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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프랑스 론 최고 와인 라 샤펠을 만나다

관련이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 디지털기획

입력 : 2016-04-13 13:42:45 수정 : 2016-04-13 17: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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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샤펠 1961년산 지금도 4000만원 호가

 

벽돌색 레드 와인 한 모금을 흘려보낸다. 고풍스럽고 중후장대한 중세의 성안에 서있다. 나를 바라보며 은은하게 미소 짓는 그녀. 잘록한 허리가 강조되고 땅에 살짝 끌리는 연한 바이올렛 빛깔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젊고 도도하지만 기품이 넘쳐난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심연같은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성문밖으로 나선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탐스러운 과일들이 영그는 과수원과 수백만송이가 피어난 꽃밭. 따사로운 봄햇살과 바람결에 실려 온 온갖 붉은 과일과 허브향이 온몸을 감싸고 이내 무아지경에 빠진다.

 

라 샤펠 1961년 빈티지 출처 폴 자불레 애네 홈페이지
에르미타주(Hermitage)  라 샤펠(La Chapelle )과의 첫 만남이다. 1998산 라 샤펠은 20년 가까이됐지만 아직도 생동감이 넘쳐날 정도로 황홀하다.  라 샤펠을 빚는 와이너리는 프랑스 론의 와인 명가 폴 자불레 애네(Paul Jaboulet Aine). 4월 6일 폴 자불레 애네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그웬 슈네(Gwenaele Chesnais) 이사를 와인수입사 나라셀라 관계자와 함께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의 고풍스런 레스토랑 단아에서 만나 폴 자불레 애네 대표 와인들을 테이스팅했다.

 

에르미타주 언덕의 교회 출처 폴 자불레 애네 홈페이지
에르미타주는 프랑스의 최고급 와인이 탄생하는 와인산지다. 1235년 십자군 전쟁에서 부상당한  기사 가스파르 드 스테랑베르(Gaspard de Sterimberg)가 이곳에 정착해 언덕위에 작은 교회(Chapelle)를 짓고 포도밭을 일궜다. 교회가 세워진 언덕은 ‘은둔자(에르미타주)의 언덕’으로 불렸고 그가 경작한 이 지역 포도밭이 바로 오늘날 프랑스 최고급 포도밭인 에르미타주가 됐다. 폴 자불레 애네는 1919년 이 교회가 포함된 포도밭을 사들여 교회를 폴 자불레 가문의 심볼로 만든다. 에르미타주 라 샤펠은 바로 이 교회의 이름을 따서 지은 와인이다.

 

1961년산 라 샤펠은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12대 와인’에 선정될 정도로 역사상 최고의 와인으로 평가 받으며 지금도 병당 4000만원을 호가한다. 18세기 미국의 독립을 이끈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의 일기에서 폴 자불레 애네의 화이트와 레드 에르미타주가 세계 최고의 와인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수백 병씩 구입했다고 한다.19세기 초에는 프랑스에서도 가장 비싼 5대 샤토인 샤또 오 브리옹, 샤또 라피트보다 더 비싸게 거래됐고 러시아 제국의 왕실에서도 사랑을 받았다.

 

폴 자불레 애네의 역사 속으로 더 들어가 보자. 에르미타주의 역사는 폴 자불레 애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작은 183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불레 가문의 앙뚜안 자불레(Antoine Jaboulet)가 에르미타주와 크로제 에르미타주(Crozes Hermitage) 지역의 포도밭을 구입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그의 아들인 폴(Paul)과 앙리(Henri)가 와이너리를 더욱 키웠고 아들 폴의 이름이 현재 와이너리 이름으로 굳어졌다.

 

샴페인 빌레카르 살몽
폴 자불레 애네는 2005년 장 자끄 프레(Jean-jacques Frey) 가문에 인수되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상파뉴 지방에서 시작된 프레 가문은 샴페인 하우스 빌레카르 살몽(Billecart- Salmmon) 일부와 보르도 그랑크뤼 3등급 샤또 라 라귄(Chateau La Lagune)도 소유한 와인 명가다. 프레 가문은 1990년 매물로 나오지 않던 북부 론 최고 포도밭인 꽁드리유(Condrieu), 꼬뜨 로티(Cote-Rotie)와 남부 론의 샤또뇌프 뒤 빠프(Chateauneuf du Pape)까지 사들이며 와이너리 사업을 확대했다. 이로써 자불레 가문이 갖고 있던 포도밭 70헥타르는 109헥타르로 크게 늘었다.

카롤린 프레 출처 wine-searcher.com
사실 폴 자불레 애네의 주인이 바뀌자 와인업계는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가족 경영으로 명품와인을 빚던 폴 자불레 애네가 상업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다. 기우에 불과했다. 장녀 카롤린 프레(Carolline Frey)는 오히려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2006년 대부분의 포도밭에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도입했다. 또 양조장은 포도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터대신 중력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을 도입했다. 카롤린은 보르도 최고의 양조학교에서 화이트 와인 양조의 대가인 드니 뒤부르뒤외(Denis Dubourdieu)의 가르침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2004년부터 샤또 라 라귄, 2006년부터 폴 자불레의 와인 양조를 책임지고 있다.

동굴 저장고 비늄 출처 폴 자불레 애네
폴 자불레 애네는 소량의 좋은 포도만을 엄선하며 발효와 침용 과정도 일반 와인보다 더 오랜 기간인 18일에서 24일 정도 걸쳐 진행한다. 더욱 농후한 맛과 풍부한 향을 지닌 와인이 탄생되는 비결이다. 또 비늄(Vineum)이라는 17ha의 사암 동굴을 와인 저장고로 사용한다. 샤또뇌프 쉬르 이세르(Chateauneuf sur Isere)에 있는 이 동굴은 고대 로마인들의 채석장인데 폴 자불레 애네가 1992년 인수해 와인 저장고 및 테이스팅 룸으로 개조했다.

테이스팅한 폴 자불레 애네 대표 와인들
폴 자불레 애네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그웬 슈네(Gwenaele Chesnais) 이사
이날 테이스팅한 와인은 크로제 에르미타쥬 블랑 뮬 블랑슈(Crozes Hermitage Blanc Mule Blanche) 2012, 꽁드리유 도멘 데 그랑 자멍디에(Condrieu Domaine des Grands Amandiers) 2011, 지공다스 피에르 애기(Gigondas Pierre Aiguille) 2013, 크로제 에르미타주 딸라베르(Crozes Hermitage Thalabert) 2011, 에르미타주 라 샤펠(Hermitage La Chapelle) 1998이다. 
 
 
크로제 에르미타쥬 뮬 블랑슈 2012
크로제 에르미타쥬 뮬 블랑슈 2012는 마르산과 루산을 반반씩 섞은 화이트다. 포도밭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흰 노새’라는 뜻이다. 석회석이 많은 지역이라 미네랄이 좋고  신선하고 경쾌한 산도가 돋보인다. 감귤류의 상큼함도 있어 생선 회랑 페어링하면 좋다. 마르산의 특징인 백후향도 느껴진다. 2012년과 2010은 균형잡힌 날씨로 좋은 와인이 탄생했다. 화이트 와인은 보통 스테인리스 스틸통에서 발효하는데 이 와인은 화이트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계란 모양의 큼지막한 시멘트 발효조를 사용해 과일의 신선함을 잘 뽑아냈다. 시멘트 발효조는 사실 예전에 썼던 방식인데 온도를 차게 유지하고 반응성이 적어 과일의 신선함이 잘 유지된다. 또 복잡미묘한 맛을 얻기위해 오크통에서 6∼9개월동안 ‘앙금 위 숙성(Sur lie ageing)을 시켰다. 섬진강 벗굴과 통영 각굴, 제주 홍해삼, 제주 광어, 제주 뿔소라·멍게와 페어링 했다. 

 

꽁드리유 도멘 데 그랑 자멍디에 2011
꽁드리유 도멘 데 그랑 자멍디에 2011은 비오니에 100%다. 꽁드리유 와인은 제대로 된 ‘물건’을 만나면 중독성이 매우 높을 정도로 매력있는 와인이다. 그만큼 꽁드리유는 론 지역 전체는 물론 폴 자불레 애네에게도 특별하다. 꽁드리유 비오니에 포도밭은 자칫 수확시기를 놓치면 와인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생동감 있게 만들기 어렵고 산화가 빨리돼 주의를 집중해서 만들어야 하는 와인이다. 화강암 토양의 남향인 굉장히 좋은 떼루아에서 만든다. 2007년에 포도밭을 구입했고 2009년이 첫 빈티지다. 오크통을 조금만 사용해 오크향은 은은하게 나도록 하면서 최대한 신선미와 산도를 살렸다. 만개한 봄꽃같은 유질감이 느껴진다. 우아한 꽃향이 매우 풍부하고 침이 살짝 고일정도로 산미는 적당하다. 그러면서도 풀바디 와인으로 느껴지는데 이는 알콜도수가 14.5도로 다소 높기 때문이다. 한우 육회와 머스타드 소스를 곁들인 낙지와 함께했다.
 
지공다스 피에르 애기 2013
지공다스 피에르 애기(Gigondas Pierre Aiguille) 2013은 그르나슈 80%, 시라 10%, 무르베드르 10%다. 폴 자불레 애네의 유일한 남부론 와인이다. 이 3가지 품종을 섞는 ‘GSM’ 은 호주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과실 자체 향을 잘 살리는 모던한 방식으로 양조한 와인으로 영할때 마시기 좋다. 2013년 빈티지는 신선함이 강조됐다. 지공다스 와인 자체가 복잡하지 않고 매끄럽워 편하게 마실수 있는 와인이다. 신선한 딸기향, 야생체리 등 붉은 과일향 충만하게 느껴지고 약간의  흑후추향도 난다. 미디엄 바디 와인으로 탄닌은 강하지 않다. 지나치게 맵지만 않으면 한식과 잘어울린다. 깐풍기, 베이징 덕, 갈비찜과도 매칭이 잘된다. 쑥향의 도다리 완자를 곁들였다. 

크로제 에르미타주 딸라베르 2011
크로제 에르미타주 딸라베르 2011은 라 샤펠 만큼 유명한 폴 자불레 애네 와인중 최고 밸류 와인이다. 그러나 소비자가는 14만원대로 주머니를 너무 힘들게하지 않는다. 북부론치고는 굉장히 큰 규모인 40헥타르에서 최소 10만병 넘게 생산하기 때문이다. 시라 100%로 숙성 잠재력이 기본 20년이다. 크로제 에르미타주중 50∼80년된 가장 오래된 밭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포도를 쓴다. 고급스럽게 응축된 풍미가 잘 표현됐다. 에르미타주는 론의 최고급 와인이라 비싸기때문에 대안으로 크로제 에르미타주를 찾게된다. 그러나 이 와인은 거의 에르미타주 급 와인으로 크로제 에르미타주라도 이 정도는 돼야한다는 품질을 잘 보여준다. 검붉은 과실향과 토양에서 올라오는 구리구리한 동물적인 향이 잘 발현됐다.블랙베리 풍미와 델리키트한 아로마가 느껴지며 근사한 가죽향, 버섯향이 올라온다. 맛에서 지공다스가 붉은 과일향이라면 딸라베르는 좀더 검은 과일향에 가깝다. 장어구이와 페어링했다.

에르미타주 라 샤펠 1998
에르미타주 라 샤펠 1998은 100% 시라다. 폴 자불레 애네는 1834년 설립 초기부터 라 샤펠을 만들기 시작했다. 론 전체는 물론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론에 그랑크뤼 등급이 도입된다면 최상위권에 오를 와인이다. 61년 78년, 90년 빈티지를 최고로 꼽는다.  보르도의 그랑 크뤼 샤토들이 일반적으로 연간 25만~50만병을 생산하지만 라 샤펠은 9만병만 생산한다. 15~18개월 오크 숙성하며 새오크 비율을 낮게해 떼루아를 극명하게 반영한다. 따라서 최소 10년은 되어야 모습을 드러내는 와인이다. 경사가 급한 언덕에 심어진 최소 수령이 50년 된 시라로 만든다. 와인에 복합미를 주기 위해 서로 상이한 특징을 갖는 베싸(Bessard)와 메알(Meal) 등 모두 4개 포도밭의 포도를 블렌딩한다. 함께한 메뉴는 꼬리찝과 더덕구이, 풋마늘 장아찌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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