 같은 글씨’라는 데 주목하며 글자 하나하나 혹은 글자의 각 부분을 분리한 뒤 특정한 상황 혹은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본다. ‘谿’ 자의 왼쪽 ‘奚’ 부분은 산 속에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오른쪽 ‘谷’ 부분은 백성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현실정치에 등을 돌려 산으로 숨은 지식인들을 백성들이 따르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山’ 자는 사람이 작은 조각배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파당을 만들어 조정(‘조각배’)을 뒤흔드는 것을 왕(‘사람’)이 균형을 잡기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정치를 버리고 깊은 산속에 은거한 지식인들을 향해 숨어 있지만 말고 안동 김씨들의 세도정치와 맞서 싸우라고 질책하는 (추사의) 목소리”를 읽어낸다. 다른 작품 ‘藻花牒’(조화첩)과 조선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세한도‘를 연결시키고는 조정 밖의 유력 인사들을 움직여 제주 유배에서 풀려나려고 했던 추사의 의도가 두 작품에 반영되었다고 본다.

추사와 그의 작품을 보는 저자의 시각은 파격적이다.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해 암호 풀 듯하는 방식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해석과 관련된 사료, 당시의 정황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해석을 뒷받침할 직접적인 증거를 내놓지는 않는다. 글자 모양에 대한 설명이 주관적이라는 느낌도 강하다. 谿山無盡에서 산 속의 연기니, 조각배의 균형을 잡는 사람이니 하는 모습을 읽어냈지만 그렇게 보지 않을, 혹은 다른 걸 형상화한 것으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 저자도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의 해석을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지 않느냐’는 식으로 독자의 동의를 종종 구하려 든다. 동의할 수 없는 독자라면 읽는 재미는 상당히 반감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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