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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막장공천·맹탕선거·원칙실종… 승자없는 최악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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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14 18:37:45 수정 : 2016-04-14 18: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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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으로 본 20대 총선’ 결산 4·13총선이 막을 내렸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이변이 일어났다. 새누리당이 충격의 참패를 당하며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만들어졌고, 20년 만에 3당 체제가 구축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영남에서만 10개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고 서울 강남권에서도 선전했다. 분명 이번 총선은 ‘새누리당 참패, 더민주 완승, 국민의당 대약진, 정의당 패배’로 요약된다. 그러나 20대 총선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측면에서 평가하고 결산하면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배한 어둠의 선거였다.

선거벽보 철거… 다시 일상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다음날인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한 초등학교 담장에 부착된 종로구 출마자들의 선거벽보를 떼고 있다.
하상윤 기자
첫째, 최악의 ‘막장 공천’이 이뤄졌다. 공직선거법 제47조(정당의 후보자추천) 2항엔 “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조차 깡그리 무시된 채 온갖 편법이 동원됐다. 남의 칼을 빌려 상대방을 죽이는 비열한 차도살인(借刀殺人)의 보복공천이 자행됐다.

새누리당은 이한구, 더민주는 김종인의 칼을 빌려 비박(비박근혜)과 친노(친노무현) 강경파를 척살했다. 오죽하면 유승민 의원은 “부끄럽고 시대착오적 정치보복”이라고 항변했겠는가. 새누리당은 줄곧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천은 보이지 않는 손과 친박 패권에 의한 갑질로 끝났다. 당 대표가 공천이 잘못됐다고 도장을 찍지 않는 한국 정당 사상 초유의 ‘옥새(玉璽) 파동’도 일어났다.

더민주는 작년에 김상곤 혁신위를 발족시키며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가 사퇴하고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등장하며 급변했다. 오랜 시간 논의와 토론을 거쳐 만든 당헌·당규가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김 대표는 “시스템 공천은 정치를 모르는 것”이라며 자신의 정무적 판단에 따라 공천했다.

국민의당도 새 정치를 내걸었지만 현역 국회의원 대부분은 공천됐다. 공천 항의를 피하려는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엘리베이터에 갇히는가 하면 공천 번복에 도끼항의 소동까지 있었다. 선거의 시작은 공천인데 20대 총선은 희대의 막장 공천으로 정치 혐오와 불신을 가중시켰다. 결국 이번 공천에서도 국민은 또 속았다.

둘째,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이슈도 정책도 없는 맹탕 선거였다. 선거에서 국민은 정당과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을 보고 소통한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안보와 경제를 포함해 모든 분야에서 여야가 치열하게 맞붙는 굵직한 이슈가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발목 잡는 야당 심판’, ‘경제 무능 심판’, ‘거대 양당 심판’과 같은 심판론 타령만 있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 도래했는데도 안보 이슈는 아예 쟁점조차 되지 않는 희한한 선거가 치러졌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여야 각 정당은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양극화, 청년 실업, 구조 개혁 등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보여주지 않았다. 정책이 사라진 자리는 읍소와 협박으로 채워졌다. 실컷 잘못해 놓고 여당은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사과했다. 야당은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읍소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런 ‘악어의 눈물’로 포장된 읍소 이면에는 “나를 찍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협박이 숨어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대형 이슈가 사라진 것은 여야 정당이 철학과 통찰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최악의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 정책과 공약에 신경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이 사라진 자리에 정치공학적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공약이 남발됐다는 것이다.

셋째, ‘원칙 있는 승리’를 이룬 정당은 없었다. 새누리당은 야권 분열에 기대어 ‘원칙 없는 패배’를 당했다.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할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지방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순회하면서 선거 개입 논란을 자초했다. 경제 살리기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선거 막판에 초접전 지역을 방문해 국회 변모를 강조한 것은 여권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만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총선 전날 국무회의에서 안보와 경제의 복합 위기를 고리로 ‘국회 심판론’을 재차 꺼내들었다. “북한 핵 문제와 대내외적인 경제여건 악화를 비롯해 우리가 당면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기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민생 안정과 경제 활성화에 매진하는 새로운 국회가 탄생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굳은표정을 보이고 있다. 이재문기자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런데 야당은 정부가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비판하면서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지역감정 발언과 울산 발언은 도를 넘었다. 김 대표는 사과는 했지만 “30년 야당 찍어 얻은 게 뭐냐, 전북은 배알도 없나”라는 발언은 잘못된 것이다. 심지어 울산의 여당 후보 지원 유세를 하면서 “현대중공업의 쉬운 해고는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정치가 기업 경영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발언은 분명 실언이다. 아무리 선거가 급해도 집권 여당 대표가 취할 자세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4일 오후 개인 용무를 위해 서울 서대문구 자택을 나선 뒤 차량에 탑승해 있다. 연합뉴스

더민주의 성적표는 ‘원칙 없는 승리’다. 문재인 전 대표는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골자로 하는 안철수 의원의 정치개혁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안철수 의원은 탈당했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하면 안철수를 내쫓은 것이나 다름없다. 안 의원의 탈당을 막지 못하고 기껏 영입한 사람이 경제민주화 하나 들고 이당 저당 기웃거린 김종인이었다. 당의 정체성과 전혀 맞지 않는 김종인 대표는 친노 운동권 정당의 체질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친노 세력과 비열한 내부자 거래를 했다.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셀프 공천’하고 친노 운동권 인사들을 비례대표 안정권에 배치했다.

이런 추악한 거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선거 종반 국민의당 지지도가 상승세를 타자 문 전 대표는 정치적 도박을 감행했다. 광주로 내려가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면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전남 순천에 가서는 땅바닥에 절을 하면서 “다시 한 번 힘을 주시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다면 정말 새롭게 출발해서 열심히 잘해보겠다”며 호소했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왜 안철수의 탈당을 막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김홍걸 더민주 국민통합위원장이 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광주=이재문기자 moon@segye.com

문 전 대표는 선거 막판에 “정당 투표는 국민의 당, 후보 투표는 더 민주”를 요구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아무리 전략이고 다급하더라도 어떻게 당 대표를 지낸 사람이 공개적으로 다른 정당을 찍으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무원칙 속에서 결국 국민의당 정당 득표가 더민주보다 많이 나왔다.

이밖에 더민주는 기업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우를 범했다. 김종인 대표는 아직 구체적 사업 계획이 없는 삼성 미래차 공장을 광주에 유치하겠다는 발표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렇게 경제민주화를 부르짖던 사람이 어떻게 기업에 손을 벌리면서 애걸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가? 더민주가 이번 총선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치모리배를 정치고수로 둔갑시키고 정치 불량품을 정품으로 속여 팔려는 것과 같았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운데)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뒤 주위의 축하를 받자 답례 인사를 건네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도 ‘원칙 없는 선전’을 했다. 호남을 석권하고 원내교섭단체(20석)를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새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정책, 노선, 인물에서 새로운 것이 없었다. 반대로 총선 전 원내교섭단체 구성과 당세 확장이라는 실리에 급급해 더민주 탈당 현역 의원들을 원칙 없이 받아들였다. 이 지역구 저 지역구 돌아다니며 출마 쇼핑을 일삼고 탈당을 밥 먹듯이 한 정치 퇴물에게 손을 내민 것은 결국 개혁포기이자 자기부정이었다. 제3당의 지위를 확보했을지는 모르지만 ‘호남 자민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절반의 승리에 불과하다.
경기 고양갑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12일 고양시 화정역 인근에서 웃는 표정에 손가락으로 기호 4번을 만들어 보이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고양=연합뉴스

정의당은 ‘원칙 있는 패배’를 당했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연대에 힘입어 통합진보당은 지역구에서 7석을 획득했다. 정당 투표에서는 10.3%의 득표로 비례대표 6석을 얻었다. 비록 정의당은 지역구 의석(2석)과 정당 득표에서 과거 통진당에 못 미치면서 패배했지만 이번 총선에서 원칙을 가장 잘 지킨 정당으로 기록될 것이다. 가장 모범적인 공천을 했고 당의 정체성과 부합하는 각종 공약을 제시했다.

이번 20대 총선은 막장 공천, 정책 실종, 원칙 무시, 포퓰리즘 공약, 선동정치가 판을 친 최악의 선거임에 틀림없다. 최악의 선거가 또 다른 최악의 국회로 연결될까 두렵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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