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현지시간)부터 인도·네팔에선 세계 최대 ‘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정식 이름은 홀리(Holi) 페스티벌. 일종의 봄맞이 축제로 1∼2주 동안 진행된다. 홀리 시즌이 되면 힌두교인은 한꺼번에 거리로 나와 각자 준비한 물감이나 색가루를 서로의 얼굴이나 몸에 뿌린다.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그간 쌓였던 해묵은 감정을 풀어 축하·화합을 위한 장을 마련하고 있다.

홀리 축제는 힌두교 선(善)의 상징인 브라흐마가 악(惡)의 화신 홀리카(Holika)를 물리친 힌두교 창조 신화에 바탕하고 있다. 색깔을 매개로 한 이색적이고 화려한 축제를 보려는 사람은 힌두교인들만이 아니다. 인도가 비록 ‘성범죄·카스트’의 대명사라는 악명을 뒤집어쓰고는 있지만 홀리 축제를 보기 위해 인도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매년 수백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다채롭게 어우러지는 빛깔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어찌보면 색깔의 향연은 색(color)의 조합이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인도 홀리 페스티벌 바로 전날인 23일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8가지 색’을 소개했다. 지난 1000여년 동안 인간이 애용했던 색이지만 현대사회의 경쟁과 효율성, 물욕 탓에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여덟가지 색을 선정했다.

고운 광택이 나는 남색 계통의 이 색은 자연 안료는 아니다. 염기성 탄산동(鹽基性炭酸銅)과 수산화동(水酸化銅)을 혼합해서 만든다. 이 색깔은 고려청자나 중국 도자기처럼 가마에다가 주원료를 넣고 구으면 이같은 색깔이 나타난다. 같은 군청색이라도 혼합비에 따라 무겁고 어두운 색, 가볍거나 옅은 다양한 색깔을 얻을 수 있다.
![]() |
티치아노의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1520∼23) |

흔히 ‘립스틱나무’라고 불리는 멕시코와 브라질 등 중남미 일대에서 자생하는 빅사 오렐라나 열매에서 추출한 안료다. 열매의 적색 껍질에는 카로티노이드 색소에 속하는 빅신과 오렐린(orellin) 두 색소가 있다. 종자를 면실유 등 중성유로 가열하면 이같은 색깔을 얻을 수 있다. 버터나 치즈, 화장품 등의 착색료나 염료로 주로 쓰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로 채굴되는 청금석(靑金石)에서 나온 색이다. 청금석은 예로부터 장신구 등의 연료로 쓰인 터키석이나 수정 등과 함께 애용된 광석이다. 청금석으로부터 진한 청색 천연안료를 추출한 게 바로 라피스 라줄리다. 유럽에서는 중세부터 수입하기 시작했으나 워낙 고가였던 탓에 19세기부터는 울트라마린블루에 자리를 내줬다.
![]() |
사소페라토의 '기도하는 성모마리아'(1640). |

적색계의 동물성 염료다. 선인장에 기생하는 딱정벌레와 같은 연지충(Coccus cacti)으로부터 얻는다. 암컷 산란기 때 이같은 벌레들을 모아 증기나 열탕으로 쪄서 햇볕과 응당에서 수일 간 말리면 이같은 색을 얻을 수 있다. 이 벌레를 빻거나 가루로 해서 염료로 쓴다. 물감 뿐만이 아니라 홍비(紅緋) 색깔이 나는 화장품, 음식에 주로 쓰였다.

주로 인도와 말레이시아 등 서방 식민지에서 자랐던 나무(Pterocarpus draco)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수지다. 나무 줄기에 흠집을 낸 뒤 스며나오는 수액을 채취한다. 이를 말리고 치댄 뒤 가열해 굳히면 짙은 적색 또는 루비 적색 계통의 색이 나타난다. 아시아에서 기린혈(麒麟血)이라고 불렸던 이 색깔이 ‘드래곤의 피’라고 통칭된 이유는 로마시대 작가 플리니 때문이다.
![]() |
로마시대 도시 폼페이의 벽화 중 한 장면. |

이 염료는 아세트산구리와 아비산구리를 합성해 얻어진다. 19세기 이전까지 즐겨 썼던 녹색 계통 안료인 셸레 그린(Scheele's green)이 워낙 빨리 바래지는 데 불만을 가진 서양 화가들 요구로 개발된 색이다. 아비산나트륨 용액을 약 90도로 가열하면서 황산구리 용액과 아세트산을 첨가하여 침전시키면 이 같은 색깔을 얻을 수 있다.

이 색깔은 고대 이집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피라미드에 있는 미이라로부터 직접 이같은 색을 얻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갈색으로 변색된 미이라의 표면을 긁어 이처럼 훌륭한 색깔의 안료를 채취할 수 있었다. 프랑스 화가 마르탱 드롤랭의 ‘주방’(1815)처럼 유럽의 18∼19세기 화가들이 특히 열광했던 색깔이다.
![]() |
마르탱 드롤랭의 ‘주방‘(1815) |

바이올린과 활, 가구에 주로 쓰이고 있는 중남미산 케살피니아(Caesalpinia) 나무로부터 얻을 수 있다. 브라질나무는 원해 밝은 오렌지색인데 공기에 오래 노출하면 광택을 가진 진한 갈색이 나타난다. 이 갈색 분말에다 물을 약간 가미하면 보다 진해지면서 이처럼 깊이 있는 빨간색을 띠게 된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