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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느님 안에, 하느님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진정한 행복”

입력 : 2016-03-15 21:36:05 수정 : 2016-03-15 21: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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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다석사상연구회장 ‘다석 탄신 126주년 기념회’서 열강
다석사상연구회 박영호(朴永浩·83) 회장은 한국의 사상가이자 종교가인 다석 류영모(柳永模, 1890~1981)의 1세대 애제자 가운데 막내다. 1959년에 스승을 만나 1981년까지 20여 년간 다석을 가장 가까이 모신 인물이다. 그는 평생을 다석사상 연구와 실행에 매진해 왔으며, 지금도 매주 한 차례 성천문화재단에서 다석사상을 강의하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63로 라이프오피스텔 1310호 성천문화문재단 강의실에서 열린 ‘다석 탄신 126주년 기념강연회’에서도 ‘다석은 내게 누구인가’를 주제로 열강했다. 그는 이날 “나도 연로해 올해를 끝으로 강연을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원로 사상가 박 회장의 강연 내용을 발췌 요약한다.


다석은 예수나 석가와 같은 반열에 선다. 이 말을 하면 기독교나 불교 신자들이 깜짝 놀라겠지만, 다석을 우상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되레 예수와 석가를 우상화하는 것이 문제다.

예수는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다”고 했고, 석가는 “모든 물질은 항상됨이 없다. 허공만이 항상된다”고 했다. 만유보다 큰 것은 허공밖에 없으니,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담합이나 한 것처럼 거의 맞다. 다석도 “사람이 되자면 하늘을 쳐다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는 또 “땅의 아버지는 아버지라 말라”고 했고, 석가는 고향 가빌라성에 돌아와 밥 얻으러 다니는 것을 핀잔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샤카족이 아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깨달은 삶을 살았다. 다석 역시 “사람이라면 하느님과의 사랑에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호 회장은 “내가 하느님 안에, 하느님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고 말했다.
몸뚱이는 죽지만, 영적 생명은 안 죽는다. 영적인 붓다나 영적 예수는 소멸하지 않고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참나를 깨달은 사람은 극히 적다. 석가는 자기 손톱에 흙을 올려놓고 참나를 깨달은 사람이 손톱 위의 흙만큼 적다고 표현함으로써 많은 제자들이 참나를 깨닫기를 바랐다. 공자도 ‘천성덕어여(天生德於予: 하늘이 내게 덕을 내렸다)’를 말했다. 참나와 영적인 생명을 뜻하는 덕은 같은 개념이다.

사람은 부드러워야 한다. 인격의 완성은 부드러움이다. 정치인들이 너무 사납지 않고 부드러웠으면 좋겠다. 어떤 어려운 국면에서도 성질을 부려서는 안 된다. 군자는 짐승 성질을 갖거나 소인배가 돼서는 안 된다. 소인배들이 서민을 수탈하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다. 사서삼경을 읽는다고 선비가 아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이 진짜 선비다. 본인은 1982년 2월 다석 선생이 돌아가신 그해 가을 48살 때 얼나를 체험했다. 속이 확 열리는 듯한 활연관통(豁然貫通)을 느낀 것이다. 몸뚱이에서 짐승 냄새가 안 나고, 탐욕과 이기심, 음심이 사라졌다.

다석사상연구회 회원들이 강연회를 마친 뒤 자리를 함께했다. 정양모 신부와 최성무 목사 등 저명한 종교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인간은 대통령 되려고 이 땅에 오지 않았다. 인생은 영원한 생명을 깨닫는 여정이다. 붓다나 예수는 스스로 해놓은 일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영적인 삶을 깨닫고 갔을 뿐이다. 다석도 해놓은 일이 없다고 했다. 참나를 깨달았을 뿐이다. 지옥 갈지, 천당 갈지 떨 것 없다. 죽으면 참나로 돌아가 하느님께 원대복귀하는 것이다. 죽으면 개체가 아니라, 얼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붓다는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없애려고 했으나, 본래 괴로움은 없앨 수 없다. 죽는 것 겁내면서 하느님을 믿고, 부처를 믿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부처님은 스스로 자손을 끊었는데, 부처님 앞에 가서 아들 딸 낳아 달라고 비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다석은 처음 자신을 만난 뒤, 6년 만에 내게 ‘홀로서기’를 가르쳤다. “우리가 사귄 지도 여러 해가 지났으니, 각기 제 노릇을 할 때가 되었다”며 찾아오지도 말고, 편지도 하지 말라고 했다. 이제 젖떼기를 할 만큼 자랐으니,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아 먹으라는 가르침이었다. 스승이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눈시울이 젖도록 서운했다. 예수도 세상을 떠날 때 제자들에게 성령(얼나)에게 배우라고 했고, 석가도 제자들에게 법성(얼나,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했다.

나는 다석의 생존 당시 여쭐 것이 많아 편지도 많이 하고 숱하게 찾아갔다. 다석에게 제자 박영호는 성가신 구도자였을 것이다. 소나 염소를 길러보면 알겠지만, 새끼가 어미젖을 들이받는 것은 젖 잘 나오라고 하는 짓이다. 선생님에게 이해해 달라고 편지를 드렸더니, 회답 대신 강의시간에 내게 다가오더니, “뜸베질(소가 뿔로 닥치는 대로 들이받는 짓)은 저 위(하느님)에 대고 해야지 내게 하는 것은 쓸 데 없는 일이야. 하하” 하시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석은 하느님이 진정한 스승임을 일러준 것이다. 예수도 부처도 똑같은 가르침을 줬다. 입으로 하는 말은 소용이 없으니, 하느님(얼나의 근원인 니르바나)의 가르침을 받으라는 것이다.

예수와 부처는 세상적인 행복을 찾지 않았다. 내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땅의 행복은 일시적 기만일 뿐이다.

정성수 문화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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