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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동안 한 무대서 호흡… 눈빛만 봐도 통하죠”

입력 : 2016-03-20 20:55:27 수정 : 2016-03-20 20: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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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무대 위 장수 커플’ 이영철·박슬기씨
“함께 무대에 오른 지 10년 가까이 됐어요. 무용수로서 이런 파트너를 만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두 번 다시 없을 거예요.”(박슬기)

“정말 편해요. 무대에서 눈빛만 봐도 서로 알 수 있는 사이죠. 슬기씨는 착하고 파트너를 잘 배려해요. 제일 사랑하고 아끼고, 모든 공연에서 같이 하고 싶은 무용수예요.”(이영철)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영철(38)·박슬기(30)는 ‘무대 위 장수 커플’이다. 2007년 겨울부터 서로 호흡을 맞췄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박슬기가 ‘호두까기인형’의 마리를 처음 맡았을 때 왕자 역이던 발레리노 이원철이 갑자기 부상했다. 이영철이 긴급 투입됐다. 이듬해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2009년에는 드디어 정식 파트너로 무대에 올랐다. 이영철은 “그후로 슬기랑 대부분의 정기공연을 한다”며 “90%쯤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슬기가 무용학원을 다니던 중학교 2학년 시절 학원에서 파드되(2인무) 수업을 위해 대학생 세 명을 데려왔다. 이 가운데 한명이 이영철이다.

“처음 봤을 때는 싫었어요. 무섭게 생겨서요. 키도 크고 덩치도 있다 보니. 저 오빠랑 하기 싫다고 했는데 하필 같이 하게 된 거예요. 그래도 제일 착했어요.”(슬기)

“정말 귀여웠죠. 별명까지 지어줬어요. 감자라고. 너무 귀여운 동생이었어요.”(영철)

무대 위 단짝이지만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딴판이다. 박슬기는 현 국립발레단 단원인 언니 박나래를 따라 어릴 때부터 취미로 발레를 배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가 그만둘 것을 권했다. 그럴 수 없었다. ‘콩쿠르 나가서 입상하면 그런 말 하지 마라’고 협상안을 내놨고, 바로 작은 콩쿠르에서 상을 탔다. 이후 선화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2007년 발레단에 입단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영철(오른쪽)·박슬기는 10년 가까이 파트너로 무대에 서와 눈빛만 봐도 통하는 ‘장수 커플’이다.
서상배 선임기자
이영철은 고교 시절 방송댄서였다. 춤을 잘 추려 세종대 무용학과에 입학하고 발레학원도 다녔다. ‘남자가 타이즈를 입다니, 발레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운명을 바꾼 건 국립발레단의 ‘해적’이었다.

“국립극장에서 봤어요. 남자가 바지도 입는구나, 되게 멋있다 생각했어요. 극장 바깥 기둥에서 발레리노 형들이 청바지를 입고 딱 서서 담배를 피우더라고요. 정말 멋있는 거예요. ‘아, 발레 해야겠다’ 했죠.”

탁월한 신체조건 덕분에 유리했지만, 발레로 전향이 쉽지는 않았다. 방송댄서 시절 몸에 밴 ‘웨이브’를 빼는 게 고역이었다. 이영철은 “저를 보고 20살 넘어서 따라하려는 이들이 있는데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다”며 “매일 밤 새워 연습하며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노력이 빛을 발했다. 24살에 동아무용콩쿠르 금상을 탔다. 대학 졸업 후 2002년 발레단에 들어왔다. 발레단에서 10년을 동고동락한 두 사람에게 서로의 장점을 말해달라 했다. 칭찬이 쏟아졌다.

“슬기는 섬세한 부분까지 다 생각해요. 에너지와 감정 표현이 굉장히 좋아요. 평소엔 상큼하지만, 무대에서는 섹시한 것도 잘 해요. 서정성과 강렬함 양쪽 다 가졌어요. 뚜렷한 장점이 하나 있는데 팔이 굉장히 길고 아름다워요. 발레는 팔 움직임 하나로 감정을 만들어내야 할 때가 많거든요. 타고난 재능이죠.”(영철)

“워낙 신체 조건을 타고났어요. 손이 크면 상대를 잡거나 돌릴 때 유리한데 오빠는 손이 커요. 팔도 길고 다리가 예쁜 데다 발등도 높죠. 남성이 상대를 배려해야 발레리나가 되게 편하거든요. 오빠는 파트너를 항상 받쳐주려고 해요.”(슬기)

두 사람의 무대는 올해도 이어진다. 30일부터 내달 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라 바야데르’가 첫 무대다. 박슬기는 연인에게 배신 당하는 인도의 무희 니키아, 이영철은 니키아를 사랑하는 전사 솔로르를 연기한다. 두 사람이 ‘라 바야데르’를 하는 것도 이번이 세 번째다.

박슬기는 “매해 맞춰봤어도 다시 만나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맞춰야 한다”며 “항상 연습이 필요한 게 발레의 묘미 같다”고 말했다.

“‘라 바야데르’는 화려하고 여러 장르의 춤이 있어요. 발레를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도 전혀 지루할 새가 없어요. 가족이 함께 봐도 좋아요.”(슬기)

“이 작품은 남성적인 면이 부각돼 발레리노들이 굉장히 해보고 싶어해요. 남성다운 춤도 있고 ‘백조의 호수’ 같은 여성 무용수들의 군무도 적절히 있어요.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볼 수 있죠.”(영철)

두 사람은 오는 7월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하우스로 날아간다. 김용걸 한예종 교수가 안무한 현대발레 ‘여행자들’ 공연을 위해서다. ‘여행자들’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각국에서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는 전직 단원들을 위해 여는 ‘넥스트 제너레이션’에 공식 초청됐다. 이영철은 “5분 길이 작품인데 죽을 만큼 힘들다”며 얼굴을 감쌌다. 박슬기는 “둘이 탁 뻗으며 작품이 끝나는데, 그때 다시 못 일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무용수의 숙명처럼, 관객은 눈치채지 못할 완벽한 무대를 선보일 터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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